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뵙고 왔다. 오전 8시30분,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진주에 도착하니, 12시가 잠시 지난 시간이었다. 아침도 거르고 버스를 탔는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1년 넘게 혼자 계시고, 동생 내외가 이사를 떠난 뒤로는 평소에 드나드는 이도 없이 혼자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주 가야지' 늘 생각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발걸음이었다.
집안에 들어서니, 약간 곰팡내가 풍겼다. 얼마전 돈을 들여 수리했다던 벽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약간 슬었는데, 문을 꼭꼭 닫아두고 있다보니 냄새가 찬 것이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부터 했다. 넓은 거실 창문 한가득 햇빛이 쏟아지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다 문득, 혹시 냄새를 못 맡으시나? 냄새 못 맡는 것은 치매 초기 징후 중 하나라는데... 살짝 불안감이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것 말고는 깨끗했다. 혼자 계시지만, 항상 정돈된 모습, 그 실내 풍경 한가운데 엄마는 꽃병처럼 앉아계셨다.
부랴부랴 아침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온 이유도 어머니 기억력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전화로 방금 나눈 대화도 깜빡깜빡 잊는 경우가 잦아서 한 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깨끗하게 주변이 정돈되어 있고, 냉장고나 주방 등 어머니 생활 공간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매주 월 목 토 새벽마다 목욕을 다니시고, 기도 하시는 방에선 기분좋은 향내음이 그득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한데, 오후 3시반 무렵 아버지와 잠깐 화상전화를 하고 난 뒤 30분 쯤 지났을까, 불과 30분 전 통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계신 모습에 깜짝 놀랐다. '설마...' 했던 일을 눈 앞에서 직접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한 순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앞이 깜깜했다. 어머니....
아버지와 대화한 내용을 상기시켜 드리고, "아버지한테, '사랑한다'고 까지 하지 않으셨냐"고 하니 그제서야, "아,"하신다. 그러고 잠시 뒤, 다시 까먹고............. 이렇게 서너차례 반복한 뒤, 일일이 노트에 적은 뒤에야입력이 제대로 된 모양이다. 이 기억은 또 얼마나 유지될까.
어머니가 쓰시는 노트를 살짝 펼쳐보니 메모가 빼곡하다. '엄마도 애쓰고 있었구나...' 신기한 점은 옛날 일은 다 기억하시는거다. 그러니까, 메모리가 새로 입력이 안 되는 상태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치매초기인지 건망증인지는 모른다고 본인은 계속 주장하시는데, 치매 부모를 겪어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시작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고 보니 메모 노트에 아버지를 'ㅇㅇ씨'라고 연애하는 사람처럼 적어 놓으셨다...엄마는 혹시 그 시절에 가장 행복하셨던건가?작년에 들어둔 어머니 치매 간병 보험이 다음 달이면 1년이 된다. 조마간 모시고 병원에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