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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Dec 01. 2024

책상정리

마지막 한 달 Last Mile? or Starting

  2024년도 이젠 12월 한 달 남았다. 11월 말 날아온 RFQ를 내일모레까지 해야 하니.. 에혀.. 일단 어제 된다고 했으니 제쳐두고 책상정리를 하고 있다.


 만년필을 청소해서 오렌지 색 잉크를 넣었는데, 오렌지색이 안 나온다. 청소를 잘 못 했나?? 잉크는 와인색, 하늘색 같은 녀석으로 몇 개 샀는데. 내년엔 요일마나 다른 색으로 정리해 볼까? 나이 들며 아이처럼 색칠공부도 해볼겸. 하긴 요즘 글씨 연습(??) 이런 걸 하고 있다. 


 2025년을 맞이해 독일 갔을 때 산 Paperbank 다이어리. 오래전 밀라노에 갔다가 정말 많이 할인된 가격에 하나 써 보고 마음이 흡족했다. 그만큼 일도 잘되는가 싶더니 대표이사가 회사를 팔아서 졸지에 익사이팅한 코스를 경험하며  천차만별 인간군상에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을 믿느냐? 상황을 믿느냐? 문서를 믿느냐? 이런 굴레에서 제일 화가 났던 것은 배은망덕한 인간들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다 자기 그릇 모양과 크기, 재질에 따라 살아갈 뿐 탓할 일이 아니다. 다시 돌아와 서점 다이어리를 6-7년 썼는데 새로운 2025를 맞이해 준비한 셈이다. 동생과 얼라도 사주고.. 크림트의 그림이 있는 걸 사보고 싶은데 없어서 아쉽다. 내년에 또 사봐야지 아랍문양이나 크림트 그림으로 사야겠다. 다이어리에 이름과 짧은 삶의 원칙도 적어본다. 회의할 때 들고 다니는 A5 가죽커버의 다이어리는 속지도 바꿔야겠다. 


 사무실 뒷자리의 책장도 좀 정리를 했다. 읽은 책과 읽을 책을 구분 중이다. 오늘 길을 나서면 최진석의 '건너가는 자'를 놓고 왔다. 읽을 책은 앞으로 빼고, 다 읽은 책은 가지런히 정리를 해본다. 이젠 더 꽂을 자리가 마땅치가 많으니 어디 새워놓는 책장을 또 사야 하나?


 대강 철저히 정리를 하고 친구 녀석이 3일 날 발표한다고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부득이 못 간다고 연락을 했다. RFQ마감일이라. 늦깎이 공부바람이 나서 난리다. 나야 38부터 미친척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젠 눈도 아프고 예전처럼 읽고 생각이 많거나 총명해지지도 않는다. 기계가 구닥다리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나이에 박사과정을 한다는 만학도를 보면 대단한다. 


 몇 마디 하더니 나보고 학교를 다녀보라고 권한다. 기업혜택도 있고 좋긴 하다. 등록금, 장학금 4년 주면 한 번 가볼게라고 하며 그만 둘 줄 알았더니 계속 조른다. 직장보다 학업에 전념하고 2년 뒤엔 애들 가르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뜬금없이 꿈을 묻는다. 사실 그런 거 잊은 지 오래됐다. 내 한참 젊은 시절부터 스스로 꿈에 대한 궁금증이 딱히 와닿거나 유레카 같은 생각이 없다. 작은 희망이라면 레고로 만들던 집을 현실에 만들어 보는 것이랑, 능력이 되면 유치원 하나 지어서 맡기고 애들 노는 거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세상일에 넌덜머리가 났는지 학업에 열중한다는 말이 한편으로 좋은 방향이란 생각과 한편으로 상처와 결핍의 돌파구를 좋은 방향으로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세상에 좀 나가봐야겠다고 했더니 아래와 같은 답변이 온다. 임재범의 비상은 아니지만 잠시 활강을 하듯 세상에 나갔다가 베이비들을 싹 다 내보내야지. ㅎㅎ 나도 계획이 있다고. 그럼.


 목욕한다고 족 사진을 보내더니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본다. 좀 전에 AI 어쩌고 대학원 커리큘럼을 보내줘서 산수 관련 부분에 X표를 치고 한 마디 했다. '이런 건 애들 시켜!'  그새를 못 참고 저런 걸 보낸다. A를 물어보면 다들 A에 대해서 생각하고 답을 하려고 한다. 하나의 프레임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면 A가 꼭 A가 아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리스크가 있지만 A를 X, Y, Z로 대응하는 신박한 종자들도 많다. 그걸 왜 꼭 그렇게 해야 해? 그걸 왜 해야 해? 그럼 잘 낚은 셈인가??



 하여튼 삶의 강박을 버리고,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고. 친구 녀석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보라고 하는데, 내가 점쟁이나 애꾸눈의 관심법 대가도 아니다. 세상은 고난의 행군이다, 하루하루 알차게 살아야겠다, 세상에는 고만 나갈 거다라고 하는 녀석의 말을 들으면 그럼에도 세상의 한 켠을 디딘 발을 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마음을 알기도 난해하고 복잡하고 지랄 맞은데 다랑 다른 모양, 재질, 색깔의 타인을 다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이란 공통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개별적인 것은 또 달라서 세상에 인생이란 소설이 다 다른 것 아닐까? 


 가끔 서로 기대기도 하고, 멍 때리기도 하고. 만나고 또 잊었다가 생각나고. 그러고 보니 계약서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구나. 까먹었었네.  친구 녀석에겐 '너 얼른 석사논문 배서해서 진상 안 하냐?"라고 퉁을 줬다. 갖고 오면 선물을 하나 한다고 했다. 덤으로 목욕하고 아저씨 일요일에 할 일 없으면 낮술이나 한 잔 하려면 연락하라고 했다. 일요일 집에서 등짝에 손도 안 닿으면서 구시렁거리는 걸 보니 외로운가 봐. 가을 지나고 겨울이 왔는데. 


#친구 #학교 #세상 #약속 #천상잡부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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