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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osaur May 23. 2024

여자목수, 조금 다르게 살기로 했어

김민서

신목기 시대를 열다 - 밀플라토, 김규

겸손과 자신감 사이에서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그가 가진 특유의 느긋함이었다.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지금보다는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직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크게 책임질 일도 없이 무난하게 살아가는 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기 싫은 게 아니라 그냥 못하는 거 같다.


생각해 보면 결국은 내가 바라는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오지 않았나 싶다. 바랐던 걸 이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구조의 미학 - 로즈앤오방, 김수희

아주 어렸을 적부터 품어온 건축의 꿈을 이룬 듯했지만, 정작 본인은 어딘가 공허했다. 아마도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으리라.


김수희는 일이 손에 익어가던 직장 7년차에 사표를 던졌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목수들이 그러하듯 이 김수희 역시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여기까지 이르렀다. 어쨌든 잘 될 거란 긍정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건축과 가구, 이 둘은 모두 구상과 설계의 과정을 통해 사람을 담아내는 공간을 이야기한다. 구조와 인체 스케일을 이해하고 구현 방법을 풀어내는 방식이 흡사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건축을 통해 습득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유럽의 유명한 가구디자이너들이 대부분 건축가였던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만약 지금 다시 전공을 고르라고 해도 가구가 아닌 건축을 택할 거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종종 내가 설계한 집에 내가 만든 의자가 놓여있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꽤 근사하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


'찍어낸다'는 공장형 가구와 수제가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점은 '대중성'에서 찾을 수 있다. 공장형 가구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잘 팔릴'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대중성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수제가구는 소수에 집중하는 고급화 전략이 가능하다. 기성복을 뜻하는 '프레타포르테(Pret-A-Porter)'와 맞춤복을 뜻하는 '오트쿠튀르(Haute Couture)'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트쿠튀르'방식은 대량 생산이 아니기 때문에 제작자나 주문자의 성향을 한껏 담아낼 수 있고 나아가 작품성과 예술성을 담아낼 수 있다. 내가 공방을 운영하며 가장 추구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공장형 가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고 수제가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목수라는 직업의 가장 큰 즐거움은 뭐라고 생각하나.

표면적으로는 일하는 시간이 자유롭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얻게 되는 창작의 기쁨 같은 것들이 있는데, 어찌 보면 이러한 것들은 소소한 부분이다. 이 일을 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즐거움은 내 시간들이 오롯이 나를 위해 축적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가 나의 결정에 달려있고 시간의 방향키가 내 손에 있으니 신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생 때쯤인가 막내 작은 아버지께 "내일 제가 무엇이 되어있을지 인생은 모르는 거잖아요!"라고 말하자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오늘의 나로 내일의 나를 가늠해 볼 수는 있지."라고 하셨다. 이 말을 여전히 새기고 있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오늘 노력해야 한다. 오늘 하는 일들이 나의 일생을 위해 쌓여 간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게으른 편임에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반려동물을 위한 가구 - 핸드크라프트, 신민정

대량으로 생산해 볼 생각은 안 했나.

처음에는 생각했다. 디자인만 하고 제작은 공장에 맡기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수제가구를 만들다 보면 보통 자기 마음속에 제작 퀄리티나 디자인에 대한 자기 기준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량생산 방식은 아무래도 그 기준에 미흡할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가 될 거 같았다.

내 눈에 예쁘지 않은 것을 파는 것도 싫었다. 취향이 확고하면 장사를 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싶은 가구'가 가장 중요한 모토이다. 나를 설득시킬 수 없다면 다른 이를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자인을 고치지 않는다. 처음의 느낌을 그대로 디자인하고 그걸 도면에 옮기면서 구조를 조금 수정하는 정도다.


가구를 조각하다 - 이리히아트퍼니처 스튜디오, 함혜주

어릴 적부터 함혜주는 생각이 많았다. 원하는 미술대학에 들어가도 학점을 위한 수업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그는 하이데거나 칸트 같은 철학책을 읽으며 삶의 본질이나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내면에 자리 잡은 샴쌍둥이 같은 자아가 두 개로 갈라졌다가 충돌하는 듯했다.


6개월쯤 지났을 때였나,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다. 지하철이 끊겨 긴 행렬을 따라 무작정 걸었는데 오후 3시경에 나와 자정을 넘겨 집에 귀가했던 그 길이 지금도 생각난다. '생()이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이렇게 말을 거는구나' 싶은 생경한 감정이 들었다. 딛고 서 있는 땅이 흔들리니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몸이지만, 생이 던지는 말들을 놓치지 않고 듣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복학했다. 자전거 핸들 방향을 어디로 틀고 페달을 얼마나 힘차게 밟느냐에 따라 주변 풍경이 바뀌는 것처럼 내 뜻과 행동에 따라 삶은 몇 번이고 얼굴이 바뀌더라.


작품 모티프는 주로 어디서 찾나.

현실. 주로 인간과 세상에 관한 문제의식, 질문에서 온다.

조명 오브제인 '의식의 램프'는 유령처럼 형상도 없이 내면을 떠돌며 우리를 지배하는 감정의 실체에 대해, 수십 개의 원형 거울로 채워진 '인드라망'은 세상, 나, 타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에 쓴 글을 토대로 만들었다.

작품은 개인적 해석이지만 모티브가 되는 것들은 누구나 느끼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얘기들이다.


함혜주가 생각하는 '좋은 가구'란.

바닥에 엎드려 공부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책상이고, 십 리를 걸어온 노인에게 쉼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벤치다. 마감을 어떻게 했든, 어떤 방식으로 조립했든, 필요에 맞는 가구가 좋은 가구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쓰임을 다하면 흔적도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가구.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겠지만, 내가 한 달에 천만 원을 벌던 팔십만 원을 벌던 그와 무관하게 내 생활의 질이 달라지지 않길 바란다. 자본과 물질에 의지하면 삶이 풍요로울 수 있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자급자족할 힘을 키운다면 자본에 구속당하지 않고 삶이 풍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닐 때와 비교하면 마음가짐과 행동이 바뀌면서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아졌다. 지금은 한 주에 한 번 도자를 배우고 있는데 마흔쯤에는 텃밭을 일궈 밭농사도 지을 거다. 경험과 감각으로 삶을 채워가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다.


'신념은 원칙을 알려주고, 원칙은 행동을 자극하고 인도하며, 행동은 신념을 표현한다.' 미국의 개념 예술가 아드리안 파이퍼의 말로 내가 자주 되새기는 말이다. 어떤 듯을 세웠다면 의식을 또렷하게 하고 고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그 여정은 방황과 질책, 고독과 망설임이 뒤섞여 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잠언을 하나씩 가졌으면 좋겠다.

또 조언이라기보다는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가까운데, 기술과 자본만 있다면 물리적으로 공방을 꾸리는 건 쉽다. 그러나 공방의 정체성을 만들고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연마에 공을 들이는 만큼, 그 기술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지향점을 찾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으면 한다. 인간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해서, 생활양식과 환경에 관해 공부하며 깊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방백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일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모색은 끊이질 않는다. 정녕 회사에 소속되어 살 것인가부터 나 자신에 대한 브랜딩까지.

집에 애물단지처럼 멈춰 있는 수제가구 사업이 있는데, 내가 한 번 살려볼까 하는 마음과 육체적으로 괜찮을까 하는 찰나에 우연히 <여자목수>란 책을 보게 됐다. 온갖 생각이 떠도는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던 내게 간접 경험을 심어준 이 책은, 커피 한 잔의 쉼과 같았다.


9인의 여자목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목수는 '함혜주'. 세상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지만 머물러만 있는 나와 달리, 그녀는 철학자와 사상가의 책을 읽는다. 그 관념을 차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녀의 표현력을 닮고 싶고, 그녀의 글이 궁금할 만큼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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