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렸을 때부터 강박이 있었다. 모든 책과 공책, 연필들을 키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에 집착한다든지, 글씨 한 글자 쓰는데 지우개 하나를 다 쓸 정도로 컴퓨터 같은 글씨체에 집착한다든지. 문을 열 때 오른쪽 한 번 돌리고, 왼쪽 한 번 돌리고 문을 연다든지, 옷을 입을 때 배를 2 번치고 입어야 한다든지 하는 희한한 룰들, 나만의 법칙들.
어릴 땐, 그러한 강박들이 나쁜 것인 줄 몰랐는데, 어느 날 엄마가(엄만 중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나와 비슷한 애가 있었는데, OMR 카드에 색칠하다가 자꾸 삐져나가서 답안을 바꾸고 바꾸고 하다가 결국 울부짖으며 시험을 중도에 포기했고, 지금은 정신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될까 걱정이 되셨던지, 최대한 막살아보라고, 뭐 어때, 하는 맘으로 뭐든지 대충 해 보라고 하셨고, 실제로 어려서 그랬는지 그 후로 많은 강박들을 없앨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해서도 몇 가지 놓지 못한 것들이 있다.
- 이불패드나 소파패드의 사면이 쫙쫙 펴져있어야 맘이 편하다.
- 이불 브랜드 택이 다리 쪽에 와 있어야 잠이 온다.
- 거실 tv장 서랍문이 닫혀있지 않은 걸 못 본다.
- 밥을 먹은 후 2시간 동안은 눕지 못한다.
- 아무리 더워도 이불 밖으로 발을 꺼내놓고 자지 못한다.
적고 보니 강박 수준은 아닌 거 같긴 하다.
반대로 남편은 지금까지 찾고 찾아봤는데, 단 하나도 집착하는 게 없다. '어떻게 강박이 하나도 없을 수 있어?? 귀신인가?'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이불이 뒤집어져있든 택이 위에 있든 아래 있든, 소파든 침대든 어디서나 누웠다 하면 자는 남자.. 노 강박.. 대단하다. 대단해.
남편이 내 강박을 고쳐보겠다고,
이불 택이 위에 오도록 하고 자보라고 했는데, 난 그럼 발에서 떨어진 각질이 내 얼굴에 닿아서 피부병이 생기고, 그 피부병이 온몸으로 번지는 상상만 하며 뜬 눈으로 지새우게 될 거라고. 실제로 몇 번이나 자보려고 했으나 절대 잠을 잘 수 없었다,..
거실 tv장 서랍도 열고 있어 보라고 하는데, tv가 안 보이고 서랍장만 보인다. 결국 tv를 보려고 서랍장을 닫고 마는 나란 여자... 강박 있는 여자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