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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Dec 24. 2022

닐슨 보어의 비밀

닐슨 보어의 원자력 딜레마, 덴마크는 왜 원자력 발전소가 없을까?


나는 덴마크 정부 이민자 정책에 떠밀려 가족비자를 얻기 위한 시험통과용으로 덴마크어를 꾸역꾸역 배우면서 놓쳤던 것이 있었다. 

바로 새로운 언어를 배움으로써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기쁨! 

이 시리즈 덕분에 처음 느껴본다.^^  




덴마크 국영 텔레비전 DR에서 만든 이 시리즈는, 덴마크의 세계적인 과학자 닐슨 보어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의 행적을 추적하게 된 계기가 놀라운데, 바로 닐슨 보어라는 훌륭한 과학자를 둔 덴마크에서 왜 원자력 에너지 발전소가 없을까?라는 질문때문이다. 

두 명의 덴마크 역사학자가 닐슨보어를 둘러싼 아카이브(미국, 영국, 러시아와 소식을 주고 받았던 자료들이 남겨져 있는 자료 저장고)를 뒤적거리고, 세계 2차 대전 시기 관련한 연구자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지난 세기 동안, 그리고 최근까지도, 원자력 에너지에 굉장히 반대하고 있었던 나라가 독일과 덴마크이다.
 덴마크 국영 텔레비전에서 '유럽연합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녹색에너지라고 인정했고 현재 닥친 기후 위기를 넘기기 위해 원자력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라고 이 시리즈를 통해 말하면서 시작한다는 것이 센세이션했다.* 덴마크 사람들은 정말 이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있을까? 원자력 자체가 타부가 되었었던 만큼, 이 자체가 큰 변화였다. 

(*IPCC와 유럽연합 모두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하는 이산화탄소 감축 모델을 소개한 바 있다.) 


두 역사학자는 질문한다. 


"왜 세계 최고의 원자이론 과학자 닐스 보어의 나라인 덴마크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없을까"

따라서 두 역사학자는 세계대전 전후의 닐슨 보어의 전황을 파헤친다.


닐슨 보어라고 하면 아마도 과학 교양 서적의 한 부분에서 원자의 성질이 '입자냐, 파장이냐' 혹은 그 두 가지 모든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과학자로 기억이 남아있다. 그리고 최근에 신유물론 수업을 들으면서 카렌 버라드Karen Barad의 인트라액션Intra action이라는 개념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 개념이 바로 닐슨 보어를 재독해하면서 정립되었다고 한다.  원자적인 성격과 파장적인 성격이 동시에 있고, 그 두 성격들 사이에서 인트라액션이 일어나고 있다는 성질. 


(뜨금없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서 세계 2차 대전 직후의 닐슨 보어의 행적을 보여주는 비디오 클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닐슨 보어와 카렌 버라드  두 사람의 얼굴이며 패션이 너무나 닮았다. 카렌이 점점 닐슨을 닮아갔나보다.) 


닐슨 보어의 파장 동시에 입자 발견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회자되었었는데, 왜 최근 신유물론에서 카렌버라드의 닐슨 보어 재독해가 새롭게 다가오는걸까. 상대성 이론이나 닐슨 보어의 이론을 통해 철학에서 혹은 인간의 생각의 역사에서(덴마크의 몇 대학에서는 철학과라고 부르지 않고, history of idea 생각의 역사라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이성의 앎의 한계에 대한, 근대적 명징성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점점 관계성에 집중하는 철학적 전향이 일어났다. 그것은 예술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관계미학과 수행성의 개념들로. 그런데 그 관계성을 우리가 살고 있는 구석구석, 타자화했던 비인간, 물질, 퀴어적 존재들과 엮임까지 확장하여 생각하고 함께 사는 연습이 그동안 더 필요했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프로그램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면, 닐슨보어는 미국의 핵무기 실험 맨하탄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수많은 과학자들 중 한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은 일본에 두 번의 원자력 폭탄을 터트렸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덴마크로 귀국했을 때,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하여 강의를 하거나 주변 과학자들과의 교류를 하기도 하고, 덴마크에 원자력 에너지 발전소를 만드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왜 더 진행이 되지 않았을까?


두 역사학자는 러시아, 미국, 영국 정부가 닐슨 보어에게 접근했던 기록들을 들춘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러시아에서 닐슨 보어부터 원자력에 대한 지식을 가져가기 위해 협박을 했나 등등의 의심이 일어난다. 미국과 러시아로 나눠진 냉전 체제 당시, 닐슨보어는 러시아의 과학자가 교류의 편지를 보냈을 때, 호의적으로 대답을 하는데, 그가 과학적 지식에 대해 출신을 불문하고 얼마나 나누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는지 보여준다.


헌데 예상과 달리 닐슨보어의 발목을 잡은 것은 미국과 영국 정부였다. 그들은 닐슨 보어가 원자력 무기에 대한 정보를 유출하는 것이 두려웠고, 그가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해서 어떠한 활동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미국와 영국의 철저한 감시와 조종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세계대전과 냉전의 역사 속에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발전시키고 싶었지만, 그 당시의 최선의 선을 위해 핵폭탄을 개발했던 이 세계적인 과학자의 삶과 이론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의 동료였던 아인슈타인은 맨하탄 프로젝트에서 제외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그를 신뢰하지 못했다고 한다.)


원자에 관한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자신의 나라에서 원자력 에너지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보다,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아이러니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남성 가부장 정복전쟁의 절정판인 미국의 맨하탄프로젝트의 원자력 폭탄의 중심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닐슨보어와 그의 이론이, (전자의 시스템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탈 남성중심 가부장 식민적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맹렬히 비판하는 신유물론이나 퀴어페미니즘의 주요 개념들이 나올 수 있는 씨앗을 남겼다는 것이다.  


실은 이와 비슷한 다른 예가 또 있다.

도나 해라웨이는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이 군사 자본가들과 그 시대를 이어나가는 나사와 화석 연료 기업의 프로젝트로 인해 발견되고 발전되어왔다고 비판했다. 나사와 화석연료 기업이 쏟아올린 로켓으로 우주에 가서 바라본 하나의 전체인 지구는 이러한 남성적 군사 자본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 총체적 합일에 대한 환성, 전체주의적 목적론의 신비주의를 담고 있는 '가이아'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을 지적한다. 

이런 비판을 접했을 때, 군사주의와 협업했던 닐슨 보어를 재독해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도나 해러웨이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담대한 개념들에 경도된 팬이지만,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개념(지구가 스스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도나해러웨이가 사랑하는 바람계곡의 나오시카의 주요 메타포가 되었던 것은 또 아닌가?)에 대한 그녀의 비판 혹은 지적은 

물론 이는 서로에게 계속 반대해나가야지만 답을 촘촘히 할 수 있는 서양철학 혹은 아카데미아의 한계일까? 혹은 자본주의의 사생아와 같이 기존의 내러티브를 어긋낼 수 있는 사이보그지만 이 화성을 식민지화하는 사이보그처럼 식민적 가부장적 내러티브에 포획될 수 있는 우리의 상황을 직시하게 하는 것일까?


비판하였지만 이를 통해서 그녀는 지구가 하나의 전체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존재들이 함께 제작하는 심포이에시스로 나아간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닐슨 보어의 행적을 다시 밟아가면서, 


과학 자체도 닐슨 보어가 발견한 원자의 다층적인 모습처럼 굉장히 다층적이고 상반되는 성격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로 하여금 사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과학, 
사물과 생명을 착취하는 자본과 결합되는 과학, 
인간의 앎을 한단계 진일보한다는 인간의 순수한 욕망이 부여된 과학 등등


이들은 서로에게 인트라액션하며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드러낸다.


그렇게 때문에 이 다 망가진 시스템의 폐허 위에서, 과학 기술은 테크노픽스도, 전통적 환경주의도 아닌, 유전자 조작한 초인간 사이보그도 소수자의 생활을 돌보는 몸의 연장으로서의 사이보그만도 아닌, 그  사이에서 계속해서 인트라액션해간다.   




* 이 글을 통해, 저와 토르씨의 '방사능이 말한다' 프로젝트: (원자력 에너지와 다른 기타 에너지원을 비교하고 기후 위기의 과학 기술적 해결책을 논의하는 대화 및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들었던 고민을 조금 더 사적이고 가볍게 다룰 수 있었다. 이 글에서야 밝히지만, 원자력 에너지에 관한 포스트휴머니즘의 이론가들과 과학철학자들의 의견이 굉장히 궁금했는데, 브루노라투르, 도나해러웨이, 카렌버라드 모두 핵무기가 아닌, 원자력에너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개진한 것을 찾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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