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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gle Rider Aug 01. 2020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

나의 추억과 엄마의 기억

"나는 OO는 다시 가기 싫다."

내게 추억의 장소가 어머니에겐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어머니는 항상 즐거우시다. 아버지의 건강, 재정상태, 서울과 경기도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의 집값 걱정 등 신경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점점 희미해지는 엄마의 기억 속에서 이런 일들은 쉽게 잊혀지곤 한다. 요즘 부쩍 어머니께 자주 전화를 드린다. 그때마다, 왜 그동안 더 자주 어머니께 전화드리지 못했을까 후회한다. 화상통화라도 하는 날이면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머리 속에는 온갖 골치거리를 다 안고 살고, 그 해결해야할 문제들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용돈도 제대로 드린 기억이 별로 없다. 그때마다 내 마음 속에선 '언젠가는 ...' 이란 말이 있었다. 그렇게 20년 넘게 사회생활과 직장생활, 결혼생활이 이어졌다. 내게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겼고, 또 많은 해야할 것들, 지켜야할 것들을 미루면서 살았다.

그 사이 어머니는 늙고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어떤 날은 오전에 내가 전화했던 일도 까먹고, 아버지와 어디 마실 가는 길에 어디 가냐고 물으면 또 "몰라"라고 하신다. 그래도 즐겁다. 항상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일이 즐거운 모양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쓰시는 노트에 남겨진 메모를 봤다. 하도 깜빡깜빡하시니 통화 내용이나 해야할 일, 누군가와 주고받은 약속 같은 것들을 기록하는 메모다. 거기에 아버지 이름이 적힌 것을 봤다. 누구누구 아빠나 남편이 아닌 'OO씨'라고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7살 차이가 난다. 아마도 저런 호칭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불렀던 호칭이리라. 그 호칭을 아직도 두 분 사이에선 쓰고 계신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아내한테 '아빠'라고 불릴 뿐인데...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두 분만의 비밀을 엿본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어머니는 아버지랑 계시는 게 제일 행복하신가. 이런 생각이 드니 약간 서운하다가도 한편으로 위안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랑 나중에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고향 OO에 있는 요양원에 모시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서울 생활은 힘들고 지금 계시는 곳도 아버지 일 때문에 중년 이후에 터전을 잡고 사신 곳이다. 그럴 바에야 나의 사촌들,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조카들이 요양원 사업을 하고 있는 그곳에 가서 말년을 보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드린 말씀이다.

어머니는 "나는 OO는 다시 가기 싫다" 그러신다. 수시로 마음이 바뀌시기는 하지만,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냥 싫다고 하셨다. 내가 "어릴 때 나는 고향이라서 엄마 아빠도 거기서 계시면 될 것 같아서..."라고 하다보니, 어머니에게 그 곳은 고향도 아니고 결혼하자마자 고된 시집살이를 한 곳이어다. 그곳에 다함께 늙어가지만 시누이들도 있고, 아버지가 한번 보란듯이 성공해보겠다고 떠나셨다가, 30 여년 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가기는 싫으신지도 몰랐다. "나는 추억인데, 엄마한테는 힘든 기억이었을 수도 있겠네.." 그랬더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대신 "그래 너한테는 어린 시절 추억, 고향 맞구나..." 

우리는 기억으로 산다. 어머니는 요즘 깜빡깜빡 하시지만, 옛날 일은 고스란히 다 기억하고 계신다. 아마도 새로운 기억이 입력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휴가 때 해야할 중요한 일 1호, 어머니 모시고 치매검사 받기다. 이미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서 치매안심센터도 다녀오고 하셨는데, 치매는 아니라고 한다. 건망증이 심할 뿐, 하지만, 정밀검사라도 받아보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일 것 같다.

아, 어떻게 생각하면 옛날 행복했던 기억만 갖고 살고, 현실의 고된 일들을 잊게 만들어주는 엄마의 선택적 기억을 굳이 되살려서 힘들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한다. 어쨌든 엄마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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