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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잇 May 16. 2016

조계사 점심산책

2016년 5월 12일, 한시적 자유부인의 석가탄신일 맞이

전날 청계천 일대의 연등을 보면서, 석가탄신일 전에 조계사에 한 번 가 봐야지 다짐했던 것을 바로 실천하기로 했다. 금요일은 일정이 어찌 될지 모르니, 언제든 가급적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실행을 해야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점심산책의 어려움이자 묘미.


다행히 이번 한 주간은 날씨도 참 좋아서, 적당한 햇살과 (음, 걷다 보니 좀 강렬한가 싶긴 했지만) 적당한 바람 덕에 힘든 줄도 모르고 금세 조계사에 도착했다. 사실 조계사 근처는 여태껏 상당히 많이 다녔는데, 정작 조계사 골목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한민국 조계종의 본산이자,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뉴스에서 보던 곳. 그 정도의 인식만 있던 조계사를 직접 가려니 살짝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이 들었다.



조계사로 향하는 길에 자연스럽게 늘어선 불교용품 전문점에서는, 석가탄신일이 코 앞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항상 진열해 놓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색색의 연등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쇼윈도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데, 내 시선을 사로잡는 작고 귀여운 연꽃 장식품. 연분홍빛을 살짝 머금고, 단아한 자태를 한 그 모습이 다른 화려한 장식품보다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든 굳이 과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막상 조계사 경내로 들어서니, 앞서 본 단아한 연꽃과는 달리 휘황찬란한 연등으로 인해 화려 그 자체. 게다가 그동안 방문했던 지방의 고찰과는 달리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종무소를 비롯한 경내 건물이 대부분 현대식이었다. 비단 도심 한복판이긴 해도 여기 들어서면 소음도 잠시 멈추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일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템플스테이 간판도 있던데 여기서의 템플스테이는 우리가 보통 기대하는 그것과는 많이 다를 것 같은 당황스러운 느낌. 심지어 대웅전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하나도 아니고) 삼존불을 모시고 있었는데, 너무 위압적이어서 들어가기 왠지 무서웠다.


그렇게 대웅전에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던 차, 바람이 불어와 나무에 걸려 있는 연등을 사라락 스치고 지나갔다.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 커다란 나무 주위에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니 이 곳은 속세와 멀리 떨어져 참선에 집중하는 다른 사찰과는 의미가 다른 곳이구나, 싶었다. 점심시간에 굳이 조계사를 찾은 사람들의 마음도 그러하고, 안 그래도 볼 것 많은 서울에서 조계사를 들러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들도 그렇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언제든 누구나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렇게 항상 사람들과 함께 해 왔던, 그런 곳. 경내를 나서며 사천왕 철조 입상 앞에 공손히 인사를 드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 이 곳에 들어설 때 느꼈던 약간의 아쉬움은 살짝 묻어두기로 했다. 인연이 닿는다면, 또다시 발걸음을 하게 되겠지, 하며 점심산책을 마무리한다.




4.84km, 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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