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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만 Apr 11. 2020

6 of 185, 재택근무의 맹점

2020/03/19, 6 of 185

와이프가 하루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다소 많이 긴장을 풀고 간밤엔 늦게까지 (컴퓨터 내의 내용물에 전혀 바뀐 게 없어 나 스스로도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작업도 하고 잤다. 한데 그런 어떤 기대를 한 것이 잘못이었다. 역시 일은 일이고 아이는 아이인 것을, 재택근무도 근무인데 뭔가 더 편할 거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나대로 ‘애들도 엄마를 더 좋아하니, 어느 정도 편해지겠지’ 하고 좀 빠지고,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원래 남편이 하기로 한 일이니 오늘은 육아는 서브로 빠지…’ 고 싶었겠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칭얼대는 애들은 애들대로 어떻게 어떻게든 맞춰주면서 회사에서 끝도 없이 밀려드는 연락에 짜증은 나고. 고작 와이프가 화장실에 가 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애들에 지치고 애들도 다른 날 보다 더 불친절한 아빠에 지치고. 이런 상태가 되고 나니 뭐 어찌 해도 기분이 안 나고 너무 힘든데 설상가상 아버지가 굳이 병원에 따로 얘기해서 (라고 추측됨) 내일 퇴원하신다는 소식에, 정말 너무하신다 하는 기분까지 들어 내가 완전히 다운되어 버려서, 저녁에는 집 안 분위기가 엉망진창이었다.

처음부터 '재택근무지 휴가가 아니니 일이 우선이고 평상시대로 내가 전부 다 하는 거다'라고 선을 딱 긋고 생각해야 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일의 범위와 깊이를 명확히 나누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동일하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집에서 그런 역할 구분에 대해 문제 삼는 일이 없었다는 건 (아주 낮은 확률로 아주 잘 분배가 되어있지 않은 한), 누군가 희생해서 더 들여다 보고 더 움직이고 있다는 뜻일 거다. 그 누군가는 대부분의 경우에 아내이자 엄마인 것이고. 다음 재택 때는, 아예 따로 방 안에 들어가서 일 하도록 얘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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