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의 죽음을 기록하다

반려견과의 이별이 내게 남긴 것

by 홍마담
20171002 마티가 기침을 많이 하고 발작을 하며 쓰러져서 병원에 데려갔다. 심장병 판정을 받았다. 앞으로 매일 두 번씩 심장병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심장병 약을 먹기 시작하면 신장이 안 좋아져 2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20171224 마티의 독사진과 가족사진을 찍었다.

20181216 엄마가 마티가 밥을 왜 조금 남겼냐고 했다. 사료는 먹지 않은지 꽤 됐고, 고구마나 고기는 삼키기 좋을 정도로 잘게 잘라 밥과 함께 주면 맛있게 먹었는데, 먹는 속도가 더뎌졌고, 전만큼 많이 먹지 못하고 있다.

20190111 마티가 밥 먹는 게 영 부실해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북엇국을 끓여 밥을 말아줬는데 반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온몸에서 냄새가 많이 났다.

20190123 엄마가 마티가 혼자서 밥을 못 먹는다고 했다. 고구마를 좋아해서 고구마를 삶아주라고 하니 입을 벌리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 노견의 상태가 아니다.

20190124 밥을 먹지 않았다. 미음을 만들어 주사기로 주입했다. 다행히 자기 힘으로 똥을 쌌다고 해서 안심했다. 유독 왼쪽 눈에 눈곱이 많이 껴서 왼쪽 눈을 뜨지 못했다. 따뜻한 물을 적셔서 떼어주는 데도 눈을 잘 뜨지 못했다. 방에서 혼자 강아지 죽기 전 증상, 강아지 장례식을 검색해보았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실감이 나는 것 같다. 만약 마티가 죽으면 일산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20190125 집에 와보니 마티가 한쪽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치매나 뇌 등에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나는 써클링이라는 문제행동이라고 했다. 노령견의 죽기 전 증상이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어 더 걱정스러워졌다.

20190126 마티가 혼자 힘으로 미음을 먹었다고 했다. 어제보단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20190127 어제와 비슷한 상태. 여태까지 크게 아픈 곳 없이 잘 살아왔듯 어쩌면 이번에도 잘 버텨줄 수 있을지도.

20190128 물은 마시는데 밥을 먹지 않았다. 미음에 삶은 고구마를 넣어 주사기로 주입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만 자고 잠깐 일어나도 한쪽으로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마티가 여태 내가 알고 있던 마티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늙고 병든 몸에 갇힌 마티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행복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엄마가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울었다.

20190129 계속해서 밥을 먹지 않았다. 자꾸만 걱정스러워져 마티의 아기 때 사진을 다시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20190130 엄마와 논의 끝에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출근을 해 엄마가 병원에 데려갔다. 마른 몸에 피를 뽑아 검사하는 것도 걱정되어 검사하는 걸 쳐다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신장과 간수치가 너무 좋지 않아 입원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짧으면 이틀, 상태를 봐서 입원 기간은 조정하기로 했다.

20190131 다행히 신장 수치가 좋아졌다고 했다. 통조림도 조금 먹었다고 했다. 퇴원을 할까요,라고 하니 하루만 더 입원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고비를 넘기면 어쩌면 몇 달을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희망이 생겼다.

20190201 18시. 마티를 퇴원시키러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어제까지 마티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는데, 오늘 검사해보니 신장 수치는 조금 나아졌지만 간수치가 좋지 않다고 하셨다. 마티를 깨우는데 갑자기 심하게 떨더니 자리에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놀라 눈물을 흘리니 의사 선생님이 사실 신장과 간, 담낭, 호르몬, 치매 등 너무 상황이 안 좋아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일단은 퇴원을 시키고 집에서 쉬게 하기로 하고 마티를 안고 있는데 몇 주 동안 한 번도 짖지 못했던 녀석이 무엇이 문제인지 캉캉 짖었다. 약을 며칠 치 지어야 할지 어렵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마티를 담요에 감싸 집으로 데려오며 이것이 마지막 산책임을 직감했다. 눈도 멀고, 귀도 안 들리는 마티는 무서워서 떨며 짖었다. 집에 데려왔더니 더 이상 짖지도 않고 혼자 힘으로 물을 잘 마셔 약간 안도했다. 내가 안 보는 새 마티가 죽을까 봐 계속 마티를 살폈다.

20190202 낯선 병원에서 익숙한 집으로 오니 안심이 되는지 혼자 힘으로 걷기도 하고 물도 마셨다. 밥은 여전히 주사기로 먹여 주었다.

20190203 입을 벌려보니 혀와 잇몸이 모두 회색이었다. 거의 잠을 자고, 가끔 일어나면 써클링을 하고 있다.

20190204 아침에 물똥을 쌌다. 좋지 않은 징조다. 물을 혼자서도 많이 마셨는데, 밥은 주사기로 넣어주어도 삼키지 않았다.

20190205 명절은 같이 쇠기를 바랐는데 다행히 잘 버텨주고 있다. 물 마실 때,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을 누워있다. 그마저도 억지로 깨워 먹여야 하지만. 눈곱이 너무 많이 껴있어 눈을 뜨지 못했다. 따뜻한 물에 적신 타월로 얼굴을 씻어내고 있지만 일시적일 뿐 금세 다시 눈곱이 껴 효과가 없었다. 부쩍 목을 가누지 못해 잠시 일어날 때면 머리가 자꾸 바닥으로 쏠린다.

20190206 명절이 끝날 때까지 버텨주었다. 대견했다. 다음 주 까지는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급속도로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호흡을 할 때마다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가 났다.

20190207 출근 전 마티를 일으켜 세워 물그릇을 앞에 가져다주니 혼자 힘으로 먹기에 안심했다. 오랜 시간을 버티진 못하지만 서 있기도 했다. 그러나 퇴근길에 엄마한테 마티가 심하게 떤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귀가했다. 오줌은 무조건 제 집이 아닌 마룻바닥에 올려놔야 눴는데, 엄마에게 안긴 상태에서 엄마의 옷에 눴다고 했다. 상태가 아침보다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주사기로 밥을 주입해도 입을 벌리지 않았고, 물을 마시게 하려고 잠깐 깨워도 금세 잠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 주를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몇 번 울었다.

20190208 아침에 물을 먹이려고 일으켜 세웠더니 발에 힘이 없어 서서 버티는 걸 힘겨워했다. 간신히 물만 먹이고 출근을 했다. 오후 한 시쯤 엄마에게서 마티가 토하고 몇 번 비명을 질렀다는 전화를 받았다. 여섯 시쯤 집에 돌아와 보니 눈곱이 껴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던 아이가 오히려 눈이 떠있는 채로 감지를 못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지 약한 숨을 쉬며 잠을 자다가도 삼십 분마다 한 번씩 비명을 지르고 입을 벌리고 고통에 아파했다. 일곱 시 반 정도부터는 오 분에 한 번 꼴로 비명을 질렀다.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옆을 지키고 있다가 잠시 일분 정도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마티가 이상하게 고요했다. 맥을 짚어보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반쯤 정신이 나가 오열을 하며 마티가 누웠던 자리를 다시 살펴보니 구토 자국과 소변 자국이 있었다. 20시 37분. 마티가 정말로 떠났다. 마티의 장례를 예약하고 타월을 따뜻한 물에 적셔 마티의 몸을 잘 닦은 후 담요로 감싸 박스에 넣는데 이미 마티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검은 옷을 입고 장례식장에 갈 채비를 한 후 마티와 함께 마티가 누비고 다녔던 집안 곳곳을 돌았다. 일산에 위치한 애견 장례식장에서 밤 열한 시 반쯤 마티의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했다. 마티는 곱지만 한 줌도 안 되는 하얀 가루가 되었다.




2003년 한 살의 어린 아기 마티

생로병사. 그 당연한 삶의 진리가 왜 나만큼은 비껴갈 것이라 생각해왔을까. 늙음과 죽음은 생의 순리일진대 나는 그것이 두려워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늘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마티와의 만남도 그랬다. 몽글몽글한 흰 털을 지닌 작은 존재를 처음 만났을 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그 사실을 나는 아득하게 떠올렸을 뿐이다. 그 깜찍한 존재를 마냥 귀여워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한 생명과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나듦을 함께하고, 병 들어감을 지켜보고,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먼 훗날의 일일 것이라며 애써 외면했다.

2009년 일곱 살 단발머리 마티. 제법 큰 티가 난다.

우리는 함께 자랐다. 어린 마티는 막냇동생 역할을 톡톡히 하며 적막했던 집안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제 집이 있음에도 매일같이 같이 자겠다며 침대에 올려 달라 컹컹 짖었고, 종종 무뚝뚝한 아빠와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온종일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에너지를 발산했고, 산책을 가자고 목줄을 꺼내면 빙글빙글 돌고 방방 뛰며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건강하고 반짝반짝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내가 학생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고, 마티가 열 살 정도가 됐을 때, 마티는 이미 많이 달라져있었다. 구름처럼 곱슬곱슬하면서도 윤기가 나던 흰 털은 매끄러운 기운을 거칠어졌고, 아이라인을 한 것 마냥 진하고 뚜렷했던 눈은 노인의 그것처럼 뿌연 막이 덮인 듯 흐릿해졌다. 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사람의 시간과 개의 시간은 서로 다른 심장박동의 속도만큼이나 달라서 내가 청춘의 시간을 막 만끽하고 있을 때, 어느새 마티는 그것을 지나 노견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실을 결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마티가 늙어 언젠가 나보다 먼저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청춘이 내게 언제나 유효한 것이라 여겼듯, 나만큼은 더디게 늙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듯, 마티 역시 평생 내 곁에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철부지 어린 시절의 생각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때 불행하게도 시간은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2017년 열다섯 살 노견. 심장병 판정을 받고 독사진을 찍었다.

내가 서른이 되었을 때, 마티는 열다섯 살이 되었다. 누가 봐도 너무 늙은 강아지였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냈고 신체능력을 상실했다. 잘 보지 못했고 잘 듣지도 못했다. 그 해 가을, 마티는 심장병 판정을 받았다. 길어야 이 년 정도를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은 내가 여태 애써 외면해오던 그 사실, 생로병사의 비극을 억지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티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고 마티의 독사진 또한 찍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티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여전히 죽음은 아득한 개념이었고, 나는 그것이 두려웠으며, 왜인지 마티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죽기 일주일 전 앙상해진 모습의 마티

열일곱 해를 살고 바람이 거셌던 겨울날 마티는 죽었다. 뼈가 다 드러나고 푸석한 털이 거뭇거뭇해진 모습으로, 허옇게 불투명한 눈을 감지도 못하고 모든 생명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채로 숨을 거뒀다. 마티가 죽은 날, 나는 아주 많이 소리치고 울었다. 이미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짐작했으면서. 영정사진을 준비하고, 장례식장도 알아봤으면서.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연차까지 사용하며 이별을 준비했으면서. 막상 마티의 죽음이 닥쳤을 때 그것을 아득히 생각했던 만큼이나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의 분출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는 괴성을 지르며 오열했다. 상실이 이런 건 줄 미리 알았다면 만남을 선택했을까. 이별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더라면 사랑했을까. 함께 늙어가고 먼저 떠나보낸 후 그토록 사랑했던 존재의 영원한 부재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 주인의 숙명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반려견을 들이는 것을 숙고했을 것이었다.


2019년 마티의 장례

영원한 이별을 아득히 생각해온 것의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으며 고통스러웠다.




여전히 남아있는 마티의 흔적

마티가 죽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사무치다’라는 언어에 담긴 의미를 나는 이제야 사무치게 깨닫고 있다. 그제 아침엔 마티의 옷을 정리하다가 옷 안쪽에 붙어있는 몇 가닥의 흰 털을 보곤 주저앉아 울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마티의 침대에 마티의 동생 마루가 누워있는 것을 보곤 욕실에서 샤워기를 틀어놓고 몰래 울기도 했다. 어느새 핸드폰 사진첩에 담긴 수백 장의 생전의 마티 사진을 보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인터넷에 반려견을 떠나보낸 이들의 수많은 사연을 보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은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고통스럽고 아팠다.


비통함과 애석한 마음을 도저히 제거할 길이 없어 마티의 죽음 이주 전부터 나는 그것에 대해 썼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시작했던 그 행위는 분명히 괴롭고 힘듦에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티와의 만남과 이별, 그 시간을 반추하는 것이 내게 단단한 극복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해야 할까. 마티, 그 작은 존재의 짧았던 일생을 되짚으면서 나는 놀랍게도 새로운 통찰을 발견하고 있다.


돌아보건대, 견종 소개에서의 어리광이 능숙하고 붙임성이 있다는 보통의 몰티즈 성격 와는 다르게 마티는 언제나 제 기분이 우선인 까다롭고 예민한 강아지였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마티의 눈치를 봐야 했고, 녀석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엔 조심스레 접근하며 살살 달래야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티가 마냥 사랑스러웠다. ‘지가 사람인 줄 안다니까.’ 아이의 깜찍한 천재성을 자랑하는 여느 부모처럼, 나는 종종 마티의 유별난 예민함을 비범함으로 포장해 떠들었다. 버릇없이 성질 머리를 부려도, 좀체 내 말을 듣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주지 않아도 사랑했다. 늙었어도, 아프고 병들어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도, 나는 그냥 무작정 그 존재 자체를 사랑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온 자아를 내주며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내게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다시 한번 마티를 만나기 전으로 되돌아가 이별이 정해져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랑하기를 망설였을까. 대가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무한한 사랑, 그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 그것은 그 자체로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마티를 통해 알았다. 이별은 그 사랑을 결코 바래게 하지 못했다. 마티를 알게 된 후, 무한한 사랑을 진실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을 새로이 깨닫게 된 것이다.


마티의 죽음. 그것은 나의 일상을 무너뜨릴 정도로 깊은 아픔을 주는 일이었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존재의 부재는 뜻밖에 내게 삶을 면밀히 돌아보고, 죽음에 대해 강력히 사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언제나 늙음과 죽음이 두려웠다.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젊음을 찬양하고 노년을 추하게 표현하는 청춘예찬의 사회에서 살아온 자로서 나이 듦과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이 같은 이유로 나는 늙음과 죽음은 허약하고 애석하며, 감당할 수 없이 슬프고 무서운 것이라 여겼기에 도피하고 외면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강한다. 봄, 여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 초승달은 보름달의 모습을 했다가도 이내 그믐달로 변하고야 만다. 피는 것은 지고, 차오른 것은 사그라진다. 살았던 것은 죽는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깨닫고 있다. 그것이 곧 절망은 아니라는 것을. 모든 존재는 생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간다. 어떤 것은 후손을 남기고, 어떤 것은 이야기를 남긴다. 마티는 사랑과 가르침을 구석구석에 남기고 떠났다. 그 어떤 존재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그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니 죽음이 있다고 해서 삶이 덧없다 말할 수 있을까. 마티는 당연하지만 위대한 삶의 진리를 내게 깊숙이 알려주었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우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십칠 년이란 짧은 기간을 머무르고 떠난 마티의 존재는 지극히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하찮지 않았던 그 작은 존재가 남기고 간 가르침을 통해 삶의 선한 순리를 이제야 받아들이고 있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마티와의 이별,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이 결국 나를 얼마간 성숙한 존재로 이끌어준 셈이다.


앞으로도 어김없이 이별은 몇 번이고 나를 찾아올 것이고, 나 역시도 꾸준히 늙음을 향해 가겠지만, 나는 마티와의 이별을 통해 깨달은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더 이상 늙음과 죽음을 외면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사그라지고야 말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득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나의 동생, 마티를 사랑하며 깨달았다.



마티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마티야, 잘 지내니? 네가 죽기 전 네 귀에 대고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사랑한다고 수십 번이나 외쳤지만, 이 세계에서 이미 귀가 멀었던 게 자꾸 맘에 걸린다. 지금은 잘 들리니? 영원한 내 동생 마티야, 고마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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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마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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