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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Apr 30. 2021

화장품 만들어 쓰기

완전 민감성 피부

내 피부가 보통의 피부라면 절대로 화장품을 만들어 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여드름 피부였던 건 아빠를 닮아서다. 30살에 결혼하던 아빠 얼굴에 여드름이 있었다고 하니 심각한 편이었던 것 같다. 반면 엄마는 한 번도 여드름이 나본적이 없다고 하지만 50대 때까지 화장품을 바르지 못하셨다. 엄마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남양알로에에서 화장품이 나왔는데 그 제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화장을 하실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어떤 화장품도 얼굴이 근질거려서 바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 시절에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화장할 일이 별로 없어서 엄마는 평생 화장하지 않고 잘 살아오셨던 듯하다. 오히려 엄마가 50대가 되었을 즘에야 시대가 변해서 화장 안 하고 밖에 다니는 게 낯선 관이 되었다. 하여튼 엄마는 그 남양알로에 화장품 이후로 외출 시에는 항상 화장을 했고 점점 민감성은 없어져서 지금은 내가 써보고 안 맞으면 가져다 드리는 모든 화장품을 아무 문제없이 다 쓰고 계신다.


나는 아빠를 닮아서 여드름 피부고 엄마를 닮아서 민감성 피부다. 사실 결혼 전에는 여드름만 있었다. 그것도 대학 때 피부과 치료를 받은 후로는 평소에는 문제가 없다가 조건이 안 좋아지는 때에 조금 나타나는 정도였고 화장품은 아무거나 발라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임신을 하면서 여드름이 심해졌고 그와 동시에 민감성 피부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떤 화장품도 트러블이 생겼지만 그때는 여드름 때문인 줄 알았다. 트러블이 심해지고 여드름도 심해졌지만 그냥 여드름이 심해진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여드름이 좋아지고 나서 지금은 민감한 피부만 남았다. 어떤 화장품도 근질거려서 바를 수가 없다는 엄마랑 똑같은 증상이다.


화해 어플을 깔고 내가 바르는 화장품을 분석해봤다. 대부분의 기초제품에 들어있는 카프릴릭~ 어쩌고 하는 성분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보습성분이다. 피부과에서 처방하는 보습제에도 이 성분은 듬뿍 들어있다. 그런데 나는 이 성분에 민감하다. 트러블로 방문했던 피부과에서 처방한 크림을 사 왔는데 그걸 바르고 더 심한 트러블이 왔었다. 화해 어플에 어떤 크림 성분을 찾아보더라도 거의 대부분 이 성분이 들어있다. 이 성분을 제하고 보면 남아있는 제품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그 제품들이 다 맞는 것도 아니다. 히알루론산도 안 맞고 콜라겐도 안 맞고 비타민씨도, 달팽이 성분도, 시어버터도 안 맞는다. 결론은 맘 놓고 바를 크림 하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엄마를 닮아서 인지 알로에 성분은 그다지 트러블이 없는 것 같다. 토너는 무향의 위치하젤(주로 알로에 성분)을 오랫동안 쓰고 있고 알로에 겔은 아무 브랜도여도 상관없이 오랫동안 쓰고 있다. 그런데 둘 다 오일 성분이 없다. 그래서 특히 겨울에는 피부가 엄청 푸석하고 뭐라 바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다. 그래서 이걸 사서 한번 발라보고 저걸 사서 발라보기를 반복하다가 내가 직접 만들어 바를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오일 성분도 여러 가지다. 처음에는 동백기름이 좋을 줄 알았다. 동백기름은 옛날부터 머리기름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기름을 써보니 왜 그런지 알겠더라. 이 기름은 기름은 기름인데 끈적이 지를 않는달까. 보기에는 분명 뭔가를 발라서 반질반질 한데 꿀 달라 놓은 듯한 진득함이 없이 고실고실하다. 그래서 엄청난 기대를 하고 동백오일을 사서 발라보았다. 사실 처음에는 머리에 발랐었다. 나는 머리가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긴 머리였는데 머릿결이 개털이라 트리트먼트 종류를 발라봤지만 오후쯤 되면 머리가 얼굴에 닿는 부분에 트러블이 생겨서 어제품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백오일을 머리에 바를 때 아주 기대가 컸다. 꾸준히 발라서 매끈한 머릿결을 가져야지. 꿈도 아무 졌었다. 동백오일을 발라도 여전히 뺨 아래쪽에서 트러블이 시작됐다. 동백오일이 안 맞는 거다. 더 찾아보다가 알게 된 게 오일 종류 중에 가장 트러블 없이 바를 수 있는 게 호호바 오일이란다. 그래서 호호바 오일 작은 병을 하나 샀다. 올~ 트러블이 나지 않았다. 얼굴이 번쩍번쩍하도록 발라도 별다른 트러블이 안 생겼다. 일단 한 가지 성분 확보. 웃기는 건 석유에서 추출했다는 미네랄 오일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성분이고 값싼 화장품(주로 슈퍼에서 파는 제품)에 들어있는 성분인데 나는 이 성분에도 트러블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이것들을 피하고 좀 더 고급 성분인 카프릴릭이 들어있는 화장품만 시도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니베아 크림을 얼굴에 꾸덕하게 바르고 자도 트러블이 없었다. 사실 몸은 민감성이 아니라 아무거나 바를 수 있지만 손으로 바디크림을 바르고 나서 이게 조금이라도 얼굴에 묻으면 트러블이 나기 때문에 샤워하고 바디크림을 바른 후에는 꼭 손을 씻고 얼굴을 만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서 그냥 세타필을 사용한다. 니베아는 좀 께름칙하기도 하고 트러블은 없지만 좋은 점도 딱히 못 느껴서 조금 발라보다가 말았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피부에도 좋고 트러블도 안나는 호호바 오일이 있다.


크림 종류는 그렇다고 치더라고 거의 모든 색조화장품과 선크림도 트러블이 심해서 화해 어플을 참고해서 분석해 내가 트러블을 일으키는 성분을 찾아냈다. 에칠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 거의 모든 쿠션 제품이나 파운데이션 그리고 선크림에는 이 성분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성분은 진짜 나쁜 성분이다. 이 성분은 책에서 읽으니 실험실 쥐의 피부에 바르면 피부암이 생긴다는 성분이다. 위험도는 6등급이고 갑상선 호르몬을 교란시키고 피부암을 유발하며 바르고 검사하면 혈액, 소변 심지어 모유에서도 발견된다는 성분이다. 얼마 전 하와이에서 선크림을 바르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했는데 이유는 선크림에 들어있는 이 성분 때문에 산호초가 말라죽기 때문이란다. 하여튼 나는 바를 수 없다. 다만 이 성분은 선블록 기능과 관련이 있어서 자외선 차단 기능이 없는 파운데이션은 바를 수 있는데 이런 제품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찾았다. 바로 레브론 파운데이션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외국제품이라서 색상도 다양하다. 나는 여름에는 23호 조차도 안 맞는 까만 피부다. 나는 파운데이션을 발라서 피부색이 조금만 밝아져도 화장이 것 같고 영 어색해서 싫다. 우리 엄마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으시지만 나는 파운데이션은 하얘지려고 바르는 게 아니라  피부결을 고르게 보이려고 바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마침 레브론은 색상이 정말 다양해서 나는 적당히 밝은 색과 어두운 색 두 가지를 골라서 섞어서 쓰는데, 여름는 어두운 을 조금  많이 섞면 된다.


여름에는 크림 없이 토너에 오일을 넣어서 흔들어 사용하면 되고 다른 계절에 건조함을 많이 느낄 때는 따로 크림을 발라도 된다. 외출할 때는 토너알로에겔을 차례대로 바른 후 겨울에는 크림을 따로 얇게 바르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적은 양의 크림에 바로 파운데이션을 섞어서 잘 펴 바른다. 그러고 나서  에틸헥실 메톡시신나메이트 성분이 안 들어 있는 파우더나 콤팩트로 유분기를 살짝 정리한다. 혹은 이 크림 베이스에 징크옥사이드(선블록 성분 중 가장 안전한 무기자차 성분)를 잘 섞어서 만든 선크림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선크림은 백탁 현상이 있어서 많이 바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오늘 아침 기사에 마크 주커버그가 선크림을 가오나시처럼 바른 사진을 봤는데 이유는 파파라치가 자기를 못 알아보게 하려고 그랬다는데 내가 만든 선크림을 양껏 바른다면 딱 그 모습이 될 거다. 징크옥사이드는 딱히 트러블은 없지만 얇게 바른다면 선블록 기능을 못할 텐데 그럴 바에는 바르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잘 사용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제 호호바 오일로 크림을 만들면 된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여러 방법을 조합하거나 줄여서 만든 내 방법인데 간단해서 좋다.


1. 비즈왁스를 구입한다.

가격이 저렴한데 큰 덩어리보다는 작게 잘라놓은 게 사용하기 편리하다. 나는 덩어리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내가 원하는 크기로 잘라 보관한다. 아주 조금씩 사용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2. 호호바 오일을 구입한다.

처음에는 작은 병을 구입해서 사용해보고 트러블이 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 후, 아이허브에서 473ml를 구입했다. 직접 받아보고 너무 많은 거 아닌가 했는데, 토너에 넣어 흔들어 사용하고 비누 만들 때 넣고 크림도 만들고 하다 보니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3. 아래가 오목한 믹스용 스테인리스 용기

밑이 넓고 너무 깊지 않은 팬

밥 수저 정도 크기의 실리콘 주걱

라테 만들 때 사용하는 작은 거품기(다이소)가 있으면 편하다.

4. 밑이 넓은 팬에 물을 끓인 후, 스테인리스 용기에 비즈왁스를 넣고 중탕으로 녹인다. 거의 녹아서 알맹이가 작아지면 불을 끄고 여열로 마저 녹인다.

5. 왁스가 다 녹으면 중탕인 상태로 알로에 겔을 첨가해서 실리콘 주걱으로 뒤적이면서 겔 이 액체가 되도록 섞으면서 데워준다.

6. 물에서 꺼낸 후, 호호바 오일을 넣는다.

7. 바닥에 아이스팩을 하나 깔고 그 위에 스텐용기를 올린 후, 거품기로 잘 섞어준다. 액체상태였던 것이 식으면서 크림 형태로 변한다. 이 부분에서 잘 안 섞이면 다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성분이 분리돼버린다. 거품기를 사용하지 않고 주걱으로   휘젓기만 했을 때 성공한 듯 보였으나 며칠 지나니 기름이 흥건해졌었다. 이럴 때는 당황하지 고 다시 스테인리스 용기에 넣어  중탕으로 녹여 액체상태로 만든 후, 거품기로 섞어주면 된다.

8. 크림이 잘 만들어지고 나면 거품기는 팬에 남아있는 뜨거운 물에 담가서 한동안 작동시키면서 헹궈내면 거품기에 묻어있는 크림을 잘 씻어낼 수 있다. 찬물에는 잘 안 씻어진다.

9. 왁스: 알로에 겔: 호호바 오일 = 7g:15g:50g

알로에와 오일은 조금 가감할 수 있다. 좀 더 가벼운 느낌을 원한다면 호호바 오일을 40g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10. 선크림을 만들고 싶으면 오일을 넣는 단계에서 징크옥사이드 가루 20g을 넣어서 실리콘 주걱으로 잘 섞어준 후에 거품기를 돌리면 된다. 그러면 하얀색의 크림이 완성된다. 징크옥사이드 분말을 넣지 않으면 커스터드 크림색이다. 

11. 민감성 피부가 아닌데도 본인이 고른 좋은 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쓰고 싶으신 분들은 여러 가지 성분을 첨가해서 만들 수 있겠다.


본인에게 트러블을 일으키거나 혹은 일으키지 않는 성분을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는 화해 어플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만든 크림이 피부에 찰떡같다거나 이걸 바르니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뭐라도 바를 수 있는 게 생겼다는 게  기쁘다. 가끔 평생 화장을 할 수 없었던 고 박지선 씨가 생각난다. 물론 이게 사망원인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내 말은 그냥 그렇게 피부가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나는 내가 만든 크림 덕분에 화장 비슷하게라도 하고 외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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