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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Mar 20. 2023

나의 부실한 사회성이 내게 남긴 것  

  업무 특성상 1년을 주기로 인간 관계도가 뚜렷이 바뀌는 게  단점도 있지만 이렇게 일정기간을 단위로 시스템적으로 체인지되는 게 나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선 서로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 수년간을 얼굴 붉히는 일도 없고, 조금만 참으면 새로운 관계로 reset이 되기 때문에 한 직장 내에서 그렇게 많은 적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남들의 가정사를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들어주고 거기에 호응하며 내 라이프스토리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공개해야 하는 헤비한 관계가 아니라 딱 필요한 업무정도만 공유하며 열두 달을 보내는 것. 그러다 어느 정도 마음에 맞는 사람과는 그 관계를 다음 해에도 이어가는 것이고.


솔직히 나는 사회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많이 어려워하는 편이다. 몇 년간 부장을 하면서 동학년을 챙겨보고 연구회 팀장 역할도 하면서 더더욱 나의 소극적인 관계성을 스스로 느끼게 됐다. 남들은 지극히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부장, 팀장으로 나를 평가하기도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유지를 위해 내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힘들어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사적으로 친분이 꾀 쌓인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회식이나 시간을 내어 따로 모임을 갖고 싶지 않고,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마음을 먹고 상대방과 잘 지내보려 '열심히' 또는 '상당히' 노력하지 않으면 그들과 나의 관계는 "4지 선다형"의 보기에나 나올 정도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최근 2~3년간은  코로나 상황이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져 내가 가진 소극적 관계성을 아주 잘 드러내며 지내왔다. 직장에서 굳이 나의 가정사를 누군가와 수다 떨며 이야기 나눌 필요가 없었고, 어쩔 수 없는 부장회식을 제외하고는 동료들과  함께 외부에서 따로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것조차 마치 업무의 연장 같아서 먼저 제안한 적도 없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조차 교실에서 혼자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나 카톡을 하며 19평의 나 홀로 오피스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즐겼다. 직장생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소한 여러 사건 사고에도 무관심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진행되는 부장회의를 제외하곤 관리자나 다른 부장들과도 특별히 사적인 수다의 시간을 갖지도 않았다. 사회생활에서 누군가에게 굽신거리지 않아도 되고,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피곤함도 없으니 세상 편한 건 사실이더라. 승진을 위해 마땅히 인맥관리가 필요하다 여기지 않는 나로서는 더더욱.  나름 평안한 3년의 직장생활이었다.


그렇게 단조롭기만한 직장 내에서 나의 인간관계는 지나치게 낯을 가리고, 나만의 기준에 따라 상대를 내편으로 받아들이는 경계가 심하고 까탈스러운 INFJ의 성향 탓도 있고 한 번에 멀티가 되지 않아 소수의 사람들과 깊게 지내는걸 훨씬 편안해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많은 친구를 둘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생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운다는 말도 맞다. 내가 귀를 닫고 사람들을 멀리하니 배움이 흐려지고 무뎌지더라. 남들은 다 알고 있는 일들조차 내가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던 일이 하나둘 계속 쌓여 때론 의도치 않게 방관자 되어 있다.


타인에게 인색해지는 나를 느낀다. 다른 이들을 대할 때 관대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경험보다 나도 모르게 비교, 평가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았다. 평가의 결괏값보다 훨씬 더 값진 매력을 지닌 사람들을 놓치고 살았다.


생각보다 다른 이들에게서 많은 위로를 얻는다. 결혼생활, 직장생활,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와 걱정거리의 이야기를  서로 들어주고 함께 나누면서 내가 짊어진 무게가 그리 무겁지 않다고 누구나 비슷한 보통의 사람들이라 위로받으며 조금은 더 쿨해질 수 있게 된다.



'마흔 수업'이라는 김미경 강사의 책을 읽다가 내 연약한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내 나이 마흔의 내가 뭐하나 딱 부러지게 만족스럽진 않아도 지금이라도 나 스스로 못마땅한 부분을 찾아 노력해 보면 앞으로 남은 시간이 조금은 더 영양가 있진 않을까 싶어서.

내 부실한 이 부분부터 채워볼까 한다. 올해는 더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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