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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그리스 로마 신화

by khori

3주 전쯤 후배가 딸아이를 데리고 놀러 왔다. 아주 어려서부터 보던 녀석이 이젠 중학생이 되어간다. 가끔 갓난아이일 때 아이를 봐주던 일이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리스 로마신화가 재미있다고 해서, 집에 있던 양장본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건네줬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려서 이걸 만화책으로 보고, 주인님이 이렇게 보니 참 편하다고 한 시절이 있었는데.



최근엔 도서관에 갈 일이 드물어 동화책, 그림책을 보기가 힘들다. 간단명료하게 그림까지 있어 참 보기 좋다. 대신 작년부터 안데르센 동화집, 그림형제 동화책을 보다 이솝이야기도 사두었는데 아직은 쌓아두고 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몇 권 더 집어서 주고, 최근에 나도 다시 그리스 로마신화를 샀다. 책이 천 페이지가 넘으면 두께만으로도 압박이 있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의 만족감보다 마지막 장까지 가는 과정의 시간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너무 재미있어서 틈만 나면 책장을 넘기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은 그런 몰입과 즐거움이 예전 같지 않다.



내게 길 이름과 발음구조이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읽기 편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접한 이윤기의 문체도 스토리의 맥락을 이어가기엔 배경지식도 부족했었다. 그냥 좀 두껍지만 끝까지 읽는다는 생각이 더 많았다. 이렇게 읽어가면 내가 좋아하던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와 이야기, 각 나라의 신화, 한국의 신화를 보며 지역, 인종, 환경이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하다는 점을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보고, 듣고, 만져보고, 해보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란 인간에게 거기서 거기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작은 차이가 넘사벽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어제도 업계 후배와 차를 마시며 금을 준다면 다들 좋아하지만, 200Kg 정도 금을 던져주면 깔려주기 쉽지라는 말을 했더니 후배가 어이없는 표정을 하다 한참 서로 웃었다. 이런 덕후 같은 상상이나 인간이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욕망을 머릿속 상상력, 스토리로 풀어가는 것이 신화라고 같다붙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스스로 마블의 히어로우를 보면 현대적 신화의 재구성이라 생각하게 된다. 상당 부분 인기를 끄는 영화 중에 인간이 현실에서 하지 못할 능력과 스토리를 내포하는 것을 보면 신화라는 이야기는 계속되어왔고, 또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질 좋은 종이에 과거에 읽었던 책 보다 훨씬 읽기 쉬운 문체, 중간중간 들어있는 사진과 자료들이 풍성하다. 오랜만에 읽는 책에서 각 이야기의 내용을 보는 내 생각도 조금 다른 것 같다. 그 보이지도 않는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일까? 내 안이 생각범위에서만 너무 생각하는 것일까? 호기심과 내 생각범주의 안정적 사고 속에 매몰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고 있다. 어차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극과 반응을 통해서 내 현실에서 망하지 않는 방법을 아는 한 가지 수단이다. 그렇게 망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다양한 것들을 만나게 되고, 그걸 내 생각대로 다 하기는 어렵다. 근삿값일 뿐이다. 책을 읽고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괜찮은, 어이없는, 황당한, 기발한 그리고 바보 같은 생각들이 더 중요하고 한 번 기록해 보며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을 축적할 뿐이니까.



어차피 우리는 인간의 기원을 모른다. 신이 만들었는지, 외계인지 만들었는지, 과학적 접근처럼 무에서 유가 발생했는지 논쟁은 많지만 알 수 없다. 재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럼에도 신화는 기록의 형태로 가장 오래된 정보를 접근하며 원초적인 인간들의 사고를 돌아볼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인간의 끝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 죽는다는 전제가 있지만 언제인지 너도 나도 모른다. 그 기간 동안 어깨 위에 달린 뇌, 눈, 코, 입, 귀라는 정보입력과 처리 도구로 이것저것 해보는 수밖에 없다. 혹시 알아.. 뭔가 험한 게 나올지 기가 찬 게 나올지. 다 자기 하기 나름이고 이런 신화를 통해서 대략적으로 뭘 하지 말아야 할지 좀 깨닫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원래 성공하는 방식은 너도 나도 모르고, 망하는 방식은 대개 착하고 감이 오지.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을 잘 돌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이 번에 읽으면 다시 볼지 모르니 열심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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