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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ug 29. 2024

한국뉴스

한국뉴스를 거의 매일 듣는다. 주로 아침에 일어나면, 시차로 인해 한국의 주요 뉴스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다. 그렇게 유튜브로 일명 좌파들이 만든 뉴스를 들으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렇다 나는 좌파다. 그렇지만, 여기 스웨덴의 관점에서 한국의 좌파는 그 명함도 들이밀지 못할 정도로 낙후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좌파가 어디 좌파인가? 그저 한국 안에 있으니 좌파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에 있다면 나는 좌파이고 스웨덴에선 우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뉴스를 듣고 있으면 대부분 화가 난다. 어떻게 저렇게 정치를 해도 대통령 지지율은 아직도 30%인가? 도대체 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 30%는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아오면서 비슷한 무리들과만 어울린다. 내 친구들도 나와 취향이 비슷하거나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렇기에 의견이 달라 때론 다투는 일도 종종 있지만, 크게 다를 바가 없기에 이제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사회적 활동 범위가 아주 넓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현상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다닌 학교를 중심으로,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 회사를 다니면서 이래저래 알게 된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 때문이다. 내 활동범위 그 속에서 인간관계의 경계가 정해진다. 그렇기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친해지고 일을 하며 살아왔다. (물론 이제 나는 그런 연고를 모두 버리고 한국을 떠나왔기에, 스웨덴에서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극단적 우파나 뉴라이트와 같은 사람을 쉽사리 만나기 어렵다. 다 고만고만한 무리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왔기 때문이다. 혹여나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서 만날 기회가 있다 손 치더라도 깊게 친해지는 경우는 없다. 나와는 맞지 않은 사람이니 당연히 멀리하게 된다. 

이렇게 살다, 가끔 우리의 사회적 활동범위를 이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통해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군대다. 군대는 학벌이나 출신으로 무리의 범위를 정하지 않는다. 군대라는 제도에 대해 따로 할 말은 참으로 많지만 여기 다 적지 않으려 한다. 특히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의 2년 반이라는 시간을 그런 어두운 곳에서 보냈다는 점은 어디 가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싶을 정도로 너무 안타깝다. 가장 아름다울 시기에 그런 곳에서 썩고 있었다는 건 돈으로도 명예로도 회복되질 못할 일이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사라졌다. 설사 그것이 애국이며 시민으로서의 의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내 희생이 국가로부터 적당히 보상받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지금이야 월급이라도 나오지만 그 당시 내가 받았던 돈은 몇 만 원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국가가 어떻게 내 인생의 아름다운 시기를 착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의외로 군대라는 조직이 나와 잘 맞았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나에게 집단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의외로 머리를 쓰지 않는 단순한 노동이 꽤나 즐겁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이외에도 군대에서 알게 된 것이 많다. (사실 우리 사회는 군대에서 학습된 체계가 그대로 사회에 이전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가짜 사인을 하고 등등) 우리 사회에 아직도 문맹이 있으며, 대학 진학을 한 번도 꿈도 꾸지도 않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세상에 글을 쓸 줄을 모른다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풍족한 집안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고등 교육까지 받은 나에게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를 정도로 깜짝 놀랄 현상이었다. 

이 밖에도 포르노 남자배우 출신도 있었다. 생각보다 못 생긴 얼굴이라 놀랐다. (물론 표현을 하진 않았다.) 모두들 네가 성인 배우면 나도 하겠다는 평을 뿜어낼 정도였다. 평범하게 못생긴 아이가 한 명 들어와서 "사회에서 포르노 남자 배우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 있으니 신기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포르노 배우를 만난 것도 신기한데, 그런 사람이 전혀 그런 쪽에 종사하지 않게 생긴 것도 신기했다. 그 신병은 금세 유명해져서 고참을 만날 때마다 바지를 내리라는 명령을 받곤 했다. (그 당시에는 때리지만 않으면, 남자끼리 바지 내리는 정도는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이가 한 명도 없었을 때이다.) 물론 나는 그런 명령을 내리진 않았지만, 들은 바로는 그곳도 그렇게 크지 않고 생각보다 작았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그곳도 작고, 얼굴도 못생긴 포르노 배우라니. 그럼 배우가 되는 조건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인지 고참들은 궁금해서 물었고, 성인 비디오 시장은 남자들이 주된 고객이라, 여성이 이쁘기만 하면 되고 남자는 어떤 놈이 나오는지 별 상관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선임들 중에는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포르노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사람까지 나왔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이가 애로 배우의 세계로 뛰어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세계가 그렇게 쉽겠는가?

이 밖에도 연예인 로드 매니저를 했다는 사람, 고급 정치가의 손자라는 사람, 무슨 갱단의 멤버였다는 사람 (의외로 착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군대를 가지 않았다면 무슨 수로 만났겠는가?


다시 한국뉴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내가 그 30%에 속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그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면 그래도 그럴 기회가 조금이나마 있겠지만, 이젠 먼 나라 북유럽에선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 

요즘은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한국뉴스를 덜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중요한 뉴스만 대충 듣고 나머지는 그냥 넘겨버린다. 도대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왜 한국 뉴스에 그렇게 관심을 넘어 집착하는가?'

더 이상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스웨덴이니, 스웨덴 뉴스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일리에 맞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왜 한국뉴스를 매일같이 듣고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외국에 사는 이주민이다. 이방인으로써 나는 늘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말해야 했다. 그렇기에 내 나라, 대한민국은 나에게 하나의 뒷배경이 되었다. 좋은 학교, 좋은 집안, 좋은 직장처럼 내 조국은 나를 설명해 주는 하나의 평판으로 여기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스웨덴 꼬마를 만나면 "너 블랙핑크 팬이구나?"라고 괜히 묻게 되고, 슈퍼마켓에 먹지도 못하는 불닭면이 있으면 사진 찍어서 괜히 인스타그램에 '드디어 동네 슈퍼에 한국 라면 상륙!'이라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한국이 기대하는 만큼의 애국심은 없겠지만, 내 나라가 잘 되어 한국인으로서 외국에 사는 내가 뿌듯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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