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작은 사막, 다대포
영혼이 지쳤을 때, 난 바다로 간다.
옛날에는 내가 외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장 생활 2년 반을 하면서 느낀 건- 난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습관이라면 습관처럼 나는 일을 하는 동안 주말마다 가능 한한 바다로 갔다. 회사라는 좁디좁은 공간에 갇혀있다 바다로 가면 왠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사실 바다뿐 아니라, 난 그저 물이 좋았다. 매번 같은 곳에 가는 게 지겨우면 호수, 강, 저수지, 심지어 아쿠아리움이라도 찾아갔다. 일렁이는 물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같이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부산은, 나에게는 최고의 도시가 아닐 수 없다. 7개의 해수욕장, 부산의 산과 바다 그리고 강을 잇는 갈맷길. 해운대에 위치한 아쿠아리움까지.
부산의 작은 사막, 다대포.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역시 다대포.
음악분수만 아는 사람도 많은데, 난 그것보단 바다가 좋다. 대체 백사장에 어떻게 이런 지층이 생기지?라고 고민이 될 정도로 사막같이 넓고 황량한, 백사장과. 밀물 때는 끝없이 멀리 물이 빠지더라도 어느새 멍 때리다 보면 점점 차오르는, 한치 앞도 너무 깊어 보여 들어가면 이대로 잠겨버릴 것 같은 바다. 다대포의 또 다른 매력은, 풀이 자란 곳을 볼 수 있다는 것. 하얀 백사장과 초록색 잡초들은 묘한 조화를 이루어서, 뭔가 아직은 살만하구나- 하는 이상한 안도감을 준다.
최근에는 다대포에서 바다미술제가 열렸었다. 내가 좋아하는 다대포와, 미술제라니.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기대만발! 이었는데, 백수 주제에도 뭐가 그리 바쁜지 미루고 미루다가 폐장 일주일 전에 다녀왔다. 버스에서 내려 분수와 공원을 지나면, 백사장으로 향하는 길에 바다미술제 안내소와 함께 시간을 기록한 듯한 통로가 나왔고, 통로를 지나면 잔뜩 멋을 낸 꽃다발을 든 아저씨와, 고백을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가 우리를 반겨줬다.
페북에서 보기로는 돌고래가 떠다닌다던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날아다니는 물체들은 없었고, 여러 가지 미술품들이 구성되어 있었다. 각각의 미술품들은 따로 또 같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초반에는 제목과 설명을 열심히 읽었지만 이후는 그냥 작품만 보았다. 구구절절한 설명들이 오히려 감상을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한 작품이 너무 기묘해서 설명을 읽었는데 보일 시(示)를 형상화 한 작품이라 했다. 개 한 마리가 줄에 매달려 있었고, 아래에는 개의 시체(같아 보이는 형상들) 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원래 보일 시가 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형상화 한 한자라 그렇단다. 일몰이 다가오는 시간이라 붉게 물든 하늘이 묘하게 어우러져 한층 더 기괴한 느낌이었다.
버스 탈 때부터 계속 경로가 겹쳤던 커플과 경로가 계속 마주쳐서 커플을 피해 반대로 돌다가 백사장 끝까지 걸었다. 원래 일몰이 유명한 다대포라 카메라 동호회 사람들이나 모델들 방문이 잦은 곳인데 백사장 끝으로 가니 가족들로 가득 찬 공간 같던 다대포의 원래 주인(?)들이 모여있었다. 낚시를 하는 사람, 윈드서핑을 즐기는 외국인들, 카메라 동호회, 개 산책시키는 사람, 등. 일몰까지 있고 싶었지만 이후 약속인 부대까지 제 시간에 가려면 아무래도 무리일 듯하여 커피 한잔을 사들고 버스를 탔다.
광안리나 해운대가 아닌, 조금은 외진 부산 바닷가를 가려 버스를 탈 때면 늘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짧은 여행과 휴식을 마치고 오면 살짝 피곤한 느낌과 함께 왠지 모를 힐링을 하고 온 느낌. 그렇게 한번 숨을 쉬고 오면, 당분간은 또 조금은 살만하다. 직장인일 때는 그렇다 치고 다 싫다고 놓고 쉬고 있는 요즘은 또 뭐가 그리 답답한지,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하루하루에서 게으름과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된 심정으로 살아간다.
조만간, 다시 한번 숨 쉬러 바다로 떠나야겠다.
+ 해당 사진들은 바다미술제 사진과, 올봄의 사진이 섞여있음.
++ 바다 미술제 사진을 제외한 사진협조 @muk_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