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 Feb 25. 2024

50:50 공평한 가사 분담

Entj 결혼생활

결혼하고 3년간, 남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이 집엔 꼬박꼬박 들어오니 얼굴을 마주치긴 했다. 다만, 남편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진 밤 10시~11시쯤 녹초가 된 모습으로 들어와선 다음날 새벽같이 나갔고, 토요일엔 평일에 못 잔 잠을 몰아자느라 비몽사몽인 상태, 그리고 일요일엔 밀린 업무 때문에 출근을 강행했으니, 남편을 마주치긴 했지만 만나기가 어려웠다고나 할까?;;


이렇게 된 원흉은, 1.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야근 문화가 일상인 최악의 회사였다는 것, 2. 남편의 팀장이 미혼인 , 10명이나 되는 팀원 가운데 3. 남편이 입사 1년 차임에도 불구 유일하게 기혼자였다는  있었다. 이 3가지 가운데 하나만으로도 견디기 벅찬데 3가지가 합쳐진 회사라니.ㄷㄷ


남편 팀장은 당시 마흔 정도 되었는데, 여자 친구도 없고 회사 근처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걸 싫어했고, 자기와 함께 밥도 먹어주고 농담 까먹기도 해야 하는 팀원이 집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다른 팀원들도 본인이 죽을 맛이니 아무리 결혼한 기혼자라 해도 꿀 빠는 모습볼 순 없었겠지. 함께 지옥행 열차를 타고 서로가 서로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형국이었다.


남편은 그런 환경에서 신혼 초 한두 번 일찍 집에 왔다가 다음날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일이 주어져, 그냥 천천히 늦게까지 일하기로 결심한 듯했다.


그리고 남편일요일에 한 번 출근을 한 적 있는데, 우연히 회장을 만나게 됐고, 갑자기 인사팀에서 월급을 인상해 준 경험을 하게 된 이후로, 돈의 노예가 되면서 매주 일요일 출근을 시작했다. 실제로 그 후로도 남편만 몇 번 월급 인상이 되었다고 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월 몇 십만 원이 소중한 그에게 투척한 미끼는 매우 큰 의미였고, 남편은 그 미끼를 독약인줄도 모르고 아주 꽉 잡고 놓지를 않으려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회사의 노예로 남편이 거듭나면서 집안일은 내 몫이 됐다.


난 당시 회사에서 연차도 낮고, 딱히 주요 업무도 아니었고, 회사에서 1분 1초도 오래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성격이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많았다. 그렇다고 집안일이 온전히 내 몫이 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지도 않았고, 돈 몇 십만 원에 그렇게 회사에 올인하는 남편도 이해가 가진 않았다.


특히, 남편 회사는 회식도 잦았는데(월 1회인데 왜 이렇게 잦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ㅎㅎ), 회식할 때면 늦게까지 일하다가 회식을 해 보통 8시 정도부터 시작해 새벽 1~2시가 기본이었다.


처음 결혼하고 3개월 동안 거의 남편 보기 힘든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가정부처럼 가사를 전담하는 것도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가는데, 기혼자가 새벽 1~2시까지 집에 안 들어오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에게 첨으로 화를 냈던 거 같다.

 "이러려고 나랑 결혼했어?!!"


그랬더니 다음 회식에는 웬일로 밤 10시에 들어온 거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와서 급히 나가보니, 남편이 전봇대를 잡고 서 있었다. 몸도 가누기 힘든 만취가 된 상태로...


남편 왈 "내가 술이 세서... 멀쩡해 보이니..까. 딸꾹...집에 못가게 해서.. 이번에는 일찍 오려고... 소주.. 3병을... 들이 부...었..어. 나 일찍 왔어. 성.. 공. 딸꾹.. 이.. 야. 네가 일찍...오라고.. 해서 일.. 찍 왔..어..딸꾹"


남편은 덩치가 있어 술이 센 편이지만 술을 좋아하진 않아서 한 번도 취한 모습을 보여준 적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나도 맘이 약해졌다...


"나.. 는 너에게 1억을 갚..을 의무.. 가 있...어. 딸꾹.. 그 1억을 갚..을 때까진... 회사에 다.. 녀.. 야만 해. 그..래야 너희 부모님께도 너에게도 떳..떳할 수.. 있어.. 딸꾹"


결혼을 시작할 때, 나만 집에서 1억을 받아온 것이 내심 맘에 걸렸었나 보다. 나그런 힘든 생활을 하지 말고 내게 좀 기대라고 결혼을 한 건데, 남편은 나와 결혼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거다. 휴... '널 어떡하면 좋니~~'


"그렇게 해야만 오빠 맘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 그리고 간을 버려가면서까지 집에 일찍 올 필욘 없어."


그렇게 난 집안일 전담자가 되었다. 남편은 그냥 회사일에만 신경 쓰면 되니 일은 여전히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결 편안해진 거 같았다.


그렇게 한 2년 반이 흘렀을까.. 1억을 다 갚고 목동 아파트로 이사를 확정했을 때 남편이 말했다.


"나 이제 회사 그만두려고."


참 인생이 흥미로운 게 남편이 일을 그만두니, 내가 회사에서 주요 인재가 되며 엄청나게 바빠지는 거다. 집안일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땐 또 남편이 매일같이 출퇴근 데려다주고, 요리해 주고, 집안일 전부를 해줘 그 시간들을 버틸 수가 있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가사 분담 스코어는?

나 : 3년(신혼부터 남편이 회사 그만두기 전까지)

남편 : 1년(남편이 회살 그만두고, 장장 1년을 놀았..;;)

나&남편 : 2년(남편이 다시 회사 출근, 하지만 업무강도 약함)

남편 : 2년(남편 회사 근처로 이사해 더 일찍 오는 남편이 주로 전담)

나 : 현재 2개월째(다시 내 회사 근처로 이사옴)


결과적으로 의도하진 않았으나, 매우 공평한 가사 분담인 걸로~~

작가의 이전글 21세기 며느리와 22세기 시어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