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그리고 자정
미드나잇이라는 닉네임을 언제부터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정이라는 시간은 중2병을 치열하게 앓았던 1999년, 유희열의 FM음악도시를 처음 들었던 그 순간부터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공부하는 기계로,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오늘을 희생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엔 더욱 그랬다. 자정 무렵 집에 돌아와 라디오를 켜고, 두 시간 동안 음악을 듣고 글을 끄적이며 나는 비로소 내가 됐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상에서 닉네임이 필요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미드나잇은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됐다. 고3 시절을 지나고, 꼭 자정이 아니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아무 때나 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줄곧 그랬다. 이것이 원래 영어였냐는 듯, 또박또박 정확히 네 글자로 미.드.나.잇.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이란 영화가 개봉했을 때 주위 친구들이 "이건 분명 공포영화인데, 네가 생각나서 웃었다"며 이런저런 농담을 하기도 했던 그 이름. 온라인 상에서 만난 사람들 뿐만 아니라, 현실의 친구들도 그냥 그 네 글자가 내 이름과 동격이라고 여겨주었던 내 이름.
그 이름을 잊고 산 지, 6년이 훌쩍 지났다.
입사와 함께 생활 패턴은 많이 달라졌고, 본디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던 자정은 피곤해서 그 전에 잠들어 버리거나, 설사 그 시간에 깨어 있더라도 야근이나 회식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나에게 참 잘 어울렸던 이름이, 이제 나와는 멀어진다고 생각되던 그 순간. 게다가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로 결혼과 출산과 육아의 신세계에 발을 들인 이후로는, 내가 뭘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쓰는' 사람인지를 잊었다. 쓰는 자아를 잃어버리니 쓰는 자아로서의 이름도 함께 잃어버렸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블로그 필명으로서의 미드나잇도 그렇게 사라져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데, 신입 공채 최종 면접 때 지금은 회사를 떠난 전 부문장님의 마지막 질문 - 회사에 입사하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 것 같나 - 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정처 없이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대낮에 한가롭게 거리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아쉽습니다." 당최 무슨 대답을 원하고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그게 제일 아쉬웠다. 평일 대낮에 아무런 제약 없이 거리를 서성일 수 없다는 것.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없다는 것.
지금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나 혼자라면 퇴근 후나 주말이라도 자유로이 시내를 걷고 즐길 수 있겠지만, 이제는 업무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의 나는 가사와 육아에 매여 있다. 비록 퇴근해서 집에서 TV를 보며 쉬고 있다 하더라도 실은 잠재적인 가사와 육아의 시간으로서 공적인 시간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오부터 오후 한 시까지, 한 시간의 한시적 자유부인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8시간 근로에 주어지는 1시간의 휴게시간'을 오롯이 사적인 시간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사무실 창으로 숭례문이 보이는, 서울의 한 복판에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이 도시를 누리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 프로젝트의 시작에 한몫을 했다. 물론 점심시간 안에 돌아와야 하므로 갈 수 있는 거리와 할 수 있는 활동엔 제약이 많지만, 그래도 그 제약 하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최대한 누리려고 한다.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고, 원한다면 쉴 수도 있으며,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내가 즐기고 싶은 속도로 즐길 수 있다. 어떤 것은 천천히, 오래, 또 어떤 것은 스쳐 지나가기도 하면서.
정오에 누린 자유는 비로소 자정이 되어서야 차곡차곡 저장된다. 퇴근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마무리한 후에야 찾아오는 잠깐 동안의 자유.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그 날 보았던 것들을 기록하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금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미드나잇이란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