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획 과정
갤러리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이따금씩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와 무료전시인가요? 하는 관람객의질문을 받게 됩니다. 갤러리는 그림을 걸어놓고 왜 입장료를 받지 않을까요? 바로 갤러리의 고객인 그림을 구매하는 컬렉터가 있기 때문이지요. 미술관은 교육, 연구 학술적 목적의 비영리적 성격을 띠는 반면에 갤러리는 영리적 이익을 취하는 사업체이며 비 제도권이기 때문에 갤러리오너의 취향이나 경영철학이 반영됩니다. 제도권에 있는 전시보다는 공공성의 성격을 띠지 않고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스트는 작가를 발굴하고 미술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윤 추구 이상으로 작가의 작업세계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전시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에게 새로운 예술 세계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작품을 더 멋지게 보이게 하는 것은 결국 갤러리의 기획력에 달려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갤러리에서의 전시기획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시 콘셉트, 기획서 만들기
갤러리 전시는 보통 1년 치의 전시일정은 미리 계획되어 있으며 몇 개월만에 빨리 이루어 질수도 있습니다. 짧게는 2주에서 두세 달의 전시 기간을 갖습니다. 이는 갤러리의 성격에 따라 상이하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는 그 호흡이 빠른 편입니다.
우선 작가가 섭외되어 있는 상태, 즉 소속 작가의 전시를 기획할 경우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전에 미리 일정이 정해지는데 전시일정, 전시제목과 콘셉트를 바탕으로 기획서를 작성합니다. 기획서에는 작성일자, 전시일정 (전시기간, 관람시간), 전시의도, 콘셉트, 출품작품, 홍보계획, 소요예산, 설치 및 운송 계획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타임테이블로 만들어 꼼꼼히 체크하고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기적절한 주제를 먼저 정해놓고 그에 맞는 작가를 후에 섭외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주제에맞게 작가와 출품작 수를 정하고 동시대에서 어떤 작가들과 예술성을 보여줄 것인지 검토합니다.
기획 단계에서 전시 비주얼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데 요즘 같은 이미지 시대에는 전시를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는 각종 보도자료, 각종SNS에 업로드되고 갤러리 입구에 걸리는 등 관람객에게는 전시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작가섭외
작가 섭외를 위해서는 전시 기획서를 첨부한 제안서를 작가에게 직접 보내거나 그 작가가 소속되어 있는 에이전시에 보냅니다. 작가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지 소속화랑이 있는지 사전에 꼭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가섭외를 위해서는 평소에도 다양한 아트페어나 전시를 다니며 미술시장의 맥락을 늘 예의주시하며 작가를 서치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SNS를 통해 작가를 컨텍하는 경우가 많은데 온라인이 최초의 컨텍 포인트인 경우에는 더욱 정중하고 진정성 있게 마음을 담아, 하지만 전문성 있고 명료한 기획서로 다가가야 합니다.
계약서작성
참여작가와 전시일정이 확정되면 계약서를 작성하여 양측 서명 후 각각 한 부씩 보관합니다. 작가가 소속 화랑이 있다면 해당 화랑과 계약을 맺습니다. 포장 및 운송, 분실도난 파괴, 작품가격책정과 판매대금지급, 중개수수료, 전시 및 홍보, 전시 이후 화랑의 위탁기간과 작품보관기간, 작품 반입 반출 등에 대한 협의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약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약속을 지키고 진심을 다하여 일하며 쌓아온 신뢰는 더 큰 힘을 지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계약서별첨)
작업실 방문
갤러리스트로서 작가의 작업실에 초대되어 신작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전시를 앞두고 작업실에 방문하여 작가를 세계를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 보고 작품을 선별하여 새 전시의 청사진을 그려보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전시준비 중에도 틈틈이 작가와 연락하여 안부를 묻고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이는 좋은 전시 퀄리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작가와 갤러리의 파트너 쉽이 발휘되는 순간, 갤러리스트는 늘 작가와 늘 소통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가집니다.
전시자료
보도자료 작성 및 홍보물 제작을 위해 작가에게 고화질 작품이미지와 프로필, 작가노트와 같은 자료를 받습니다. 전시서문, 작가평론,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모든 텍스트는 영문으로 번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시 한 달 전에는 자료 준비가 완료되어야 합니다. 갤러리의 규모에 따라 번역, 평론 업무를 외주에 맡기는 경우도 있고 갤러리 내의 인력으로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홍보
전시 기획의 과정에서 마케팅과 홍보는 전시의 성과를 좌지우지합니다. 오늘날의 갤러리는 시대의트렌드에 맞게 온,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며 갤러리만의 전략과 영업비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시오픈 2주에서 1주 전에는 보도자료를 미술기자들과 미술전문지에 배포합니다. 최근 새로 생겨난 각종 SNS 미술 플랫폼에도 자료를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리플릿, 엽서, 도록 등 전시콘셉트에 맞게 홍보물을 인쇄하고, 인쇄물은 초대장 역할로서 갤러리 고객들에게 미리 발송합니다.
작가 브랜딩이 돋보일 굿즈 제작을 하여 판매하거나 기존고객에게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는 잠재고객을 확보하고 팬을 유입시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전시 7일 에서 10일 전에는 갤러리 보유 데이터의 고객들에게 전시를 알리는 문자,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각종 SNS 및 홈페이지에 새로운 전시소식을 매력적으로 업데이트하여 갤러리의 호감도를 높입니다.
이렇게 온라인 홍보 이외에도 오프라인으로 VIP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나 행사를 열기도 하고 전시 오픈 전 프리뷰 날을 따로 만들어 고객이 그림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등 갤러리마다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전략이 필요합니다..
작품 입고
작품 입고는 보통 미술품 전문 운송 업체의 차량을 이용합니다. 갤러리마다 두세 군데 믿을만한 운송 업체 리스트를 보유하면 좋습니다. 작품의 포장을 뜯을 때에는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그림을 받자마자 사진을 찍어놓습니다. 이동 중 손상되거나 이미 미세한 손상이 있을 수 있기 작품을 받고 되도록이면 빨리 작품상태 체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품을 받을 때 인수증을 받아야 하고 보낼 때에도 인수증을 교부하여 인수자의 사인을 받습니다..
설치 및 전시장 조성
기획 단계에서 나온 구상도를 따라 기획의도에 맞게 설치합니다. 필요에 따라 벽을 작품 무드에 맞게 도색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와의 회의를 통해 주력하고 싶은 작품을 고려하되 갤러리 공간의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기획의도에 따른 관람객 동선과 안전을 고려해야 하고 바닥과 작품의 높이, 작품과 작품 사이의 숨쉴틈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작품 수와 색감에 따라 조명을 준비하고 작품이 돋보이게 조명 위치를 조절하면 비로소 설치가 끝이 납니다.
그 이외에도 전시 기획글과 간략한 전시정보를 시트지 커팅으로 인쇄하여 공간을 더 다채롭게 꾸며야 하고 사람들이 작품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전시와 작가정보, 전시장 지도를 가독성 있게 디자인하여 전시공간에 비치해 놓습니다. 작품가격리스트는 모두에게 오픈하는 곳도 있으며 직원에게 요청하면 받을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전시 마무리
전시가 끝나면 판매된 작품을 고객에게 배송합니다. 작품을 배송할 때는 인보이스와 보증서를 동봉하여 세련된 포장으로 갤러리의 브랜딩을 살리되 박스나 각종 포장재를 사용하여 안전하게 배송합니다. 작품 사이즈가 크거나 직접 설치가 경우에는 미리 아트 핸들러와 고객사이의 스케줄을 조율하여 설치를 진행합니다. 이 경우에 고객이 설치할 공간의 벽 소재를 미리 숙지하여 핸들러에게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가와는 계약서에 따라 수익을 분배하여 작품 결제를 진행하고 세무 처리를 합니다. 갤러리 공간에는 작품을 철거 후 구멍난 벽을 메꾸고 새로 페인트 칠을 하여 새로운 그림이 들어올 준비인 기초공사까지 끝나야 비로소 전시가 마무리됩니다.
성과 보고서
관람객수, 매출, 홍보효과 등을 수치화하여 정리하는 성과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관합니다. 전시를 되돌아보고 미흡했던 점이나 개선할 점을 체크해 보고 다음전시에 반영한다면 갤러리의 방향성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전시 과정에서의 모든 기록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갤러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일부 과정은 생략될 수도 있고 특별히 강조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지만 이처럼 전시는 생각보다 많은 절차와 수고가 따르기에 갤러리스트들은 많은 것들을 조율해야 하는 다재다능한 능력이 요구됩니다. 모든 과정이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가장 중요합니다.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갓 나온 작품을 처음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1차 시장의 역할을 하므로 갤러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작품판매라는 미션을 넘어 대중에게 미술을 알리는 공적인 역할 또한 수행하므로 사명감을 갖고 전시를 기획해야 합니다.
전시 결과에는 잠재고객이나 팬 확보, 갤러리 이미지 고취 등 많은 비가시적 성과가 존재하므로 작품판매의 흥행만이 반드시 성과의 전부라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미술품을 판매하는 것에 있어 단숨에 빠른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멀리 길게 바라보며 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마치 작가의손에서 나오는 예술품의 탄생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요.
대중들에게 작가의 작품세계를 문턱을 낮추어 소개하는 것은 갤러리 매출결과와는 무관하게 갤러리스트의 임무입니다. 전시회는 비로소 관람객으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글은 편집되어
아티피오 칼럼 업로드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