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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잇 Dec 04. 2016

이제는 인생이라는 여행

토마스쿡 공연

토마스쿡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공연.
2016/12/03 SAT 6pm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마지막으로 공연을 본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랜만의 일이었다.

다행인 것은 쿡도 오랜만의 앨범 발매 후 첫 공연이라 그런지 이상하게도 그 동안 나의 공연 공백이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마치 얼마 전까지도 줄곧 봐 왔던 사람처럼 친근했고, 그래서 안도했다.

첫 곡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공항 가는 길이어서 너무 뭉클했기도 하고. 마이앤트메리를 처음 알고 좋아하게 되었던 그 노래, 2004년의 나로 되돌아가면서 아, 나 돌아왔구나, 이런 느낌.

물론, 그가 말했듯 4년만에 앨범을 내고 나서 페스티벌이 아닌 단독공연으로 처음으로 만나다 보니 그 사이에 쿡을 처음 접하고 공연장에 처음 온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서인지 몰라도, 약간은 소심한 듯한 관객들의 모습이 약간 낯설긴 했지만(좌석 있어도 말미엔 스탠딩화 하는 게 암묵적인 룰 아니었던가 ㅎㅎ 앵콜곡 다 하고 들어갔다고 앵콜 한 번 안 외치고 그대로 돌려보내는 착한 관객들 ㅎㅎ) 그래도 엇박으로 치는 메리/쿡 특유의 박수만큼은 여전해서 나도 모르게 안심.

아 그대로구나. 메리는 엇박이지!

형제님들도 군데군데 많이 오셨다는 멘트를 들으며
그래 형제님들 자매님들 이란 단어도 공연 때마다 항상 썼었지, 새록새록 기억도 나고. 그렇게 취향저격 단어들을 공라가면서까지 관객들을 웃기려고 노력(?)하고, 기본적으로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더 좋았던 건, 내 얕은 기억으론 그전의 멘트들은 공연의 흥을 더하기 위한 양념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 오늘의 멘트들은 그 유쾌함 사이에서도 그의 음악적인 변화, 새 앨범의 곡을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순용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진중한 사람이었구나,
(아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진중한 사람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고) 그런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코드가 맞고 음악을 귀기울여 듣는 일부 특정 취향의 우리같은 관객들 말고도 범인 범부들에게도 그냥 편하게 다가갈 수 있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게 새로운 목표라면서 이제 세상을 향해 노래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고

여행사 이름인 토마스 쿡을 자신의 솔로프로젝트 이름으로 택할 만큼 여행에 집착하던 사내가, 이제 여행을 졸업했다, 이제는 방랑보다는 이 땅에서 발 붙이고 이것저것을 하고싶다고 말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사람이나 음악이 변했다는 것이, 사실 반갑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나도 나이가 들고 이런저런 변화가 있어서일까,  쿡의 그런 사고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느껴지면서 왠지 수긍이 갔다.

예전엔 우리 엄마아빠세대나 살짝 윗세대의 팬-뮤지션의 관계를 보면서도 사실 뮤지션과 같이 나이들어간다는 게 뭔지를 잘 몰랐는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역시나 쿡이랑 같이 나이들어가며 음악은 물론 세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나누면서 나이들어가겠구나. 하는 생각. 바꿔 말하면, 내가 같이 나이들어가며 계속 소통할 뮤지션은 역시나 쿡이구나! 라는 깨달음.

사실 스피커 쪽 좌석의 문제였을지는 몰라도, 공연장 사운드면에서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드럼 소리 째지는 거 어쩔거임. 기타 소리는 왜이렇게 묻히고. 다들 얼마나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데... 코러스분들도 약간의 불협화음인 걸 보면 전체적으로 마스터에서 조정이 잘 안된듯?? 정말 아쉬움)

새 앨범 발매 후 첫 공연이고 왠지 영영 못 보는 것 아닌가 내심 걱정했던 그가 이렇게 다시 돌아와서 2월의 앵콜 공연과 3월에 있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컨셉의 소극장 공연을 예고한 것만으로도 참 고맙고 반갑다. (본인 스스로 반주가 가능한 사람에 한해 무대에서 쿡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데, 멜로디언 리코더 말곤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없다는 게 천추의 한. 예전 메리 공연 때는 클럽 타에서 쿡님이랑 같이 골든글러브도 불렀는데 혹시 저 기억하실랑가요. ㅎㅎ 잠시만이라도 락스타가 된 기분을 느껴본, 아직까지도 흥분되는 기억) 앞으로 있을 공연에서는 사운드도 완벽하게 구현해내길. (노래도 95프로 찍으시고 ㅎㅎ)

그래도 앨범을 들으며 가장 궁금했던 어둠의 왕을 라이브로 들었던 건 가장 큰 성과. 쿡이 워낙 내 음악성향의 가장 취향저격인 뮤지션이긴 하지만, 왠지 모든 곡이 비슷비슷하게만 전개될 것 같은, 약간은 정형화될 것 같은 우려가 살짝 있었는데, 그 걱정을 완전히 불식시켜 준 게 그 곡이라. 이번 앨범을 처음 들으면서도 정말 반갑고, 앞으로의 그가 더욱 기대되는 흥미로운 곡이었기 때문에 그걸 라이브로 들은 게 정말 의미있었다. 그도 직접 언급했지만 그 곡이 이상하고 무섭다는 평들도 있는 모양인데(무섭다고 하신 분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었다는) 저는 이거 들으러 공연 왔어요!!! 라고 외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함께 모시고(!) 온 남편은 어떻게 공연을 보았을지 내심 궁금했지만,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라 이것저것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눈치로 보건대 사운드의 아쉬움 말고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게 잘 즐긴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우리 메탈/하드록 매니아이신 남편님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리고 그를 공황장애에 빠져들게 했던 욘시 공연의 트라우마도 있었기에 엄청 걱정을 했던 바에 비하면 이 정도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볼 수밖에? ㅎㅎ 이게 다 쿡의 멘트의 힘인가 (전유성을 웃겨라 수준으로 웬만하면 예의상으로도 웃어주지 않는 우리 남편을 열 번 넘게 웃겼다는 것은 역시 쿡이 유머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반증이다 ㅎㅎ)

그나저나 이렇게 오랜만에 공연을 보며 남편과 데이트를 하다니... 한동안 잊고 살았던, 온전히 나로서 살았던 시간들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씩 조금씩 허락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그런 잠깐동안의 시간을 얻기 위해 여전히 가족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만, 가정에서의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안에서 이렇게라도 다시 나의 모습을 찾아갈 생각이다.


아이들이 완전 아기였을 때,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영영 이런 생활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사라질 거라고 슬퍼했는데, 여전히 나는 나고,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쉽게 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이들에게도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색채가 강한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내가 다른 색으로 덧칠한다고 어디 그게 가려질 타입도 아니고 말이지...

남편은 물론이고, 나중에 우리 아이들과도 같이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보고, 소설과 시를 같이 읽으며 인생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엄마이면 좋겠다. 그게 줄곧 내가 꿈꿔오던 삶이니.


그리고 오늘, 토마스쿡 공연을 통해 그렇게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봤다. 그도 그렇게 계속 사라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음악을 해줬으면. 그렇게 해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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