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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 GG Jul 17. 2023

할 말이 없어 글을 못 쓰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 벌써 일 년

종종 브런치에서 알림이 오곤 한다.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무려..000일이 지났어요ㅠ"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게 1년이 훌쩍 지났다. 

당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원치 않았던) 잦은 이직에 있어 커리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은 글이었다. 브런치 알림은 대략 30일, 60일, 180일, 210일 주기로 오는 거 같은데 사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알림에서 보여주는 구체적인 숫자를 스윽 확인하고는 알게 된다. 글을 안 쓴 시간도, 그리고 하루하루도 그만큼 흘러갔다는 것을. 

몇 번의 알림을 받고 글을 쓰지 않았던(혹은 못했던) 그동안에 또 한 번 격변의 시간을 겪었고 지금은 또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다. (아, 자리를 잡았다는 말은 아직 섣부른 감이 있다.)




|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이번에도 회사가 망했다. 8년 전 처음 스타트업 생태계에 발을 들이 이후로 회사가 망한 경험은 이번이 세 번째. 그 세 번 중 두 번은 초기멤버로 합류하여 그야말로 Zero to One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다 1에 도달하지 못한 채-그래도 0.5 정도는 만들고- 머리만 깨진 (나름의) 값진 경험이었고, 바로 직전 회사의 경우 근 8년 동안 쌓아왔던 나름의 경험과 성과를 토대로 IPO 내지는 스핀오프 등등의 굵직한 일을 해보자며 이직했던 곳이었는데, 이미 성장을 멈추고 죽느냐 사느냐의 고비에서 여러 가지 시장 상황 또한 좋지 않게 맞물리며 살지 못하고 죽은 케이스이다.


몇 해 전 제주에서 일하던 때에는 코로나로 인해 살면서 처음 겪어봤던 경제적 타격과 그로 인해 회사 또한 수축되어 권고사직으로 일을 정리하면서 심적으로도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계기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시간이 어떤 힘이 된 것인지 아니면 이제 정말 일한 시간에 비례하는 단단함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이번 회사에서의 마지막도 물론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전처럼 그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이전에는 그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 혼자 남게 된 사장, 누구보다 빠르게 빤스런을 한 이사 등등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허탈함과 미안함과 미움의 감정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이외에도 나를 둘러싼 수많은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그걸 해소하기 위해 글을 썼다면, 이번엔 정말 마지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무던하게 끝냈다. 물론 이번에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리 좋지 않은 끝맺음이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처음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후 그냥 손절해 버려야지'하고는 뚝 잘라버리니 더 이상 소모되는 감정이 없다. 


이상하리만큼 의연하게 이 시간을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긴장이 풀린 탓인지 일을 완전히 정리하고 나서는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심한 목감기까지 걸려 살도 쪽 빠졌다가 지금은 다시 일을 시작해서 9-6의 삶에 다시 적응해나가고 있다. 그와중에 나름 나쁘지 않은 환경과 포지션으로 이직에 성공한 나.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얼마 전 티비를 보다 유퀴즈에 에픽하이가 출연한 회차를 보았다. 


"에픽하이의 여러 힘 중에, 가사 한 줄의 힘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런 가사들을 쓰는지"

라는 유재석의 말에  

"솔직히 저도 모르겠어요. 또 그런 걸 쓰고 싶은데, 안 돼요"

라고 타블로가 대답했다. 


'그 당시의 나'만이 쓸 수 있었던 가사였고 '지금의 나'로는 그때의 그 감성과 감정을 담을 수 없다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작가도,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도 아니지만 나 역시도 그때만 할 수 있는 말들이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또 몇 해가 지나고 요즘은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많아졌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이 없는 날들도 많다. 혹시나 이게 우울증의 전조증상일까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매일매일이 스펙터클했던 일상에서 조금은 잔잔한 일상으로 편입되면서 느끼는, 이 잔잔함에 스며들기 위해 적응의 시간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과 별것 없는 하루의 잔잔함을 무료하고 재미없다고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별것 없고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주는 안정감이 분명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하루, 일주일, 한 달이 모여 일 년 그리고 또 일 년을 살아가는 거라고, 그 와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몇 번의 이벤트로 인생의 희로애락이 채워지는 거라고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한다. 


다음번 할 말이 생각날 때까지 아마도 잠시동안은 다시 조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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