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ICATION FORM
신청서를 작성하다가 오랜만에 이곳(브런치)에 왔다. 2013년에는 국문으로 쓰고 영문 번역가에게 글을 맡겨서 신청서를 썼어야 했는데 이제 내가 직접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신청서의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아 요즘 아침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이 신청서는 내게 많은 글을 요구한다.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할 것인지, 당신의 연구 주제는 무엇인지, 실행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결과는 어떻게 보일 것인지. 내 연구가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
어젯밤엔 그럴듯해 보였던 글이 오늘 다시 읽으니 엉망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같은 단어들이 눈에 걸린다. 하고 싶은 말의 요지가 잘 담겨있는지 괜히 장황한 말만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인다.
지금 나는 격리 중이고 내일이면 이 격리에서 해방된다. 한국에서 겨울방학을 보내고 돌아온 후 나는 시차 적응도 하기 전에 바쁘게 또 즐겁게 일했고 그러다 아프기 시작했다. 지난 월요일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서 코로나 테스트를 했지만 음성이 나와서 월요일도 무리를 했고 화요일부터 탈이 나기 시작했다. 모든 수업을 취소하고 집에서 쉬다가 거의 회복될 무렵 목요일 셀프 테스트 결과는 양성이었고, 부랴부랴 찾아간 검사소에서의 결과는 '알 수 없음'이었다. 이 신청서의 데드 라인은 가까워져 오는데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았고 무기력했다.
드디어 일요일에 나는 이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쉬어본 일주일 동안 몸도 마음도 회복된 기분이다. 항상 이모양이다. 내 체력의 한계를 믿지 못하고, 나를 믿지 못하고, 그저 잘해보려는 욕심만 앞서는 것. 내가 어릴 때 학예회 전날 노래 연습을 무리해서 하다가 목이 쉬어서 학예회 당일에 노래를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났다. 무엇이든 컨트롤하고자 하는 의지는 '허기'와 관련이 있다고 캐럴라인 냅 언니가 말했던가. 그녀는 여성들이 쇼핑과 음식과 외모 같은 것이 엄청나게 집중하는 것은 허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이는 내 허기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기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어마어마한 노력이라고 했다. <욕구들-여성은 왜 원하는가> 중.
나는 요즘 어떤 허기에 시달리고 있었나. 집에 있는 동안 신기하게도 식욕이 어마어마했다. 몸이 안 좋은데 먹고 싶은 건 너무 많았다. 특히 패스트푸드, 아이스크림, 튀긴 음식 등등 내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이 너무 먹고 싶었다. 참지 못하고 치킨을 배달시키기도 했다. 오늘은 슈퍼에서 주문한 아이스크림 한통이 온다. 밖에서 일을 하는 동안엔 이렇게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땐 이벤트에 고팠다. 내가 해야 할 일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벅찬데 나를 채워줄 즐거운 이벤트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무리해서 퇴근 후 바에 가고 이벤트에 가면서 나는 더 지쳤다. 나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음식과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나는 먹고 또 먹거나 나를 혹사시켰다.
허기의 핵심: 1. 어떻게든 지속하고 싶었던 관계는 어긋나고, 어떻게든 끊어내고픈 관계는 꼬인 실처럼 엉켜있다. 2. 집을 옮겨야 하는데 혼자 집 구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 3. 올해 안에 이루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불안과 작업할 시간의 부족에 대한 불안.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내 인생의 10% 또는 20%의 문제, 그 갈등을 풀지 못하는 허기로 나는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려 하고, 그렇게 중요한 날 노래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나는 잘 해결되어가고 있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내가 현재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늘 감사하면서 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문제에 더 집중하고 나는 여전히 그런 불안한 존재라는 것에 또 초라해지곤 한다.
지금, 현재에 머물기를 가르치고 함께 공유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늘 여러 군데 마음을 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격리의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일, 앞으로 일어날 멋진 일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외로운 감정이 나를 허기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허기를 외면함으로써 나를 스스로 피곤하고, 아프게 만들었다. 내가 이런 감정이 드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를 더 꽉 안아주는 일이 참. 힘든 일인가 보다. 너는 더 강해져야 한다고 아픔을 외면하고 밀어붙이는 일이 더 쉬운 일이었나 보다.
어딘가를 향해 내가 하는 일이 잠재적인 가치가 있다고, 나를 선택해달라고 설득해야 하는 신청서를 쓰면서 생각한다. 너를, 나 자신을 설득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의 허기에 대해 분석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채워주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왔을까. 학예회 당일날 세상 즐겁게 노래하면서 잘하던 못하던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어린아이를. 나는 언제까지 꿈꿔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