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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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거리응원은 나가본적이 없었다. 대신 같은 해 엄마손에 이끌려 미선이 효순이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촛불을 들고 광화문 한자리를 지켰다. 그 해 여름은 무척 더웠고, 아버지가 뜻밖의 사고로 갑작스레 혼자 외롭게 돌아가시기도 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두가지 철칙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1)기쁜일은 함께하지 못해도 슬픈일은 반드시 함께한다. 2) 사람은 혼자 죽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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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름휴가에는 전국에 장맛비가 내린다. 노란 팔찌를 차고 목포신항을 찾으면서 늦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막상 마주한 비극의 두께는 생각 그 이상이었다. 우리사회 문명의 실패, 무책임, 탐욕과 수치 그 모든것을 상징하는 주홍글씨 세월호가 내 앞에 오래된 민낯을 드러냈을 때 그 생생함 앞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지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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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나는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에 기자미팅을 가는 중이었다. 오전 11시가 좀 넘은 시간, 다리를 건너는데 여의도 건물들이 보이지 않을만큼 흐릿하게 낀 안개가 그저 조금 이상하다고만 혼자 생각했을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 다 마셔갈 무렵, 기자는 선배들의 호출을 받았다며 다급하게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오후 마주한 소식들은 많은 이들에게는 처참하고 참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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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 그리고 너무 오래됐으면서 오늘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 주제에 대해서 나는 오랫동안 글쓰거나 말하는 것을 꺼려해왔다. 어려울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직접 세월호 앞에 가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 큰 비극앞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작지만 맡겨진 내 일을 떳떳하게 해나갈 것.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 탐욕과 이기심 앞에 우선순위를 혼돈하지 않도록 가치확립을 명확히 할 것. 약자 앞에서 약하고 강자 앞에서 강해져 보도록 할 것.
남의 아픔을 지나치지 않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계속 물주고 가꾸어 나갈 것.
짧은 1박2일의 휴가가 내게 준 다짐으로 인해 일상으로 되돌아갈 힘을 얻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