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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로하 Apr 22. 2020

J씨의 막돼먹은 대기업 라이프 02.

드디어! 재택근무!

아마 나의 재택근무를 향한 이 흥분에 대해 어떤 사람은 공감을, 어떤 사람은 의아함을 느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했을 것이고, ‘재택근무’란 단어 자체도 주변에서 굉장히 많이 들리고 있으니. 그런 사람에게는 ‘그게 뭐?’가 당연하다. 하지만! 보수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는 아직 ‘재택근무’는 유니콘 같은 느낌이랄까. 누군가 봤다고 하지만 잘 존재하지 않는, 그런 느낌. (나는 미래지향(?)을 주창하는 대기업에 다니지만, 내 관점에서 여긴 아직도 보수보수 이런 보수가 없다.)


하지만 난 막돼먹은 대기업 라이프 1년차이다.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과감히 재택근무를 신청하였다. 의외로 신청 절차는 간단하였다.

1. 파트장과 면담하여 사전 재가를 받는다.

2. 그룹장/팀장과 면담하여 사전 재가를 받는다.

3. 결재를 상신하고 그 결과를 인사 담당에게 통보한다.

4. 필요한 환경을 준비하고 재택을 진행한다.


이 절차를 보고 드는 생각이 ‘간단하군’이라고 느끼는 분들은 훌륭한 회사를 다니고 계신 것이다. ‘아...’ 라는 생각이 든다면 나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재택근무’는 유니콘 같은 것이라고 앞에서 언급했다. 존재할 것 같지만 본 적은 없는 존재. 주변의 따가운 시선, 치열한 경쟁, 고과 쟁탈전, 회사에서의 미래를 모두 포기하지 않고는 안되겠군...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는 것을 난 100% 이해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난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파트장에게 갔다. 툭 던졌다. “재택근무를 하고 싶습니다.” 이 말에 대해 일반적인 상사의 반응이 늘 그렇듯 뭐 고민도 없다. 작용 반작용이다. “응? 재택근무? 왜?” 당연히 나도 물어보기 전에 어떻게 말할지에 대해 미리 고민을 했었다. 준비한 것을 대답했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요.”


너무너무너무너무 시원했다. 정말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요” 이런 대답. 나의 대답에서 뭔가 숨어있는 돌덩이의 무게를 느낀 것인지, 파트장은 살짝 당황한 듯하면서도 평정심을 찾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팀장님에게 물어보고 결정합시다” 당연하다. 어려운 결정은 위로 넘기는 것이 회사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우리 팀장은 너무 바쁘기에 찾아가서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미안하다. 그래서 메일을 썼다. (워딩을 그대로 옮기려 메일을 찾아봤다.) “팀장님 아래와 같이 재택근무를 신청하고자 합니다. Confirm 주시면 결재 상신드리겠습니다. 혹시 우려하시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자리로 찾아가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내용 아래에는 어떤 주기로 얼마 동안 쓴다는 내용을 붙였다. 물론 사유는 적지 않았다. 물론 난 팀장(임원)이 부른다면 똑같이 말할 예정이었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요.”라고. 그날 저녁 바로 한 줄짜리 답장이 왔다. “파트장과 협의된 내용이면 저는 이견 없습니다.” 훈훈하다. 서로 okay 하면 문제없다며 책임을 미룬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서로 okay 한 것으로 해석한다. 예전 같았으면 왜 답장이 한 줄일까, 이 어감이 포함하는 감정상태는 무엇일까 등등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답을 보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 하하. 파트장은 이제 반대할 논리를 찾지 못하는 이상 반대할 수 없게 되었군. 이렇게 나의 재택 신청은 훈훈하고 쉽게 정리되었다.


그래서 오늘 첫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초집중 모드로 오전을 보내니 오후에 할 일이 없다. 너무 좋다. 이런 것이 재택이었나. 난 오늘 하루 회사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집중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도 회사에서 보다 좋았다. 막돼먹은 대기업 라이프를 꿈꾸는 나로서는 300% 만큼 한 것 같다. 넘나 좋은 것.


오늘은 여기까지이다. 재택의 일상은 다른 기회를 통해서 종종 남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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