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청소를 하다가, 잠들기 전 하루 중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은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순간을 지배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같은 꽤나 심오한 주제부터 어렸을 때 했던 장난처럼 시답잖은 회상까지. 생각의 주제와 분야는 다양했다.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생각할까?
겉보기에는 모두 오늘 먹을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한편 그는 나는 할 말이 있으면 솔직하게 하는 타입이야. 그리고 뒤끝이 없지. 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했다.
호탕하고 유머러스하며 관계에 열정적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추진력이 있어 매력적이었다.
가까운 누군가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고 안타까워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의 입장에서 허심탄회한 고백은
용기이자 진심은 통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늘어났다.
한 번은 직장 동료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불편한 점을 이야기했다가 함께 일하는 기간 내내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낸 경험을 했고, 새로 만난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데면데면했던 직장 동료와는 팀을 이동한 후로는 완전히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게 되었고, 그는 그 상황이 상상 이상으로 괴로웠다. 단단하고 확고했던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고, 심리적으로 방황했다.
방황 끝에, 그는 마치 종이를 반대편으로 뒤집 듯 관계를 보는 관점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문득, 언젠가 관계에 대해 괴로워하던 그의 친구는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문제를 개선할 방법을 찾고 있던 것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 상황에서 '허심탄회함’을 내세워 상대의 마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건 경우가 다르다. 결국 그가 선택했던 허심탄회한 대화는 어쩌면 상대방에게 선포하는 경고이자 자신의 후련함을 위해 상대방을 소비했던 것 일지 모른다.
상대방에게는 그의 허심탄회함이
날카로운 단어들로 얻어맞는
불쾌한 경험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처받은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기억으로 남는다.
특히 상처받은 기억은 감정에 의해 한 차례 편집되어 더 불쾌하게 저장된다.
잘 잊히지도 않는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어느 순간에든 표출된다.
그것은 돌고 돌아 어떻게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준다.
어쩌면 그는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한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이 어려운 주제를 사색하고 그 안에서 답을 찾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답을 찾은 자신은 이 상황의 문제점을 파악했고,
그 내용을 상대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오만한 생각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한 문제임을 생각지 못한 채 말이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문제를 알아채는 방법도 각자의 방식이 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고민의 깊이는 자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가끔 나 자신도 나를 모르겠는데 하물며 타인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조심하고 존중해야 한다.
타인이 나를 살펴주기를 바라는 만큼 타인을 살피고, 이해하려는 개인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줌과 동시에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고민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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