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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켈리장 Jun 10. 2022

Interface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인터페이스로서의 특이점 -내가 가르치고 전공한 한국화가 여기서 특이점을 인터페이스로 가질 수 있을까?' ->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 특이점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당신을 위한 인터페이스로 어떻게 작동합니까? 당신의 가르침과 당신 자신의 작품을 그리는 방법에서 다르게 작동합니까? 자신의 작업 콘텐츠에서도 테마가 있습니까?

Singularity as an interface. - ‘And I asked this question-can this culture, the Korean painting that I have taught and majored in, have singularity as an interface here?’ -> Could you elaborate on this? How would you define singularity? How does it work as an interface for you – does it function differently in your teaching versus in how you paint your own work? Is it a theme within the content of your own work as well?

-저널 인터뷰 중.

저는 네덜란드에서 한국화, 수묵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의 본업은 예술가이지만 좋아하는 작업을 하는 제 자신을 지원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전공을 살려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어요. 저는 한국화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많은 영감을 받고 있고, 특히 제가 전달하는 언어의 장벽에서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항상 단어, 특히 특정 문화와 관련된 특정 단어에 걸려 넘어집니다. 예를 들어 ‘여백’은 수묵화에서 가장 본질적인 개념인데 영어로는 ‘빈 공간’ 또는 ‘하얀 장소’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여백은 ‘채우지 않고 채우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관객의 상상에 의해 정의되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설명을 해도 동양의 철학과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죠.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이 말과 책, 문맥과 문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여기서 한국화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저 회화의 기술의 전달뿐 아니라 다른 세계와 세계가 만나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가르치는 한국화가 여기에서 문화의 특이성을 가질 수 있을까?


철학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화는 특이성(singularity)의 의미를 ‘차이(difference)’로 변화시키고 이것이 세계에 통합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특이성은 이 초이성 세계(hyper-rational world)에서 환상이지만, 각 나라의 문화는 상징적 행위로써의 차이보다 특이성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문화의 특이성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어요. 요즘 여기서도 K-드라마, 책, 아이돌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왜 유럽에서도 공감을 얻는 것인지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문화에는 언제나 ‘상호작용-인터페이스'가 작용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지만 전혀 다른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해 왔습니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문화까지도 흡수하지만 또 다른 관점의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한국의 흥과 감정 센티멘탈과 한의 문화.. 그러나 제가 생각한 건 문화 자체에 ‘여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어요. 다양한 리소스를 참고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여백, 그 공간 안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것. 그 공간이 없다면 단지 복제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한국인들에겐 그 여유, 공백이라고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여백’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네덜란드에서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한국화를 가르치고 있어요. 이곳 사람들과 문화를 이해해야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생깁니다. 저는 제가 전달하는 한국화가 그저 유니크한 회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닌, 그들의 개성을 확장시키는 하나의 점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조선시대 학자들의 미덕은 서예와 그림과 시 (시서화)였고 그것은 일종의 고상한 취미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건 지금 내가 네덜란드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화를 가르치면서 느끼는 접점. 바로 한국화가 다른 분야에도 부스터 역할을 한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경제 및 과학과 기술 등의 전문가들에게 꼭 필요한 일종의 인문학 교육이 시. 서. 화였습니다. 시서화를 단련함으로써 얻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분명 그들의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승려가 가르쳤던 서예 수업에 참여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서예 수업이 맥킨토시의 폰트를 만드는 것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말을 했어요. 나는 그가 버튼을 모두 없앤 심플한 스마트폰을 만들었을 때도 그 아이디어가 작용했으리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1000번 10000번 이상의 선긋기와 호흡과 연습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글자. 그 심플함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고뇌와 연습. 

한국화 워크숍 _레이든 대학교

 

제가 정의하는 상호작용은 내가 가르치면서 부딪히는 언어의 장벽을 작품화하면서 더 다양한 교육법을 연구하는 것, 내게 배우는 학생들은 새로운 문화를 통해 자신의 영역과 이을 수 있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점(dot)을 발견해가는 것입니다. 요즘 제 작업의 콘셉트는 ‘How to teach Korean painting’입니다. 정말 제가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기도 하고 언어와 실습에서 오는 영감을 이미지와 퍼포먼스로 표현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 작업은 과거의 전통이 현재에 재현되는 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내 안에 깊게 새겨진 철학과 특이성의 문화가 타인에게 교육의 형식으로 전달되는 과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한국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회화의 언어는 이곳에서 하나의 중요한 메타포가 되기도 해요. 전통적인 한국화는 본격적으로 16세기의 학자들로부터 시작된 그림이므로 철학을 이해하고 그 정신을 그림에 담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한국에서조차 이제 까마득한 과거로 박제되어 그것을 재현하는 것은 올드 패션의 전유물이 되었죠. 전통적인 방식의 한국화는 한국에서 컨템퍼러리 예술로 읽히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화를 떠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새겨진 언어와 의미와 전통과 방식은 쉽게 지워질 수 없었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 문화를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전달 방식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내 작업에 적용하고 싶어 졌어요. 사라지고 있는 특이성의 문화.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전통. 그 전통의 오리지널리티를 전달하는 이국적인 해석자로서의 전달자가 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언어를 통역하고 제대로 전달하는 일. 그 안에서 치유되고 연결되는 일. 나아가 문화의 특이성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스스로와 연결되는 일. 사회와 시스템의 부산물로서의 개인이 아닌 온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것이 한국화 교육의 형식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힐링 가치가 될 것이라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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