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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래 Jul 15. 2023

베러레터 #09. 사찰음식은 거기서 거기 아니야?

정관스님의 요리는 얼마나 대단하길래 뉴욕까지 갔을까?



안녕하세요! 하늘이 뚫린 것처럼 매일 같이 비가 오는 요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원래 비 오는 날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좋아하는 몇 가지를 비 오는 날에만 하는 리추얼로 정하고 나서 조금 괜찮아졌어요.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예요.


* 얼그레이는 비 오는 날에만 마신다.  

* 카페에서 비싼 음료를 먹어도 된다. (과당한 음료들 ^^)

* 1시간 더 잔다.


어떤가요? 이정도면 아주 피곤한 날엔 손꼽아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답니다. 언젠가 친구와 타이트한 스케쥴로 일본 여행을 하다가,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데, ’만약에‘ 비 오면 우리 온천이나 하고 좀 쉬자.” 라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비가 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맑은 날씨를 기원하는 일본의 풍습인 “테루테루보즈”를 거꾸로 걸어놓고 잠이 든적도 있었답니다. 요런 아이디어 어떤가요? 여러분도 비 오는 날에만 꼭 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만들어보세요.



오늘은 저의 특별한 여행기를 가져왔어요. 저는 지난 6월 초 장성 천진암에서 <정관스님과 함께하는 장성 향토음식 쿠킹클래스>에 참석해서 특별한 2박 3일을 보내고 왔거든요. 새소리가 깨워주는 깊은 숲 암자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도 특별했지만, 그때 나눈 이야기들이나 받았던 스님의 에너지, 들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더라구요.


아 혹시 여러분 정관스님을 알고 계신가요?

정관스님은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시즌3 첫번째 에피소드로 소개된 지금 요리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님이시랍니다.  2023년을 기준으로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셰프인 에릭 리퍼트와의 만남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 되셨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사찰음식의 세계에서 연구와 대외활동을 열심히 하시며 음식의 세계와 깊이를 넓히고 깊게 하는 역할을 해오셨어요.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정관스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찰음식은 거기에서 거기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에 막 찾아보거나 하지는 않았는데요. 어느날 파인다이닝 <온지음> 에 갔다가 (온지음은 요리 연구소를 표방하고 있어요) 사찰음식은 한식이지만, 완전 비건에 오신채(마음을 흥분시키는 다섯가지 야채, 마늘, 양파, 파, 부추, 달래 등)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음식의 즐거움을 잃지 않기 위해 정말 다양하고 깊은 연구를 해온 거란 걸 알게 되었어요. 사찰음식 식당 같은 곳에서 한 두입 먹어보고 사찰음식의 넓고 깊은 세계와 철학을 등한시했던 것이더라구요. 바로 그날! 넷플릭스를 켜고 정관스님의 이야기를 시청한 후에 스님을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답니다. 물론 그런 마음과 백양사 템플스테이를 시간 맞춰 피켓팅으로 성공해서 장성에 가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지만요.


저는 이번에 후원하고 있는 시민단체 <내일의 식탁>에서 장성군과 함께 주관하여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참여했어요. 백양사와 천진암에서 머물기는 하지만, 프로그램 중간, 중간 외부 전문가들의 강의가 준비되어있고 스님과의 시간은 많지 않길래 일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처럼 스님과는 한 두번 정도의 시간을 함께 하며 차담을 나누거나, 이야기를 듣거나, 산책을 하는 정도겠구나하며 막연한 기대를 좀 내려놓고 참여했답니다.




천진암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스님의 뒷모습, 평면의 화면을 뚫고 나와 실제로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스님을 마주하니까 마치 초등학교 때 연예인을 처음 본 것 같은 신기한 마음이 들어서 어찌 행동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처음엔 스님에게 제가 하는 말이 들릴까, 자꾸 속삭이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곧 스님을 대하는 일이 굉장히 편해졌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스님은 연예인도 셀럽도 아니셨고..(!) 굉장한 환대의 마음으로 참여자들을 맞아주셨거든요. 편안한 말투, 태도에 저도 긴장을 풀었고 마음엔 기대가 차올랐습니다.


그리고 첫날의 입제와 인삿말을 시작으로 그때부터 저녁공양, 다음 날 점심, 저녁공양, 마지막 날 아침 공양까지 모든 식사를 정관스님이 주관하여 준비해주셨어요. (한 번의 차담이 아니었던 거예요..!) 한 번 정도 스님이 요리하는 모습을 시연이나 하시려나? 정도를 기대했는데 이렇게까지 2박 3일간 스님과 천진암의 주방에서 생활할 줄은… ! 장성까지 가서 2박 3일간의 쿠킹클래스에 참여할 사람들이었으니 그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을지 상상이 되시나요? 매 순간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던 꽉찬 시간이었답니다.






그래서 뭘 먹었는지 함 확인해볼까요?


첫날의 저녁공양

콩나물커리

버섯 초무침

머윗대 들깨찜

취나물 볶음

고추장떡, 인삼전

장아찌와 김치

부각


오미자청, 복분자청, 복숭아청과 제피를 넣고 무친 버섯요리가 정말 새로웠어요.

다음날 점심 공양을 준비중인 모습

재료가 엄청 많죠? 10가지 음식을 보여주셨어요.

원래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해서 먹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마음에

메뉴가 ㅋㅋ 눈앞에서 즉흥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

아주 재미있었땁니다.


호박 넣고 아욱 된장국을 끓이다가,

전에 빻아 쓰고 남은 밀가루가 생각나셔서 급히 호출,

바로 반죽해서 수제비로 만들어주셨어요!

스님의 시그니처인 표고버섯찜

(스님의 아버지가 극찬하시며, 이런거 먹고 사는 거면 너 절에 사는거 반대 안한다, 하셨다던)

도라지 초무침, 가지찜, 미나리 콩가루 찜, 꽈리고추찜, 고추순 무침

장아찌, 열무김치

비빔밥 용 상추

둘쨋날 저녁 공양은 면식으로 준비하신다고 하셨어요.

간단하게 먹겠거니 싶었는데…

국수만 먹고 혹시나 허기가 들까

감자, 고구마, 양배추, 옥수수를 쪄서 준비하시고

오이지, 매실장아찌, 토마토 장아찌가 나왔답니다..!

저녁 2차…

상추가 많이 남았으니, 전부쳐 먹자고 하셨는데요

고추장을 넣고 반죽을 되직하게 한 후,

호떡처럼 튀기듯 부쳐 맛있었어요.


마지막 날 아침 공양은 죽으로

절에서는 노승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죽도 많이 했다고 해요


주걱을 저렇게 세울 수 있으면 다 된거라구!

여러분들은 사찰음식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고 계세요? 사실 전 사찰음식을 거의 항암음식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값싼 한식뷔페의 맛 (콩고기 탕수육을 쓴) 정도로요. 한국에서 비건을 한다던가, 채식을 한다던가 말을 하면 “왜 어디가 안좋아?” 라고 묻던 시절이 고작 2-3년 되었거든요. 채식이란 스님들이 먹거나, 혹은 암 환자가 먹는 음식정도로 일반에게 인식되었기 때문인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비건이라고 하면 날 채소에, 드레싱도 뿌리지 않은! 샐러드, 스님들이 먹는 자극 없는 아주 금욕적인 음식만 먹는 것처럼 여기기도 해요. (소금 반대가 아니라, 육식 반대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잖아요. 비건음식이라는 세계가 제한되어있지 않고 음식의 세계만큼 넓고 깊다는 것을. 야채와 과일이 주는 다양성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는 고기의 종류와 견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까마득해서 아마도 인류가 기억할 수 없는 시기부터 그 세계를 연구해온 곳이 바로 불교 아니겠어요? 이 당연한 사실을 생각해보지 않은채 비건 식당을 고르면서도 늘 사찰음식 전문점은 조금 피해왔던 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답니다.




더군다나 제가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 스님이 해주신 첫번째 메뉴였어요. 콩나물 커리. 누가 향토음식/사찰음식 클래스에 가서 첫끼로 커리먹을 거라고 기대나 했겠어요? 청국장이나 강된장 나올 줄 알았단 말이에요. (ㅋㅋ) 생각해보니 불교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사찰음식이라는 걸 한식이라는 범주에 우겨넣을 수 있나? 라는 질문이 생기더라구요. 물론 오랫동안 한국 불교 안에서 한식을 중심으로 한 사찰음식이 이어져왔지만 사찰끼리의 교류, 그리고 외국 불교와의 교류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천진암에 머물 때도 천진암에 대만에서 오신 비구니 노승께서 방문하신 상태였는데요. 그 스님이 선물해주신 고급 우롱차를 마시며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을 누리기도 했거든요.


맛있었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좀 짰습니다. (사찰음식은 무자극? 와장창 그럴리 없) 참여한 사람 모두 그렇게 느꼈는지 스님이 소금을 치실 때마다 ‘헉’ 하는 소리를 내다가 한 번 혼난 적도 있어요. 음식하는 사람 옆에서 마음 소란스럽게 하면 음식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잖아요. 마치 운전할 때 조수석 앉은 사람이 평정심을 갖는 게 중요한 것처럼.. 2박 3일을 내내 같이 붙어있어서 스님도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ㅎㅎ 하지만 저도 늘 베러테이블에서 말씀 드리듯이, 간이 충분치 않으면 별다른 이유가 없어서 사람은 그 맛을 밀어내는 맛으로 기억하게 되니까 30인분의 음식을 매 끼니 준비하면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모두의 입맛을 맞출 순 없으니.


하지만 정관스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 뉴욕 레스토랑에 초청받아 요리를 한 이유, 뉴욕 한복판에서 발우공양 팝업 레스토랑을 연 이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담긴 이유 모두 미슐랭 3스타 뺨을 치는 최정상의 맛이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스님에게선 요리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다른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I AM NOT A CHEF


스님을 수식하는 가장 유명한 문장인데요. 얼마나 완벽하고 변수 없는 음식을 레시피 대로 균질하게 만들어내냐는 사실 스님의 음식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거든요. 2박 3일간 매 순간 혼나는 기분이었는데, 음식을 망쳤다고 혼나는 일은 별로 없었어요. 스님이 호통치며 걱정하시는 건 주로 ‘먹는 사람의 마음’ 이라던가, 밥상위에 올라오기 까지 나름대로의 생을 살아온 ‘식재료의 생명에 대한 존중’ 같은 거였거든요.




정관스님께 배운 요리의 기본은?



스님의 주방에선 물을 자주 틀지 않습니다. 물은 늘 받아서 사용하구요. 저는 요리를 할 때 손에 잘게 썬 파 같은게 붙으면 그때 그때 물을 틀어 씻는 습관이 있는데, 스님께서는 대접에 찬물을 담궈놓고, 손에 묻은 야채 부스러기를 떨어트리는 데에 사용하시더라구요.


요건 저도 하는 건데, 여러가지 야채를 동시에 데치거나 해야할 때, 그때 그때 새 물을 받아 끓이지 않아요. 시금치 데친 물에 취나물도 데치고, 거기에 버섯도 데치고. 사실 열기만 가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괜찮거든요. 어떤 야채들은 그렇게 채수를 내기도 하구요. 매번 새로운 물을 받아 끓이고, 버리고 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물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사용되는 에너지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칼로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 이건 저도 하는 거고, 여러분께도 추천 드리는 건데 한번에 여러가지 음식을 해야할 때 볼이나 냄비를 다 새로 사용하지 않는거에요. 가장 연한 맛의 음식을 먼저 하고 (참기름과 소금만 넣은 시금치무침), 그 볼에 그대로 오이를 무치고 (참기름, 소금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더해서), 그 볼에 그대로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고 (참기름, 소금에 식초와 고춧가루의 흔적에 간장과 올리브유, 참깨를 넣어) 간이 약한 것부터 간이 강한 것까지 초밥 먹듯 순서대로 음식을 하면 설거지거리도 많이 나오지 않고, 음식하기가 좀 수월해진답니다. 물과 세제도 덜 쓸수 있구요.


식재료를 버리지 않아요. 최소한의 상한 부분을 떼어내고, 음식의 양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어떻게 해야 최적의 조합으로 남김없이 다양하게 음식을 처리할 수 있을 지 고뇌하세요.


식재료를 다듬고, 요리하고, 상에 내어놓는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썰으면 그 사람의 ‘한 입’에 좀 클까? 이정도 담아놓으면 30명의 사람이 충분히 자기 먹을 만큼씩 담아갈 수 있을까? 너무 각지게 썰어놓으면, 입 안에서 입천장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까? 모서리가 날카로운 모양이 불편한 마음을 주지는 않을까? 이렇게 담으면 먹는 사람이 보고 기분이 좋을까? 혹시나 모자라진 않을까? 끝없는 먹는 사람에 대한 생각들을 보면서 음식을 만드시는 모습이 좋았어요. 왜냐면 그 음식을 제가 먹게 되잖아요.


생명이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에너지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며, 그걸로 누군가가 살아갈 에너지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요리하시는 모습도 좋았어요. 프로페셔널한 요리의 세계는 어느덧 누구를 살리고 먹인다는 개념에서 조금 멀어져서, 돈을 벌거나 과시하거나 평가를 받거나 랭킹에 오르는 종류의 것이 되어버렸는데 왜 셰프들의 세계에서 스님이 주목받고 감동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겠더라구요.


먹는 우리에게도 언제부턴가 음식이 ‘소비재’ 혹은 ‘피사체’ 정도에 머물고 있지 않나요? 오늘 내가 먹은 무엇이 내 몸이 되고, 내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고, 나라는 생명이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잠시 시간을 멈추고 몇초만 생각해봐도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배합되었는지 모를 음식들을 무작위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확실히 정신과 몸은 … ^^ 영향은 주고 받지만 분리되어있는 것 같긴 해요.. 고양이와 꼬리같은 관계일까)



채식하기 좋은 여행지를 생각해보면 치앙마이나, 발리나, 베를린 같은 곳이 떠오르는데요. 그중에서도 치앙마이나 발리 같은 곳은 ‘수행자의 문화’를 추종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번에 장성에 다녀오면서.. 장성은 정관스님 보유군으로서 뭔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관스님을 약간 추종하는 마음이 생겨버려서 그런 걸까요?


여러분 오늘은 뭐 드실거에요? 우리의 생활과 일상을 회사나, 대중교통이나, 마트나 쇼핑몰에 빼앗기구 있지만 그럴 때 일수록 뇌에 힘 꽉 주고, 무엇으로 날 살아가게 할 것인지 나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조금 더 살펴보는 7월이 되시길 바라요. 제가 꼭 그럴 여유를 가지실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기원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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