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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혼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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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마담 Oct 20. 2023

불합리한 웨딩 업계에 대응하는 자세: 실패 ver.

성대한 파티에, 모두가 다 주인공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다시 결혼식을 치르는 모양이었다. 꿈인 걸 그 즉시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어도 나는 모호하게나마 이것이 처음 치르는 결혼식은 아니구나, 짐작했다. 어쩐지 확실히 확인해야만 할 것이 있는 것처럼 꿈속에서 내 시선은 곧장 천장으로 향했다. 거대하고 호화로운 샹들리에가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이젠 됐다는 듯 충분히 안심하곤 잠에서 깼다.




그 무렵 나는 확고했다. 한 시간가량 진행되는 예식에 ‘어마무시한’ 비용을 할애하진, 아니 태워버리진 말자. 가성비로 진행해 버리자고, 그래. 난 진짜 욕심 없어. 진짜야!!

     

그이와 나는 특히나 이런 면에선 더욱더 찰떡궁합이었다. 결혼에 대한 별다른 ‘로망’이나 욕심이 없던 까닭에 결혼 준비는 원만하고 매끈하게 흘러갔다. 서른다섯, 여태 내가 참석한 식의 숫자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두 바퀴씩(어쩌면 세 바퀴) 돌아가며 세도 한참 모자랐다. 화려한 꽃들로 꾸며진 호화로운 식장 안, 신부가 된 모든 친구는 평생을 궁궐에서 살아온 듯 공주같이 우아하고 예뻤으며, 나는 언제나 그 분위기에 압도됨과 동시에 콧물까지 흘려가며 순박하고 유치한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가 진정으로 어른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축하했다.   

   

그리곤 모두 깔끔하게 휘발되었다.

      

콧물까지 흘리고 닦아가며 감정이 요동쳤던 것치곤 망각의 파워는 끔찍하게 강력해서 나는 누군가의 결혼식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면 별다른 말 없이 ‘아, 맞아, 맞아’ 하는 AI 식 맞장구만 기계적으로 치곤 했다. 첫째, ‘사실 큰 관심이 없었고,’ 둘째, 진짜로 ‘까먹어버린’ 탓이었다. 친구가 입은 드레스는 어떤 디자인이었는지, 헤어스타일은 로우번이었는지, 미들번이었는지. 부케는 무슨 꽃이며 어떤 색이었는지. 식장은 몇 층이었는지, 신부 대기실은 어떤 형태였는지, 웨딩사진은 어땠는지, 청첩장엔 어떤 문구가 적혀있었는지, 덕담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은 탓에 빠르게 휘발되었고, 그저 제공된 음식의 ‘맛’과 공주 같던 신부의 ‘느낌’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어디선가 결혼식에 쓰이는 비용 얘기를 주워 들었을 때 질겁하며 기함했던 것은 당연한 일일 터. 결혼식에 쓰이는 대략적인 비용을 알게 된 후로 나는 결혼식을 가면 종종 개그맨 장동민을 떠올리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모 대학 축제에서 터지는 불꽃을 보며 했다는 가히 ‘레전드’로 꼽히는 그의 발언을 생각했다는 것이 맞겠다.   

   

“지금 여러분의 등록금이 밤하늘에서 펑펑 터지고 있습니다!!”     


결혼식의 그것이 대학 축제와 다를쏘냐. 신랑 신부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수백만 원의 돈이 뿌려진 바닥 위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상상, 주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수십만 원씩 공기 중에 흩어져 녹아내리고 있는 상상. 그런 상상을 하며 몸을 떨었다.

      

내 일이 되어보니 실상은 더했다. ‘웨딩 업계’는 내가 아는 세계의 것들과는 세상 딴판이었다. (이곳이 진정한 이세계(異世界)가 아닐까, 싶을 정도) 결혼이라는 것이 웬만하면 ‘일생에 한 번 있을’ 행사로 여겨지는지 그들은 나를 한번 보고 말 사람 취급했다. 단골이 필요 없는 업계답게 그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불렀고, 그마저도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고객마다 ‘비밀스럽게’ 각기 다른 가격을 요구했다. 환불? 환불의 개념 따윈 이 세계에선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불합리 그 자체랄까.

     

그것이 영 꼴 보기 싫고 얄미워 다짐했다. 나만큼은 절대 많은 돈을 투자하진, 아니 호구 잡히진 않으리라. 이 불합리한 결혼식 문화에 기필코 저항하고 말리라…!  

    

기필코. 결혼식이라는 게 뭔가. 사랑하는, 하지만 완전한 타인과 결합해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는 인연의 시작과 평생 해로를 사람들 앞에서 다짐하는 엄숙함이 흐르는 자리가 아니던가. 그 의미가 중요한 거지, 화려할 필요가 있나. 많은 돈을 쓸 필요는 없지.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대충 이 정도면 될 것 같아.’ 두어 군데의 식장 후보지를 둘러본 후 개중 나은 곳으로 빠르게 계약금을 지불한 날, 어쩐지 백 퍼센트는 아닌 듯한 만족감, 묘하게 ‘화사하지 않은’ 마음의 원인을 찾은 건 식장에서 핸드폰으로 찍어온 사진을 돌려보던 순간이었다. 그 사진은 고요했던 마음속에 소란함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내면에 잠자고 있던 요란함을 깨우고 있었다.

     

이런 말이 있지 않나. 앙꼬 없는 찐빵, 김 없는 김밥, 잉크 없는 만년필,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해서 샹들리에 없는 식장은 어떨까. 제1의 기준으로 세웠던 합리적 가격 외에도 나름대로 교통,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지들을 위한 위치, 식사 등을 고려해 결정한 식장이었다. 허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면의 불만족을 인식한 직후 어딘가 희미하게 윙윙대는 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가성비라지만, 샹들리에 없는 식장은 좀 그렇지 않아?       

   

?     


대체 무엇이 ‘좀 그렇단’ 말인가. 그동안 ‘프로 참석러’로서 수많은 식에 참석하면서 단단하게 다져온 내 개똥철학에 따르자면 샹들리에란 도대체가 결혼식을 치르는데 고려할 기준에서 단 1%, 아니 0.5%의 지분도 갖지 못할 녀석임이 틀림없었다. 대체 그따위 것을 누가 신경이나 쓴단 말이야? 서연주, 제발 정신 차려. 35년 묵은 이성은 냉정을 되찾자며 나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샹들리에에서 시작된 내부의 미묘한 소란함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나중엔 만족하고 고른 ‘추가금 없는’ 기본 드레스에도, ‘적당한 가격’의 촬영 업체에도 의심이 생기균열이 기 시작했다. 이거야 원, 갈수록 태산이었다.    

  

애써 장난인 척, 가벼운 척 털어놓은 내 고민을 들은 친구들은, 뭣이? 샹들리에? 이야, 결혼 생각 없다더니 살다 살다 이젠 탭댄스까지 추면서 입장하는 신부 보는 것 아니냐고, 왜 이렇게 요란을 떠냐며 놀려대기 바빴다. 이게 웬 ‘쪽’인지, 나도 입을 다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대체 내가 왜 이렇게 사사로운 것에 신경을 쓰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샹들리에’는 급기야 내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민까지 불러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은 며칠 후 저녁, 엄마와의 통화에서 뻥, 터져 나왔다.

      

양가 부모님의 메이크업은 나름대로 동선이나 어른들의 체력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아니, 아니다. 이 자리를 빌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메이크업’은 덜 깊이, 중하지 않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부모님들 메이크업은 편하게 가자며 식장을 계약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함께 예약을 마쳤는데, 그 내용을 전해 들은 엄마가 믿기지 않는 듯한 당혹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엄마는 왜 청담동 샵이 아니야?”          



예상치 못한 ‘청담동’이란 단어의 등장에 어버버, 내 말문이 막혀버렸다. 다소 천진하고 독특한 부분이 있긴 해도 그녀는 ‘보편적’ 엄마처럼 자식 먹이고 입히는 데는 아까워하지 않을지언정 본인을 위한 지출은 최대한 아끼는 전형적인 ‘엄마 사람’이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사치가 심하거나 과하게 과시하는 타입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비싼 메이크업샵을 원한 것도 그렇지만 ‘우리 엄마’가 청담동이 메이크업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뭔가 더 충격적이었다. ‘우리 엄마’의 입에서 ‘청담동’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얼이 빠져 뭐라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엄마는 볼멘소리로 다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청담동의 충격 때문인지 매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피부과.. 이백 만원을.. 레이저가...’ 몇 개의 단어가 윙윙 어지럽게 울리는 듯했고, 그 끝에 이 말은 또렷이 귀에 박혔다.

     

“니네 아빠는 가발 하나 더 맞추겠단다. 백만 원이나 주고는. 새치도 있는 좀 더 자연스러운 놈으로 한다고.”

     

이건 도저히 내가 알던 모습들이 아니었다. 그 누구든.

     


그것이 다인가 하면, 애석하게도 당연히 그럴 리 있겠는가. ‘결혼은 둘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 진부한 진리를 나는 아주 따갑게 깨닫고 있었다.      


한복집을 예약했다는 말에 시어머니는 그이를 통해 친한 친구가 운영한다는 한복집 링크와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그 메시지에 어떤 숨겨진 뜻이 있는 것인지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했다. 1) 단순한 친구의 한복집 홍보(?) 2) 예약한 곳이 마음에 안 든다. 3) 좀 더 여러 곳을 가본 후 ‘비교분석’하고 싶다.

    

아, 1번은 도저히 아닐 것 같은데. 예식 날짜는 단 한 달 뒤. 이미 스케줄을 고려해 예약을 마친 상황에서 2번이든 3번이든 곤란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예약한 곳을 먼저 가보고 마음에 드는 게 없으시면 거기도 가보자고 말씀드리자.”      


난감하고 복잡한 마음을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 건넨 최선의 말이었다.    

  

한복을 고르러 간 날은…, 그날은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내가 혹시 대배우의 대기실에 잘못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연말 시상식을 앞두고 배우들이 스타일리스트를 만난 듯 그들은 분주하게, 그리고 몹시 꼼꼼하게 따지고 돌아보며 당당하게 요구했다. 다시, 아까 것 다시, 이것도 한 번 입어볼게요. 난 이건 거추장스러워, 떼주세요. 좀 더 화려한 무늬는 없나요. 장신구는 이거, 가방은 저거 한 번 들어볼게요. 난 다 빼주세요. 심플한 게 좋아. 연주야, 사진 좀 찍어봐 봐.   

   

그 순간 나는 여태 내가 너무 그들에 대해 간과했음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졸지에 대배우들의 스타일리스트가 된 한복집 직원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어쩜 이렇게 무던한 자가 아무도 없는지 이제는 나도 자포자기였다.    

  

생전 두통을 모르고 살았던 내가 한동안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엄마는 내게 매일 같이 전화를 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전세버스, 답례품 참견부터 급기야 본인의 네일아트 디자인 고민까지. 아니, 말이 되는가? 네일아트 디자인 고민이라니. 목 끝까지 올라온 ‘엄마 손톱 아무도 안 봐.’라는 말을 꾹 참았다. 그녀는 ‘인륜지 대사’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딸의 짐을 덜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끄아아아아아아! 누군가 차를 끌고 다니며 느끼는 장점은 차가 거대한 핸드폰 충전기이자, 음악을 즐기는 카페이자, 그리고 1인 노래방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나(아닐 수도 있다). 하나가 더 있다. 짐승 소리를 내며 포효할 수 있다. 종종 나는 퇴근길에 돼지나 곰이 되었다. 꾸에엑, 하고 소리를 지르면, 그러면 좀 살 것 같았다.      


친구 나린만이 나를 위로했다. 오 년 간 연애의 결실로 나보다 꼭 한 달 빠르게 결혼식 날짜를 잡아두었던 터라 당시 가장 많은 연락을 나누며 정보를 주고받던 상황이었다. 그는 나보다 먼저 준비를 시작한 선배이면서, 이 기막힌 상황을 가장 많이 들어 나의 번뇌를 가장 이해하고 있는 친구였다.     


든든한 선배답게, 그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단 한 문장으로 나의 상황을 말끔히 정리했다.   

   

야야, 성대한 파티가 열리는데, 모두가 다 본인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대앵.      


남편을 처음 봤을 때도 울리지 않던 종소리가, 이미 통달한 듯한 친구의 말 한마디에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시간을 정리하는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파티 준비로 얼마나 설레시겠어. 그냥 그렇게 생각해.”     


대앵.      


종소리 한 번에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신랑, 신부 위주로 계획했던, 다른 이의 마음을 간과하고 부드럽게 살피려 하지 않았던 나의 과오를 반성했다.      


대앵.     


종소리 한 번에 나는 나를 포함한 모두의 내면의 욕망과 한계를 인정하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엄마는 결국 이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아빠도 결국 자연스러운 새치가 섞인 백만 원짜리 가발을 맞췄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내면의 소리는 고이고이 접어 묻어둔 채로, 나는 그들의 파티 준비를 즐겁게 도왔다. 어머, 완전 돈 쓰길 잘했다고, 너무 젊어 보인다고 호들갑을 떨며. 엄마도 정말 많이 설레는가 보다, 손님맞이할 생각에 무지하게 신났나 보다 생각하면서. 아쉽게도 청담동 샵은 끝내 예약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그 부분까진 미처 신경 쓰지 못해 미리 결정해 버렸다며, 하지만 그날은 엄마가 가장 예쁠 거라며 정중히 사과하고 위로했다.    

  

money money해도 난 두툼하지 못했던 주머니 사정과, 계약금을 날릴 용기가 없어 샹들리에가 없는 식장에서 식을 치렀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결국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역시 추가금 없는, 합리적인 선에서 결정했다. 하지만 SNS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거대한 식장의 세상 화려한 신부의 스냅사진을 띄워 나를 괴롭혀대곤 했고, 나는 곧 부러운 감정에 솔직해져 본식 스냅 업체만큼은 ‘큰맘 먹고’ 꽤 가격대가 있는-나름대로- 곳을 선택했다. 불합리한 결혼 문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어려웠던, 얄미워도 결국 그들을 배부르게 만드는 슬그머니 고개를 빼 들었던 내면의 욕망과 나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리고,     

그 당시 품었던 감정들이 조금씩 사그라져 휘발되고, 기억은 조각조각 나뉘어 어떤 조각은 분실되기도 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신부의 사진이 슬슬 줄어들고, 그리하여 결혼 일주년이 다 되어갈(정확히는 10개월) 즈음, 그제야 비로소 본식 스냅사진이 도착했다.     


사진 속 엄마와 시어머니는 비슷한, 그러나 각자 취향이 확고하게 드러나는 한복을 입고, 곱게 화장해 화려한 파티의 주인공, ‘혼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날만큼은 왕비처럼 아름다웠고, 아빠는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헤어스타일 하나로 십오 년은 더 젊어진 것 같았다. 나는 샹들리에 따위에 기죽지 않고 탭댄스 대신 K-POP 댄스를 신나게 추며 입장하고 있었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신부 화장이 무색하게 기절초풍할 만한 표정으로 찍힌 게 대다수였지만, 그래도 즐겁고 예뻐 보였다.    

  

‘불합리한 결혼식 문화에 기필코 저항하고 말리라…!’라는 나의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지만, 돌이켜보면 모두가 주인공인 파티를 무사히 잘 치러냈던 셈이다. 그것이 모두가 까먹어버릴 기억이라고 해도, 남이 보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고 해도, 불합리한 결혼식 문화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큰맘 먹고 결제한 스냅 업체의 결과물은 ‘그날’을 소환한다. ‘성대한 파티에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그날. 그것이 우리에게 풍부한 의미를 갖고, 행복하고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으니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면, 그럼 너무 싱거운가. 글쎄, 아무튼 아쉽진 않다. 두가 행복했고, 나는 이렇게 실패자의 자기 변명과 합리화로 꽉 찬 글을 즐겁게 썼으니 말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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