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a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Apr 25. 2023

언어적 향수병

스웨덴에 살면서 딱히 한국에 대한 향수병은 없다. 가끔 지인들은 이렇게 물어본다.

"한국이 그립지는 않아요?"

나는 조금 망설이다 대답한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없어요."

이 말에 약간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배반한 듯한 느낌이 날까봐 왠지 의식적으로 조심하게 된다. 한국사람이면 당연히 한국을 그리워해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질문자의 판단이 꼭 저 질문에 들어 있을 것만 같다. (물론 한국사람만 아니라 모든 국적자가 해당되지만.)


지인들 중에는 해외여행을 가서도 굳이 한국 음식점에서 맛도 별로인 한국밥을 비싼 돈을 주고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김치 없이도 몇 달을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고집이 없다. 사람도 음식도 현지에서 조달하면 그걸로 만족한다. 사람도 한국사람이던 아니던 좋은 사람이면 되는 것이고, 음식도 한국음식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맛만 있으면 된다. 물론 김치가 있다면 맛있게 먹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현지에서 조달이 가능한 음식에 잘 맞춰 적응한다. 한국문화가 그립다거나 친구들이 그립다거나 하는 것도 별로 없다. (사실 친구가 많지 않다. 친구가 있어도 많은 말을 할 상대가 없기도 하다.) 한국에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게 나에겐 향수병은 없는 현상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어에 대한 편안함이 어쩌면 또 다른 방식의 향수병이 아닐까?' 

스웨덴에 살게 되면서 요즘 나는 '언어능력 혼란'을 겪고 있다. 이젠 한국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조금 수준 높은 단어는 생각이 바로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스웨덴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다 그나마 조금 하던 영어도 점점 형편없는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 어떤 언어로 이야기를 해도 어버버 하게 되는데 그나마 영어가 편안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몇 년째 스웨덴어를 배우면서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럴까? 샤워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 때 우연히 틀어 놓는 한국어 뉴스, 유튜브 방송에서 문득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늘 똑같은 뉴스를 굳이 여러 채널를 통해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나 왜 이러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굳이 온몸의 감각신경을 곤두 세우지 않아도 그냥 귀에 들리는 한국어이기 때문이다.

편안함, 그걸 한국어라는 언어에서 찾고 있으니 이것도 향수병이 아닐까? 


올해는 스웨덴 사회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사회학'을 배우고 있다. 이민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첫 수업에서 마주한 학생들 절반이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원어민들 속에서 스웨덴어를 말하려고 하니 더 쑥스러워지고 머릿속에서 많은 단어들이 한국어로 영어로 스웨덴어로 춤을 추며 맴돌면서 문장을 복잡히 만들어나갈 때마다 내가 뱉어내는 말들은 이상한 문장이 되어 입으로 나오고 만다. 

요즘 나는 무뚝뚝한 동양인 남자로 살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듣기는 되기 때문에 곧잘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역시 한국인의 최대 약점인 말하기에서 버벅되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도 한 때는 농담도 잘 던지고 재잘재잘 수다도 잘 떨던 그런 사람이었는데...'라는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아킴 베리-아니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