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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l 20. 2022

여름날

한국에서는 그렇게 보기 힘들던 무지개지만 여기 스웨덴에서는 일 년에 5번 이상은 보는 것 같아 이제는 친근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만나면 반갑고 신기한 자연현상이다. 아무래도 평지가 넓게 펼쳐지고 비가 가늘게 내려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2개의 무지개가 있다. 1개의 무지개를 보기도 힘든데 쌍으로 만들어진 무지개라니... 눈이 호강하는 날이다.

왜 아일랜드 사람들은 저 무지개 끝자락에 황금이 가득 든 단지가 있다고 믿을까? 허황된 화려함을 쫒아도 결국 허상이라는 걸 말하려는 것일까?

정원 위로 뜬 무지개를 보고 잠시 비를 피해 오두막에 들어온 나는 새삼 자연이 가져다주는 시각의 즐거움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오랜 시간을 들여 바라보았다.


요즘 파리는 연일 40도가 넘는 더위로 난리라고 한다. 뉴스를 듣고 파리에 사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니, 한낮에 헤어 드라이기를 얼굴에 바로 들이대는 느낌이란다. 같은 유럽이지만, 파리가 40도를 넘는 날, 여긴 그저 28도를 겨우 넘었다. 그것도 덥다고 나는 근처 호수로 피서를 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이끌고 나선 길, 약 1시간을 이런 길을 달리면 호수가 나온다. 푸른 하늘 밑으로 녹색으로 가득한 농장들 사이로 간혹 쓱쓱 지나가는 집들... 이런 모습에 반해 독일인은 여름이 되면 스웨덴을 찾아온다. 지나가는 길마다 독일 번호판을 단 캠핑카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이젠 익숙한 일이 되었다. 독일인은 스웨덴의 자연과 뜨엄뜨엄 엄청난 공간을 두고 있는 집들을 보면서 북유럽 삶의 여유에 반한다고 한다. 이렇게 넓은 땅에 적은 인구가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북유럽의 여름, 30도를 약간 넘는 날이 일주일 정도일까? 이런 여름은 아시아에서 지독한 여름으로 훈련을 받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기서는 더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사람들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동물들도 마찬가지인지라 길을 가는 동안 목격한 한 목장에는 소들이 떼를 지어 나무 밑 시원한 그림자 밑으로 모여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스웨덴의 오래된 타운에는 저렇게 오래된 교회들이 하나씩 있는데,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오래된 교회 건물을 좋아한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의 많은 교회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스웨덴의 이런 타운 교회들은 아주 수수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더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어, 스웨덴의 이런 허름한 교회를 좋아한다. 


스웨덴 아니랄까 봐, 가장 보수적이어야 할 스웨덴의 기독교 또한 아주 진보적인 경향이 있다. 예전에 진하게 화장을 하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성 목사가 TV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고 참 신기한 나라구나, 그리고 멋진 모습이구나,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제 한 TV 프로그램을 보다, 아래의 장면을 보고 다시 스웨덴 기독교가 참 진보적이구나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처음 데이트를 하는 여러 쌍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스웨덴스럽게 상당히 다양한 커플이 등장한다. 90살이 된 할아버지가 데이트에 나오고, 동성애자, 자폐증을 가진 사람 등이 등장한다. 어제 본 에피소드에는 동성애자 2인이 나온 데이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 속 남자의 직업이 목사이다. 게이이자 얼굴 문신까지 있고, 코에 피어싱까지 두루 보수적 성향의 사람이 싫어할 것들을 모두 갖춘 남자가 목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습에 놀라는 나를 보고, 나도 아직 진정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한참을 더 보고 배워야 할 건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해요?'라고 묻자 타투를 한 게이 참여자가 '저는 교회에서 일해요. 목사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스웨덴은 진보적이지 않은가? 이런 모습을 스웨덴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목격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을 한국에서 보려면 얼마나 많은 다툼의 시간이 필요할까?


저렇게 아름다운 시골 마을을 자전거로 달린다. 여름이 찾아올 때마 느끼는 거지만, 스웨덴의 여름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건 길고 지루하고 끔찍한 겨울 끝에 만나는 밝고 깨끗한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이 아름답고 짧은 여름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 같다. 스웨덴의 짧은 여름같이 우리는 짧고 아름다운 청춘의 시절을 가진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 우리는 축제를 즐기며 인생의 반려자를 만난다. 마치 여름날의 축제처럼 말이다. 곧 겨울이 올 것을 알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따스함 품을 찾아야 한다. 길고 끔찍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


한 시간의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려 도착한 작은 호숫가에는 가족 단위로 피서를 나온 사람들로 약간 북적였다. 그럼에도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어딜 가도 내가 누울 자리는 늘 있는 곳이 스웨덴이다. 신난 아이들의 함성과 그 뒤를 쫓는 젊은 엄마와 아빠들의 모습이 정겹다. 


스웨덴의 한 여름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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