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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우 Oct 24. 2022

돈은 과연 '자유'를 가져다 줄까?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내가 자유로운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흔쾌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유'에 대한 개념도 변화해왔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드러나는 억압과 권위에 대항하는 관점에서의 대상으로부터의 '자유'의 개념이 강했습니다. 권위주의, 기득권, 독재 등이라는 명확한 저항할 주체가 있었고 두렵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유의 개념이 뚜렸했습니다.


현대의 '자유'의 개념은 어떨까요?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사람을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현대의 자유는 과거와는 다른 국면에 있습니다. 명확하게 우리를 억압하거나 명령하는 방식으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드러나지않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알게 모르게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듭니다.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민주주의,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자본주의 등에서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자유'를 느낄까요?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 문제의 원인을 '돈'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튜브에서 '자유'를 검색해보면 '경제적 자유'라는 표현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직장에서 벗어나면 자유가 생길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돈'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돈'을 버는 방법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라는 존재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도구인것은 사실이지만 과도하게 물신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 돈이 많은 것에 집중하는 이유가 진정한 자유나 욕구의 충족을 넘어 사회화되고 있다는 것이죠. 광고와 SNS와 같은 매체가 그런 경향성을 더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돈에서 자유를 찾고자 했던 본래의 목적을 잊고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정교하게 계산된 경제적 자유를 위한 '돈'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부'에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유'를 얻기 위한 나의 경제 활동이 서서히 나의 자유를 침해하기 시작합니다. 


얼마전 한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한 가장이 출현합니다. 그 부부는 부업을 통해 월 1,000만원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비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퇴근후, 주말에도 쉴새없이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질문합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가에 대해서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바로 '가난을 대물림 하기 싫어서', '집 없는 설움이 컸고, 집이 없는 사람은 계속해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라고 대답합니다. 조금 눈물이 났습니다. 그 분이 겪었을 돈에 대한 부자유에 따른 상처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목표가 자가 아파트를 같는것이었다고 말했던 그는 이미 목표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런 삶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왜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사는가?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이에게는 편안하고 윤택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부터 조금 불편한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리다고 했었는데 과연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윤택한 환경이라는 건 기준이 뭘까? 편안하고 윤택한 환경 만들기에 끝은 어디일까?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경이롭다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돈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우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의 가치가 현대사회에서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어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돈의 결핍과 부자유는 이렇게 우리를 '돈'에 더 종속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진정한 문제들을 '돈'으로 치환해버리고, 심지어 그 '돈'에서도 스스로 억압받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만약 아주 많은 노력과 운이 결합되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더라도 '자유'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돈과 관련해서 착각하는 가장 큰 생각은 '돈'이 많아지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에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면 우리는 '물질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삶의 중요한 가치들이 '돈'의 유무로 결정된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가치가 '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보통 '돈'에 대한 상처와 결핍 등이 이런 성향을 낳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돈'의 크기와는 상관없습니다. 돈의 크기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돈이 없음은 무가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많은 영역을 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물질주의자들은 물질주의자들끼리 모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가지게 됩니다. 물질주의자들은 관계도 '쓸모'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유를 얻기 위해 시작한 '돈'을 버는 여정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돈에 억압으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저 스스로도 경험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청소년시기 겪었던 가난의 두려움은 제 인생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 청년기는 돈이 없는 상태가 주는 두려움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기나긴 과정이었습니다. 돈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돈에 집중했습니다. 큰 부는 아니더라도 최초로 원하는 수준의 소득과 자산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롭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일정소득을 벌자 훨씬 더 많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과 사귀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제 '돈'의 크기는 작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모든 영역이 '돈'과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게 되었고, 좋은 차를 타도, 좋은 옷을 입어도 만족감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일이 무감각해지기 시작했고, 삶의 기쁨이나 자유로움은 제게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살아있는데 영혼은 죽은 좀비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물론 저처럼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건강한 자유로운 정신과 경제활동을 병행하는 분들도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돈'이 제 삶의 가장 큰 문제였고,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평범한 청년이었던 제가 경험한 '돈'의 악순환처럼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의 자유에 대한 생각은 돈이 야기하는 물질주의적 혹은 소유지향적 가치관에 대한 성찰을 통해 겨우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벗어난게 아니라 수년간의 성찰과 시행착오를 통해 겨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구조와 자본주의의 마케팅은 도저히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인 거리두기와 내면의 자유에 집중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는 요원합니다. 


경제적 자유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이 지점에 대해 인식을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의 부자유의 문제들은 생각보다 '돈'이 아닌 다른 지점들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돈'으로 그것을 덮거나 상쇄할 수 있게 만드는 현대사회의 팽배한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나 부자가 되어도 1도 자유롭거나 행복하지 않은 인색한 스크루지 영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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