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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Sep 02. 2018

여행하는 디자이너, 싱가포르 취업기 03

Grab UX Designer Interview Case

이 글은 여행하는 디자이너, 싱가포르 취업기 02와 이어집니다.



네 번째, 헤드 면접


내가 지옥의 한 달이라고 한 것은 2차 면접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대략 한 달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다. 분명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답을 주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백수였기 때문에!) 3주가 넘어가는 시점에 다음 면접을 진행하자는 연락이 왔다. 일정을 금요일까지 연락을 준다더니,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급박하게 오늘 오후에 가능하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바로 수락했는데, 왠지 이번에 수락하지 않으면 또 언제 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는 입을 풀고 면접을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인지 영어가 예전 면접들보다 잘되지 않았던 것 같다. 3차 면접엔 Head of Design이 들어왔다.


면접은 2차와 동일한 내용으로 진행되었고, 발표 내용에 관해 꽤 흥미로워했다. 발표가 끝난 후, 형식적인 몇 가지 질문이 짧게 오갔다.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는지, 평소에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일하는지. 왜 Grab에 오고 싶은지. 간결하게 끝났지만, 오랜만에 영어 면접을 본 탓인지, 이전 면접과는 다르게 대답을 잘 못한 것 같아 스스로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오늘 면접이 어땠는지, 그리고 결과는 언제 나올지 물었다. 그는 지금까지는 꽤 좋았다며 보통 일주일 내에 연락이 갈 테지만 2-3일 내로 당겨보겠다고 했다.



마지막, 연봉 협상


이후 일정은 정말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매번 그래왔듯이 Thank you 메일을 보내고 나니, 바로 다음날 인사팀 팀장에게서 통화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왓츠앱으로 원하는 연봉을 알려달라고 했고, 레퍼런스 체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초기 연봉을 제안하는 것이 향후 연봉 협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에, 많은 리서치를 통해 신중히 정해 메일을 보냈다. 싱가폴의 대략적인 UX/UI 디자이너 직군의 평균 연봉을 구글이나 헤드헌터를 통해 알아보고 내가 원하는 연봉을 얼마부터 얼마까지로 범위로 알려줬다.


나라마다 이 연봉 협상의 문화가 다른데, 미국이나 유럽은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기존 연봉을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 물어볼테지만,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식으로 거절하면 된다.) 이전 회사의 연봉이 알려지는 순간, 협상의 우위는 인사팀 직원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나 싱가폴은 연봉 협상 전, 이전 회사의 월급명세서를 넘겨줘야 한다. 싱가폴의 다른 회사와 연봉 협상 중, 월급 명세서를 줄 수 없다!를 시전했다가, 그럼 더이상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깨갱하고 명세서를 보냈다.) 하지만 Grab은 싱가포르의 다른 회사와 다르게 이전 연봉은 묻지 않았다. 아마도 미국 회사의 문화를 많이 적용해서 그런 것 같았다.


레퍼런스 체크는 나와 과거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이메일을 알려주면, 회사에서 레퍼런스 체크를 위한 웹사이트를 동료들에게 보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주관식, 객관식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와 어떻게 일했는지, 회사 나를 어떻게 가이드해야 함께 잘 일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다고 한다.


거북이처럼 느리던 이전 프로세스와는 다르게 레퍼런스 체크가 끝나기도 전에 연봉이 날아왔고, 무시무시한 연봉 협상이 시작되었다. 해외에서는 연봉 협상을 어떻게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왔는데, (한국은 연봉 통보!) 역시 구글에는 없는 게 없었고, 이전에 다른 외국회사와 연봉 협상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조금 더 수월했다. 구글에서 연봉 협상을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카운터 오퍼(회사에서 제시한 연봉에 조건을 달리하여 다시 제시하는 것)를 날리는지 등을 열심히 읽고 시도해보았는데 나름 효과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카운터 오퍼를 보낸 후, 레퍼런스 체크를 잘 해서 요청한 연봉을 뒷받침하고 싶은 욕심에 주변인들에게 더 부탁하여 기준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레퍼런스를 받았다. 또, 다른 회사에서 받은 오퍼도 공유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기존에 다른 두 회사에서 받았던 오퍼의 내용을 보내서 협상을 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 연봉을 인상하여 오퍼를 받았고, 두 달 후 입사를 확정했다. 그 후 비자 프로세스가 시작되었고 3주가 되기도 전에 비자 승인 레터인 IPA를 받을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보내 지원했고, 화상 면접 3번, 1번의 디자인 과제를 수행했다. Grab의 면접 방식은 1차 면접은 디자인 팀장 2명과 함께 포트폴리오 리뷰, 2차는 디자인 과제, 3차는 과제를 리뷰하는 면접으로, 내가 갈 예정의 팀의 팀장과 시니어 디자이너가 들어왔다. 4차는 Head of Design과 포트폴리오와 과제 리뷰. 각 면접 사이에 내용이 공유되지 않아서, 과제 말고는 포트폴리오 리뷰를 계속 반복해서 하게 되었다. 확실히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발표 자료를 따로 준비해 가니 면접이 이전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또 이전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을 다음 면접 발표에 보강하여 넣으니, 면접이 진행될수록 발표가 나아졌다. 1시간이라는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예상되는 질문도 비슷해져서 프로세스가 진행될수록 편하게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발표 자료의 모든 화면마다 스크립트를 짰고, 최대한 외우려고 노력했다. 사실 첫 면접은 불안하여 노트를 띄워놓고, 생각이 안 날 때마다 컨닝을 했는데, 두세 번째 면접엔 거의 외워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미리 준비를 한 탓인지,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하게 면접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접 분위기가 좋았다고, 전체 프로세스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과 달리 일처리가 워낙 느려서 한 단계마다 3주 이상 걸렸는데, 전체 프로세스가 거의 4개월 가까이 걸렸다. 디자이너들만 그런 것인지 몰라도, 개발자들은 1개월 정도에 끝난다고 들었다. 예상했던 구직 기간은 거의 1-2개월이었는데, 기간이 늘어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가장 원하던 회사에 취직하게 되어, 기분 좋게 면접 후기를 작성해본다.


오랫동안 바라 왔던 해외 취업이라는 꿈을 한국에서 일하는 7년 동안 놓지 않았기에 드디어 첫 발자국을 뗀 것 같다. 사실 면접 과정은 시작에 불과했고, 입사해서는 더 큰 난관이 있었다.(참 할 말이 많다 ㅂㄷㅂㄷ) 벌써 Grab에서 일한 지 2달째, 조만간 적응기도 올려보려 한다. 이 글들이 탈조선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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