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사기
어제 새벽부터 읽기 시작했다. 사기(史記)를 처음 통으로 읽겠다고 시작한 때가 생각난다. 별봉이가 매일 조금씩 읽는 책을 보면 "이렇게 두꺼운 걸 언제 다 읽어요?", "오~ 어제보다 더 읽었네요" 하던 기억이 난다. 이보단 잘못 붙인 보호필름을 뒤에서 구경하며 "망했네 망했어"라는 탄식을 날리던 모습이 더 기억이 나지만. 그런 코찔찔이가 오늘 또 휴가를 나온다.
그땐 먼저 살다 간 사람 중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은 사람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아보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별로 아는 게 없지만 한 개라도 남은 삶 속에서 똑바로 하면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상황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고 생각했었던 과거와 지금은 또 조금 다르다. 호우시절이란 영화처럼 때에 딱 맞는 비를 만나는 행운이 바람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때가 되면 그때에 맞춘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사기 완역본을 본 뒤에서 역사책에서 인용되는 구절이나, 이렇게 저렇게 사기를 구성해서 나온 책들이 많다. 집에도 사무실에도 몇 권이 있다. 그 이야기 속의 사람들과 체화되는 읽기라기 보단 이야기 속의 맥락과 사람들의 태도와 생각을 읽어보고 내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버릇이 조금 생겼다. 그 관찰은 호기심에서 기인하고, 관찰을 통해 생각해 보며 사람들을 조금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왔다면 지금은 이런 연장선에서 나를 이해하는 부분에 시간을 더 많이 쓸 나이가 됐다.
책을 다 읽었다고 그 방대한 양이 머릿속에 다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나이에 맞는 조언을 사기(史記)와 맥락을 같이 하는 다양한 고전을 묶어서 이야기해 주는 글 속에서 기억을 더듬고, 내가 또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하고 조심해야 하는가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된다.
책의 한 구절에 말은 마음의 소리고, 글은 마음의 그림이란 구절이 참 좋다. 그런데 행동은 그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생각이 하게 된다. 군자와 소인이 하나는 뛰어난 지식이 있고, 하나는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소인도 뛰어난 지식과 학식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 성품과 가치관이 올바르지 못하고,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아는 것과 사용하는 것의 수준에 차이가 있음을 알고 또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간신론에서도 재미가 있었지만 김영수의 사기는 인간미와 따뜻함이 흘러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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