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다 말해 주었다
사무실에 작은 서재를 꾸민 이후에 갖고 싶었던 사진 책을 조금씩 사고 있다. 절반 정도는 도서관에서 본 책인데 다시 사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기억을 저장하고 기억을 꺼내 쓰는 동물이다. 그런데 기억의 왜곡은 자기 기분과 의도에 따라 해석이 틀어지게 된다. 게다가 기억의 망실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지만 그 망실과 망각 속에 추억과 행복도 있다.
텔레비전을 보지는 않지만, 유튜브를 보다 어제저녁부터 요란한 사건 사고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신기한 건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면 의외로 더 덤덤하다. GP에 있는 아들 녀석도 걱정되고, 달봉이는 자꾸 와서 물어본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그날 겨울 새벽에 할머니가 전쟁이 났다는 말과 계엄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 꼴을 40년이 넘어서 다시 듣게 되다니 참으로 참담하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다. 불현듯 조선시대의 당쟁과 사화가 참으로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화처럼 정리할 일도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의 일탈도 해본다.
자정이 다돼서 친구 녀석이 전화가 왔다. 와이프랑 식사하다 급하게 들어왔다는데, 이런저런 걸 묻는다. "야~ 낸들 알겠니?"가 최선의 답이다. 과거와 달리 미디어가 발달한 이 시대에는 책처럼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 남는다. 담배를 몇 대 피고 계속 라이브로 중계되는 영상들을 동시에 몇 개 띄워놓고 보게 된다.
늦게 사무실에 나와서 이런저런 일을 마치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보고 있다. '사진은 다 말해 주었다'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특히 컬러 사진보다 훨씬 강렬한 흑백사진, 큰 명암비 때문인지 더 흡착력을 발휘한다. 사진 속에 유명인과 일반인들의 사진들이 다양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오늘은 추억을 더듬어 보기가 어렵다.
80년대 한 장면으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른 멋진 사진이 있는데 이 사진이 또 새삼스럽다. GP에 있던 녀석에게 요란할 땐 얌전히 보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는 요란했는데 지금은 잠잠하다고 한다. 휴가 나온다고 했었는데 완전 꽝이겠네 자식. 해외에서도 괜찮냐고 물어본다. 베이비 녀석들은 일 이야기만 한다. 그때가 좋을 때지 뭐.
책 속에서 과거의 현장과 전민조라는 사진작가의 의도에 따른 프레임을 통해 추억의 세상을 본다. 그러다 문득 올해 사진들도 생각나다. 내가 찍은 많은 사진들도 전화기에 있지만 이 사진이 올해의 플리처 상 수준이 아닐까?
이 사진 지금 시대의 이야기를 많이 품은 사진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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