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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만 Apr 05. 2020

3 of 185, 진짜 첫날

2020/03/16, 3 of 185

내 인생은 정말 편하고 한가한 것을 절대 못 봐주는 팔자인가 보다. 고민 끝에 어려운 결심하고 조금은 여유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 조금은 있었던 휴직인데 웬 뜬금 코로나 19라는 역병이 돌아서 첫째가 어린이집을 못 가는 상황이 되었고, 졸지에 혼자서 둘을 쌩으로 하루 종일 보게 되었다. 와 정말 끝내준다. 그냥 반항할 생각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소시민으로 살아야만 하는 게 내 운명인가 싶다. 너무하네 정말.


오늘은 뭐 그냥 양호한 편이었다. 주말에 봐 왔던 중 심했던 날 보다는 물론이고, 평상시보다 좀 나았다 싶은 정도였으니까. 엄마가 사라지고 아빠랑 하루 종일 있는다는 상황이 둘째 보다도 첫째에게 더 낯설고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잘 지내고 버텨 줘서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낮잠에 대한 극렬한 저항과, 자기 뜻과 조금만 다르면 빽 울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질러대는 버릇은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낮에 청소기 돌아가는 시간에 안방으로 피해있는 것과, 소리 지르고 울면 진정하고 울음 그친 후 얘기하라고 말하며 기다리는 것을 반복해서 어떻게든 좀 개선을 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들이 얼마나 싫어하겠나.


회사에서는 욕을 먹더라도 (아주 많이 욕먹고 손해 볼걸 각오하면) 더러워서 안 한다라든가 난 쉬어야겠다 하면서 배 째겠다 마음먹으면 그렇게 해 버릴 수 있을 텐데 이건 뭐 아들들이 울고 짜증 내고하는 데에는 그럴 도리도 없다. 이렇게 힘든 일을 혼자 2년 반을 해 왔다는 거다 와이프님은. 거 참… 세상 힘들지 않은 일 없다는 거야 익히 잘 알고 있다 생각했고 결코 휴직하고 아이들을 돌본다는 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아무런 생각도 판단도 못 하고 그냥 그냥 닥치는 대로 이거 저거 대처하다 하루가 끝난 뒤 돌아보니 역시나… 싶어 암담하다. 일병 시절의 기분이랑 비슷한 것 같다. 이대로 183일이 지나가고 복직해서 원래 자리로 그대로 돌아가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온다. 그러면 안되는데… 뭐라도 해 내야 하는데… 하는.


아버지는 통증을 줄일 방법이라도 찾아보자는 의사의 제안에 다시 입원을 하셨다고 한다. 또 나에게는 말씀도 안 해 주시고, 고모부 차로 가셨다고. 오늘은 어차피 알았다 해도 못 갔을 상황이긴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들은. 두 분 다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시다. 아버지가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매 순간 지켜보고 계신 엄마가, 만날 때마다 말도 못 하게 얼굴이 상해있는 모습이 정말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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