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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 GG Jun 28. 2020

우리가 올라 탄 이곳이 로켓은 아닐지라도

제주에서 숙박업 하는 스타트업의 생존기(3)


| 여전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지


코로나로 인해 바이러스 창궐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지금, 이제 '비상운영' 체제가 무색하게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새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제주 관광 수요도 전년대비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조금씩 회복 중인 숙박 예약률과 차도에 늘어난 (가끔 심장 떨어지게 하는) 하.호.허 번호판의 차들이 여름 성수기가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정신 차려 보면 한 달이 훌쩍 지나가 있는 요즘,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 밀어뒀던 우리의 비상운영 현황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한다.


길게 줄이 늘어선 동문시장 야시장 먹자골목



|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스타트업을 (여전히) 로켓에 비유한다.

가장 빠른 로켓에 올라타라며 부추기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지는 잘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할 뿐이다.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때에, 나도 어딘가에 빠르게 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작정 올라탄 그 로켓에-그것도 출발과 동시에- 연료가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는 대기권을 벗어나기도 전에 허탈하게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내가 올라탄 이곳이 로켓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제주 바다 어딘가를 항해 중인 베드라디오라는 작은 배에 승선해 거친 파도와 강한 바람에 맞서는 중이다.  

아직 섣부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아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번 한 달을 정리하면,


멜삼촌이 디자인한 멜맥집 포스터와 산지직송 싱싱한 달치(달고기)를 자랑 중인 멜아빠. 아직 손질 전이라 신이 났다.


멜맥집

낮없이 쉴 틈 없이 일하는 마케터의 하루하루가, 내가 생선인지 생선이 나인지 모르겠는 생선 손질 지옥에서 살고 있는 멜아빠가 그리고 여전히 디자인하랴 생선 튀기랴 플레이리스트 업데이트하랴 하루가 빠듯한 멜삼촌이 열일한 덕에 매출은 지난달에 이어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SNS를 보고 왔다며 멜맥집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기고, 단골 로컬 고객들도 늘고 있다. 7평의 기적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망상을 잠시 해보지만, 슬프게도 이제 제주에서 멜(멸치)는 잡히지 않는다. 제주뿐 아니라 국내 어디에서도 잡히지 않는 올해의 흉어가 멜이란다.

푸른 조명이 더해진 멜맥집. 제주도의 푸른밤은 멜맥집에 있다


'월간 멜맥'

멜이 없다고 장사를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매달 제주에서 잡히는 싱싱한 제철 생선을 튀기기로 했다. 이번 달은 달치(달고기)와 갑오징어가 나가고 있다.

운영 상 이런 위기상황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니 우리의 위기 대처능력도 만랩에 다다르고 있다.

베드라디오호는 이제 웬만한 풍랑에 쉽게 떠밀려 가지도, 뒤집어지지도 않는다. 휴


그러고 보니 이 셋은 올해 초 같은 시기에 베드라디오에 합류한 멤버이다. 동기의 힘인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과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짝짝짝


멜이 없어 새로운 메뉴를 내보내야 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멜아빠와 멜삼촌,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만들어낸 월간 멜맥


호스텔

역시나 밤낮없이 일하는 마케터, 그리고 현장과 동굴(혼자 초집중해서 사무업무 보는 시간)을 오가세일즈 매니저인 내가 맡고 있는 객실 파트.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작고 빠르게 기획한 객실판매 프로모션을 진행했고, 의미 있는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객실 점유율은 작년 동기간 대비 여전히 부진하지만 이번 달 목표로 했던 수치에 도달했고, 그렇다면  충분히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일하고 있는 나와 마케터, 그리고 프로모션용으로 나갔던 베드라디오 굿즈 하르방 부적/엽서


그리고 이렇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이번 한 달,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정말 많이 지쳐있다. 스스로가 지쳐있음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연료가 없으니 채워달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임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라 이에 맞춰 가기로 한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잘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같이 함께하는 멤버들에게도 충분한 인정과 칭찬을 남기고 다음을 준비하려 한다.


애정하는, 아니 애증에 가까운 베드라디오의 일부 객실



| 잘했다고 말해줘요


코로나 사태로 잃어버린 6개월이라 말하기에는 우린 너무나 많을 일을 잘 해냈다. 힘든 시기에 만들어낸 성과에 대한 자기 위안이 아니다. 정말 잘 버텼고, 잘 해냈다. 우리가 이뤄낸 결과가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 진짜 인정받는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인정할 때 비로소 온전한 마무리가 되는게 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부분을 나름 적절하게 해나가고 있는 나인데, 다른 멤버들도 각자 본인의 대단한 여정을 한 번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말해주면 참 좋겠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은 많다. 정말 눈코 뜰새만 있었던 우리에게도 이제 곧 짧은 휴식이 찾아온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생기를 불어넣기에는 물론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부디 찌꺼기는 비우고 맑은 기운을 채우는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

P.S. 뜬금없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가 떠오르네. 그리고 그 영화의 OST 'Space oddity'의 가사가 맴돈다. 로켓을 타고 저멀리 지구밖으로 떠난 우주비행사 톰 소령(Major)을 주인공으로 담아낸 노래. 일부만 담기엔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 전체 가사를 담고 글을 마친다.

 

Ground Control to Major Tom

Ground Control to Major Tom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Ground Control to Major Tom (ten, nine, eight, seven, six)

Commencing countdown, engines on (five, four, three)

Check ignition and may God's love be with you (two, one, liftoff)


This i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ve really made the grade

And the papers want to know whose shirts you wear

Now it's time to leave the capsule if you dare


This is Major Tom to Ground Control

I'm stepping through the door

And I'm floating in a most peculiar way

And the stars look very different today

For here am I sitting in a tin can

Far above the world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Though I'm past one hundred thousand miles

I'm feeling very still

And I think my spaceship knows which way to go

Tell my wife I love her very much she know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r circuit's dead, there's something wrong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ar me, Major Tom?

Can you―


Here am I floating 'round my tin can

Far above the mo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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