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와 현재
경제 관련 뉴스를 보면 유동성이랑 단어가 참 많이 나온다. 특히나 현재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유동성과 사태를 연관시키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심지어 양적완화니 단기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위기 타개라느니 어려운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도대체 유동성이 무엇일까? 금융 자산이 유연한 정도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뭘 의미하길래 위기까지 몰고 오는 걸까?
유동성 (LIQUIDITY )
유동성이란,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써 어떤 자산의 현금화 가능성을 의미한다. 유동성이 높다는 것은 현금화가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이야기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이야기이다. 즉 얼마나 쉽게 팔거나 살 수 있느냐가 유동성의 척도라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중고시장에서 아이폰을 팔 때와 무명의 스마트폰을 팔려고 내놓았을 때 팔리는 속도나 비용을 생각하면 된다.
아이폰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원하는 사람도 많으며, 가격도 형성이 잘 되어있다. 아이폰을 사거나 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재판매가 쉬울 거라는 기대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이폰을 판매하겠다고 올리면 신품에 비해 크게 가격이 깎이지 않더라도 사려는 사람이 많이 있다. 실제로 필자가 먼 옛날에 미국 중고거래 사이트인 크레이그리스트에 아이폰 3GS를 팔겠다고 올렸다가 신품에 비해 10%인가 밖에 싸게 내놓지 않았는데도 수십 통의 이메일을 받은 기억이 난다.
덕분에 파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반대로 사는데도 크게 어렵지 않다. 당장 아이폰을 중고로 사려고 했을 때 가능한 매물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심지어 색상, 용량, 모델별로 다양하게 매물이 있어서 선택을 하는데도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무명의 스마트폰을 팔려고 한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사려는 사람도 별로 없을뿐더러, 가격 또한 신품에 비해 낮게 책정이 될 것이다. 100만 원을 넘게 주고 샀어도 50만 원에 팔아야 할 수도 있고, 그 조차도 언제 팔릴지 기약이 없다. 살려는 사람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내가 원하는 색상이나 스펙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그렇게 하느니 신품을 사는 게 나을 정도의 가격을 줘야 한다.
이처럼 쉽게 사고 쉽게 팔 수 있는 아이폰과 같은 상품을 "유동성이 높은 상품"이라고 하고, 무명의 스마트폰처럼 쉽게 사고팔기 어렵거나 거래 비용 및 시간이 많이 드는 상품을 "유동성이 낮은 상품"이라고 한다.
유동성을 이야기할 때 유동성이 낮은 예로 많이 드는 상품이 땅, 미술품, 명품 사치품, 적금 등이 있다. 반대로 유동성이 높은 상품은 현금, 금, 애플 주식 등이 있다. 물론 유동성의 높낮음은 상대적인 것이라 절대적으로 비교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더 맞을 때가 많다. 같은 미술품이라도 피카소의 그림은 상대적으로 쉽게 팔리고 원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무명작가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을 수도 있다. 피카소 그림이 유동성이 더 높은 것이다. 허허벌판에 있는 땅과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땅의 유동성 또한 마찬가지로 같은 땅이지만 유동성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유동성이 꼭 인기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희소성이나 거래의 어려움 등등으로 유동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비상장주들 중, 예를 들어 BTS로 인기가 많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사고 싶어도 파는 수요가 없어서 사기 어렵다. 아예 발매가 몇 켤레 되지 않은 GD의 피스 마이너스 원 같은 신발은 인기는 엄청나지만 공급 물량이 적어서 유동성이 떨어진다.
그럼 유동성을 측정할 때는 주로 어떤 방식을 사용할까? 얼마나 많은 물량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얼마나 손해 없이 거래를 성사할 수 있느냐를 따진다. 즉 Executable Volume(매물), Time(거래 성사까지 걸리는 시간), Price Impact(가격 충격)로 정리할 수 있다. 매물이 적을수록, 거래 성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가격 충격이 심할수록 유동성이 낮다. 그리고 이때 드는 손해를 종합하여 <거래비용>이라고 한다.
<유동성>은 시장 매물과 비례하고 거래 성사에 걸리는 시간과 가격 충격에 반비례한다.
<거래 비용>은 일정 매물을 거래하기 위해 드는 총 시간, 가격 손해, 기회비용을 합친 것이다.
내가 아파트를 팔기 위해서 부동산을 방문하여 올리고, 복비를 지불하며, 짧게는 며칠, 길게는 수년까지도 기다리며 판매되기를 기다린다면 이 모든 것이 거래 비용에 포함되는 것이다.
거래 비용은 매물이 크면 클수록 커지고, 시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커진다. 즉 많은 양을 거래하려고 하면 혹은 빨리 거래를 하고 싶으면 거래 비용을 많이 지불하게 된다. 때문에 급매물이나 대량 매수, 매도를 하기 위해서는 가격 충격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마스크 대란을 볼 수 있다. 만약 마스크를 빨리 구하고 싶다면 기존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불러서 살 수밖에 없다. 적은 양은 어떻게든 구해보겠지만, 대량의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서는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하고, 자연스레 거래 시간이 길어지게 되며, 거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더욱 높여서 살 수밖에 없다.
유동성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로는 스프레드라는 것이 있다. 스프레드는 어떤 상품의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중고차를 딜러샵에서 사려고 했더니 2000만 원을 주고 살 수 있고, 내 중고차를 딜러샵에 팔려고 하면 18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스프레드는 200만 원이 되는 것이다. 스프레드가 크다는 것은, 어떤 물건을 사는 순간 손해를 본다는 의미이고,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런 환전이나 자동차 딜러샵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얻는 사람을 "트레이더"라고 하기도 하고 "유동성 공급자, Liquidity Provider", 혹은 "시장 조성자, Market Maker"라고 한다. 트레이더와 유동성 공급자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으면 예전 글인 베팅보다는 무역상인을 참조하면 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다양한 금융이 섞여있다. 금융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자원이 필요한 사람은 자원을 빌리고 자원이 남는 사람은 자원을 빌려주고 돈을 버는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치킨집을 하나 운영한다고 가정해보자.
치킨집을 하기 위해서는 가게도 필요하고, 튀기는 기계도 필요하다. 재료를 살 돈도 필요하고, 영업에 필요한 인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리소스를 전부 다 가지고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러한 자원들이 남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빌려주거나 투자를 하여서 치킨집을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치킨집을 시작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게 되고 운영을 하고 판매를 하면서 수익을 얻게 된다. 이런 식으로 부족한 리소스들을 채우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결국 금융의 일환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 학자금 대출을 해주어서 나중에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갚는다던가, 축의금으로 결혼식 비용을 충당하였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는 것 또한 넓게 보면 금융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에 치킨집이 확장을 하기 위해서 생닭을 대량으로 사 오려고 하는데, 아직 치킨을 튀겨서 판 대금이 들어오지 않아서 재료를 살 돈이 없다면 어떨까? 이럴 때는 향후 매출을 담보로 재료값을 지불해서 생닭을 대량으로 사 올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당장 재료를 살 돈이 없어도 튀겨서 팔면 수익이 나기 때문에 재료값을 굳이 확보하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다.
현재 세상의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이런 식으로 수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복잡하게 자원을 빌려주고받으면서 이루어져 있다. 글로벌 시대에 경제가 한 나라에 종속되어있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비즈니스나 세상이 별일 없이 흘러간다면 큰 위기가 없을 수 있지만, 언제나 세상은 기상천외하고 사건 사고로 가득하다. 치킨집을 운영을 하다가 조류 독감이 터지거나 경쟁사가 등장하면서 예상한 만큼 치킨을 팔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미리 계약을 체결해두었던 생닭 값을 지불하지 못하게 될 수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을 대출해서 생닭값을 내던가, 향후 팔 치킨 매출로 이자를 쳐서 갚을 테니 기다려달라고 하거나, 기존 자산인 기계, 영업용 차, 인테리어 소품 등을 팔아서 메꿀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미 치킨집을 하기 위해서 대출이나 투자를 많이 받은 상태라 추가적인 대출이나 담보를 잡기 어려운 상태가 많다. 결국 향후 매출을 담보로 하거나 기존 자산을 매각하면서 갚을 수밖에 없게 된다. 유동성이 떨어지는 기계나 차를 손해 보면서 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팔아서 갚으면 비즈니스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아쉬워도 다행인 편이다.
그런데 만약에 현재 코로나처럼, 혹은 유가 하락처럼 전국적인 경제 이슈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미래 매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므로 당연히 매출로 갚겠다는 말을 믿지 못하게 된다. 또한 기계나 차를 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 유동성 위기가 온 것이다. 결국 기계 값을 반값, 혹은 그 이하로 내놓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사주지 않아서 부도 위기가 찾아온다.
치킨 집이 부도가 나게 된다면 생닭을 납품하던 업체의 매출 또한 불확실하게 된다. 그러면서 생닭 업체 또한 유동성 위기에 몰리게 된다. 양계장 운영이나 공장 운영을 위한 다양한 금융이 내포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쇄적으로 유동성 위기가 오면서 부도를 하게 되면 금융 위기가 찾아온다. 분명히 치킨집의 자산이나 기업 가치는 생닭 비용을 지불하고 남지만, 생닭 비용을 지불할 유동 자산이 없는 유동성 위기가 오면서 부도가 나는 것이다. 전 세계 기업이 이런 식으로 연쇄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금융을 주관하던 은행들 또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고 끝내 부도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통화 정책을 사용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이다. 이자가 낮아지면 돈을 빌리더라도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어서 기업들이 당장 닥친 유동성 위기의 불을 끌 수 있다는 계산이다. 마찬가지로 국채 매입을 통해서 돈을 풀게 된다면 당장 급한 돈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유동성 위기는 어떠한 이슈로 현금성이 떨어지면서 돈을 낼 여력은 있지만 단기적인 위기로 현금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무분별한 모기지 파생상품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금융 위기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만브라더스라는 은행을 시작으로 한 연쇄적인 부도가 이슈가 된 것이고, 이는 기업 자체의 펀더멘탈이 깨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동성이 해결된다면 다시 회복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현재 경제 상황은 유동성 문제도 있지만 기업 자체의 매출 급감이나 소비 위축, 오퍼레이션 비용 증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통화 정책과 시간만으로 서브프라임처럼 자연 치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필자의 생각은 이번 경제 타격은 IMF,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때와 결과들은 비슷하게 보여도 속성은 완전히 다르다고 보고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실물 경제의 속성을 바꿀 훨씬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