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강사들에게
우리는 강사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글은 정규 커리큘럼으로 학습자들과 정기적인 교육과정을 진행하는 강사들이 아니라, 행사로서의 강의, 특강, 강연 등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다. 전문 강사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구술하는 것을 요청받은 사람들을 상정하고 이해하면 되겠다.)
아주 흔한 광경이다. 강의 시작 3분 전이고. 강사가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모습말이다.
운이 좋다면 그 강사가 가방에서 맥북을 꺼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오퍼레이터는 사색이 되어 있을 것이고, 썬더볼트-HDMI 젠더를 찾는 카톡이 스태프 사이에 울려 퍼진다.
숨을 헐떡이며 '하, 하, 제가 좀 늦었어요. 괜찮죠 여러분?"
괜찮기는 개뿔이 괜찮냐.
우리는 왜 강사들에게 힘을 못쓰고 이딴 광경을 연출하는 걸까. 유명한 분이니까,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는 분이니까, 어렵게 모신 분이니까.
하나의 행사는 하나의 기획의도를 가진다. 그리고 그 기획의도는 99%는 '참여하는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데에 목적이 있다. 그게 교육이던, 방방 뛰는 콘서트던 간에, 일단 굳이 불편하게 현장까지 온 사람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쥐어서 돌려보내야 한다.
그게 행사다. 하나의 기획의도에 맞추어 모든 스태프와 출연진들이 하나의 맥락을 만들어 내는 것.
그 대단한 연사 한 명이 자기 자랑을 내뱉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당신의 삶을 동경하고자 듣는 것이 아니라, 들어보고 괜찮은 이야기가 있으면 참고하려고 듣는다는 말이다.
'제가 진짜 돈 벌려고 했으면 돈 많이 주는 기업 가서 강연하지, 이런데 왔겠어요?'
가지 그랬냐. 돈 많이 주는데 왜 안 갔냐. 나 좀 추천해 주지. 나는 갈 마음이 100%인데.
단순히 하루 행사 쳐내고 그러지 말자. 정말 그 자리에 온 사람들, 귀한 시간 내서 온 거다. 밥맛없는 인간들 자기 자랑 듣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강연 듣게 해야 한다.
강연내용과 맥락, 방향성은 사전에 기획팀과 공유되어야 하고, 적어도 1주일 전에는 강연에 필요한 슬라이드 등 자료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강연 순서의 앞뒤 스토리가 이어지도록 기획팀이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당연한 거지만' 강연 1시간 전에 강연장에 도착해야 한다.
당신은 무엇이길래 강연 5분 전에 슬라이드를 고치는가? 당신은 무엇이길래 강연 3분 전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는가?
행사판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한 재료들일뿐이다. 곁들이찬이 사시미 흉내 내다가 젓가락에 찔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