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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Sep 10. 2021

덴마크 가족 재결합 비자에 가족은 없다.

가족 재결합 비자와 게토지역


가족 재결합 비자 신청이 가능한 다음 필수 조건은 적합한 거주지와 거주 형태였다.

일단 거주지 영역에서 게토지역에 사는 사람은 이 비자를 신청할 수 없었다. 게토 지역이라...

게토란 명칭은 덴마크에서 교육률, 취업률이 낫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대개 외국인 이민자들 (특히 무슬림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역을 의미한다. 게토 지역의 반이 넘는 인구가 제 일 세대 또는 제 이 세대 이민자들이다. 게토라는 명칭은 덴마크 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대상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혐오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민자 밀집지역, 게토


내가 살고 있는 노레브로 Nørrebro에 게토에 포함되는 구역이 있다. 정치인들과 특정 언론이 이 지역을 부정적으로 만들어온 이미지로 인해 나의 시어머니의 경우는 우리가 노레브로에 산다는 것에 대해 위험하게 여기고 이사를 권유할 정도였다. 언론과 정부의 정책이 게토를 어떻게 개념화하는지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게토 지역에서 범죄나 사건에 관해서는 이민자의 문제와 연결 지어 크게 보도되면서, 그와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경우에는 단순 범죄로 여겨지고 중요하게 보도되지 않는다. 이민자와 이민자의 게토 지역은 덴마크 사회로부터 분리되어있으며, 그들이 그곳에서 나와 덴마크인들과 어우러져 사회의 통합을 요구하는 내러티브가 팽배하다. 하지만 실상은 이민자와 덴마크인의 통합을 위한 사회적 활동에서 덴마크인의 참여가 부재하기도 하고, 서로의 다름을 계속해서 협상하여 조율해가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섞임과 통합을 요구한다는 우려가 있다. (Grünenberg, K & Freiesleben, M 2016, 'Right Kinds of Mixing? Promoting Cohesion in a Copenhagen Neighbourhood', Nordic Journal of Migration Research, bind 6, nr. 1(Special Issue), s. 49-57. https://doi.org/10.1515/njmr-2016-0001)



노레브로, 다문화 vs. 게토?


내가 실제로 살면서 느낀 노레브로는 다양한 인종과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아마도 덴마크에서 가장 다문화적이고 다름에 포용적인 인식을 지닌 지역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또 덴마크 내에서 가장 맛있는 케밥, 두룸 팔라펠, 그리고 에티오피아 음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노레브로게드 Nørrebrogade라 불리는 중심 도로를 따라서는 터키, 레바논 등 중동 곳곳의 개별적인 풍미를 담은 다양한 식당들이 줄지어 있고, 서부, 중앙아시아 출신들의 식료품 가게들을 쉬이 찾을 수 있다. 어쩌다 한 사람과의 인연으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의 서북쪽 끝으로 뚝 떨어진 나는, 노레브로에서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을 만날 때, 백석의 시 <고향>에서 아버지의 고향 친구를 타지에서 만나는 듯한 반가움과 정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훨씬 호감을 가지고 있거나,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우리 집과 가까운 피자리아에서는 아저씨들이 드라마 ‘허준’을 보고 계시기도 했다. ㅎㅎㅎ 또 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의 식당과 식료품 가게가 줄지어 있는 그리펜스게드Griffensgade와 그 바로 옆의 folkhuset의 존재는 노레브로의 민중운동, 평등과 포용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지인들이 덴마크에서 사는 것이 어때?라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덴마크는 싫지만, 노레브로는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이 지역 사람들의 개방성, 포용성, 여유, 다양성, 다문화, 타인종에 대한 존중, 공동체성, 끈끈한 지역 네트워크를 애정하고 존경한다. (선거 철이 되면 이 지역에 붙는 정당의 포스터는 다른 지역과 매우 다르다.)


허나 이 비자 신청을 하는 당시 노레브로에 산다는 것이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염려하며 그 게토 지역 리스트에 우리가 포함되는지 살펴보았다. 우리 아파트는 그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걸어서 5분 거리의 룬 토프트 게드 Lundtoftegade가 게토지역에 포함되어있었다. 나는 덴마크에서 아이를 낳은 직후에 다른 엄마들과 만나고 육아의 생경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친정의 도움 없이 외국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는지. 룬토프트게드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시의 사회복지사가 운영하는 어머니 카페 Mødres Cafe라는 모임이 있었고, 그곳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곳 아파트 단지에 많은 이민자들, 특히 아프리카와 터키 출신의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토지역의 아기는 1세 전 어린이집에 보내져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아들이 1살이 될 무렵 이 게토지역과 관련한 악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게토지역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아기가 1살이 되기 전에 꼭 덴마크 어린이집 시설에 보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게 무슨 그린란드 사람들에게 펼쳤던 덴마크화 식민 정책의 잔재인가..)

나는 우리 아이가 10~12개월,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까, 다우 플라야 혹은 베이비 시터를 구할까 고민하다, 졸업논문을 마쳐야 한다는 결심으로 14개월에 처음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죄책감에 눈물 흘렸었는데... 한 폴라드 출신 엄마가 자신이 게토지역에 살아서 자신의 아이가 1살이 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한다는 법이 자신에게 적용됨을 알고 분노에 찬 글을 페이스북 그룹에 공유했던 것을 보았다. 물론 일하고 싶은 엄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덴마크의 어린이집 시스템은 핵가족 사회에 필수적이고 핵가족과 어머니의 삶을 윤택하게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덴마크 사회에 통합되기 위해 어머니의 의사에 상관없이 아기를 보내야 한다는 정책 자체는 폭력적이다. 그것이 폭력적이기에 통합이라고 불릴 수 없는 통합정책. 국가의 정책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게토지역에 이민자 자녀들이 몰리는 것을 우려하여 특별히 이민자 가족들은 지역에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곳의 학교를 선택하여 할 수 있게 혜택을 준 경우가 긍정적인 정책 중 하나로 보인다. (원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인접 학교에 자동으로 배정된다. ) 타자에게 강요하고 배제하는 정책이 아닌 포용하고 혜택을 주는 정책을 할 수 있음을 알면서 하지 않을 때 더 인종차별주의를 느낀다.



거주 형태


두 번째 비자 신청의 가능 조건은 거주 형태였다. 한 개인당 20 스퀘어미터 이상의 공간을 차지하거나, 혹은 투룸 이상 이어야 했다. 우리는 어른 두 명이니까 40 스퀘어미터만 넘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신생아인 아이도 20 스퀘어미터를 차지해야 했다. 우리는 급한 마음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에게 에스오에스를 쳤다. 우리보다 더 큰 사이즈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 중에서 혹시 이사 갈 계획이 있는지, 우리가 지금 비자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도 함께 설명했다. 이웃 가족들은 이 기준이 자신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냐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아파트 마당에서 마주친 주민들이 걱정의 말을 보냈다. 특히 한 주민의 비유가 기억에 남는다. “한 사람당 20 스퀘어미터 공간이라니. 덴마크 정부가 운영하는 난민 보호소에 난민 한 명당 20 스퀘어미터를 자기들은 제공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부터 작년까지, 한창 그 난민과 망명자 보호 시설에 대한 비판이 줄곧 있었다.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좁고, 밀집된 거주 공간. 또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이 사회 속 사람들과 만나고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었다. 이 문제점 때문에 난민과 망명자 신청자들이 시내로 방문하도록 교통수단을 제공하고, 사회문화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던 트램폴린 하우스 Trampoline House가 있었는데, 이 시설에 대한 지원금이 대폭 삭감되면서 2020년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21년, '시리아는 더 이상 위험지역이 아니다'라며, 시리아 난민으로 덴마크에 체류자격을 얻어서 이 사회에 뿌리내려 적응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시리아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는 덴마크 정부에 온 세계가 경악하고 있는 중이다.



거주상태 조건이라는 산을 어찌어찌 넘어 7월부터 약 2-3달을 준비한 끝에, 10월에 비자 신청을 하였다. 이후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약 6개월 동안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이민국에 가서 여권에 도장을 받아야 했다. 이민국에 허락을 받고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야 하는 절차를 가벼이  번거로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이동의 자유에 제재를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가족의 결합보다는 복지사회의 지속성이 우선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물었다.

“이제 결혼했으니 거기에서 영주권이 나오는 거지?”

나의 부모님은 결혼을 하면 당연히 영주권이 나오는 옛 미국의 이민 시스템을 생각하면서 덴마크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 아니야. 가족 비자 신청이 되고, 3년 뒤에 재연장 신청해야 하고 또 5년 뒤에 재연장 신청을 계속해야 돼.”

“ 결혼을 했고 덴마크인인 아이까지 있는데도 그렇단 말이야?”

“ 응. 여기서 풀타임으로 3-4년 이상 일했거나 세금을 아주 많이 낸 경우가 아니면 영구적인 비자 permernant visa를 신청할 수 없어.”


여기서 10년 넘게 산 일본 출신의, 우리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여자분을 만났적이 있었다.  그분은 발 세러피 센터에서 오래 일해왔는데 풀타임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퍼머넌트 비자를 못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조언했다. “퍼머넌트 비자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사세요.”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거기는 돈이 없으면 아예 오지 말라는 나라네.”

나는 답했다. “맞아.”


자본주의 사회의 충실한 재원이 아닌, 돈이 없는 덴마크인은 이 나라에 자신의 비유럽권 동반자를 데리고 오지 마라를 여러 조건과 조항으로 풀어써놓은 것이 덴마크의 가족 재결합 비자이다.

속았다. 휘게 hygge의 덴마크에…


스웨덴 친구가 자신의 지난 약 20년의 노매드적 예술 활동과 가장 긴 계약이 4개월이었던 예술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재미있었는지에 대해 쓴 글을 올렸다. 그 글에 즐겁게 좋아요를 누를 수 없었다. 그 글로 인해 덴마크에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나의 상황의 어려움이 극적으로 드러났다. 내가 덴마크인이었다면, 유럽인이었다면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도 저 친구처럼, 또 내가 한국에서 해왔던 것처럼, 노매드 예술가로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태생이 Self-Employeed으로 24시간 신체적 정신적으로 작업하는 예술가 타입의 사람들에게는 덴마크 가족 재결합 비자는 u + hyggelig 소름 끼치는 것이다.


최근 노딕 국가의 가족 재결합 비자의 동향과 성격 분석한 연구들을 간간이 들춰보고 있다. (Denmark: Cost and criteria for family reunification can amount to discrimination

21/01/2021, European Website on Integration, https://ec.europa.eu/migrant-integration/index.cfm?action=furl.go&go=%2Fnews%2Fdenmark-cost-and-criteria-for-family-reunification-can-amount-to-discrimination&fbclid=IwAR3FXvdVDkhU1EgNaxIomyX0z0OUSd5Jr5StlxVf-ye2OJH6vhLOKv7p8AE)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이 중 가장 어렵고 차별적인 가족 재결합 비자 정책은 단연 으뜸 덴마크.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상대적으로 덜 엄격하나 역시 덴마크처럼 점점 ‘가족의 결합’ 보다는 ‘이 복지 사회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름하는 시험의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Bech, E.C., Borevi, K. & Mouritsen, P. A ‘civic turn’ in Scandinavian family migration policies? Comparing Denmark, Norway and Sweden. CMS 5, 7 (2017). https://doi.org/10.1186/s40878-016-0046-7)  즉 가족 재결합 비자에 인간주의적 가치, 가족의 결합은 부재한다. 가족의 안정과 행복이라는 가치는 복지 사회의 경제성보다 우선되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이민이 한 사회의 경제 성장을 떨어뜨리게 한다고 통계 내어진 증명된 연구도 없고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몇십 년간 낳아왔는데 말이다. 이민자들이 복지 사회의 지속성을 망가뜨린다는 이 환상, 신화, 내러티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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