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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Feb 12. 2024

우리는 땅을 대신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물다양성 운동 퍼포먼스의 '공동'과 '우리'


‘우리’는 땅을 대신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강을 대신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 생물다양성 운동 퍼포먼스의 ‘공동’과 ‘우리’ 


*부산문화재단의 '공감그리고' 매거진 2023년 하반기에 싣은 글입니다. 

링크: 부산문화재단 전자아카이브







2021년 2월 코펜하겐 시의회는 코펜하겐 시와 건설회사 뷰오하운 ByogHavn이 시내 야생지대인 아마 펠레드 Amager Fælled를 주택지로 개발하는 사안에 동의했다. 코펜하겐 시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야생지대이자 다양한 동식물과 보호종의 서식처이기에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밝혔다. 아마 펠레드의 ‘펠레드 Fælled'는 덴마크어로 ‘공동’의 지대를 뜻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던 ‘공동'의 땅을 개인의 주택지로 ‘사유화’하는 데 시민들은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그 ‘공동'이란 그 땅에 살고 있는 동식물, 유무기물들과 인간의 ‘공동' 지대를 의미하기도 했다. 


덴마크 국민 70%가 반대하는 이 건설을 코펜하겐 시와 건설 회사가 강행하자 그 ‘공동’을 지키기 위해 여러 시민 단체 및 환경운동가들이 힘을 모았다. 시민 단체인 ‘아마 펠레드의 친구들 Amager Fælled’s Venner’, ‘코펜하겐 생물종의 대사 Arternes Ambassade København’, 환경보호단체들,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기후운동 퍼포먼스 콜렉티브인 ‘비커밍스피시스 Becoming Species’가 반대 시위 및 퍼포먼스를 벌였다. 아마 펠레드에 사는 멸종위기의 물도마뱀으로 변장한 운동가들이 환경부 앞을 뒤덮었고, 시청 안에 아마 펠레드의 야생 토끼와 난초, 버섯, 도마뱀, 이끼, 메뚜기 등의 가면을 쓴 이들이 난입했다. 아마 펠레드의 ‘공동'을 지키기 위한 이 일련의 퍼포먼스  중에서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아마 펠레드 생물들의 행진’이다. 


우리는 건설로 인해 살 곳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마 펠레드의 동식물이 시청 앞까지 행진하는 것을 퍼포먼스로 기획했다. 작가 란디 Randy Kjær에게 가면을 만드는 법을 배워서 ‘생물 가면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이 워크숍은 어른들과 어린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참여한 시민들은 아마 펠레드에 사는 생물 중에 자신에게 친밀하게 여겨지는 생물을 하나 골라 그의 가면을 만들었다. 우리는 가면을 만들면서 서로 ‘왜 그 생물을 선택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생물의 생태적 습성 및 처한 상황을 살펴보며 그 생물과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았다. 


2021년 5월 16일 아마 펠레드에 비커밍스피시스, 아마 펠레드의 친구들, 생물종의 대사 그룹 및 환경운동가들이 모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생물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시청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도중, 길 곳곳에서 생물의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시민들이 합류를 했다. 가면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했던 시민뿐만 아니라 이 행진이 있다는 것을 들었던 각종 문화 단체들이 자기네 단체복을 입고 대열에 합류했다. 집에서 동물 인형을 가지고 나온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도 우리의 걸음에 합류했다. 우리의 노래는 작은 합창에서, 행렬을 따라 이어지는 돌림노래로, 그리고 점점 커다란 메아리로 변해갔다. 시청 앞에 도착했을 때, 시청 광장이 생물들의 얼굴로 가득 매워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시민들의 참여에 많은 이들이 뭉클함을 느꼈다. 나는 이 퍼포먼스에서 어떤 근사한 몸짓을 하거나 세밀한 아이디어로 퍼포먼스에 기여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큰 만족감을 느꼈다. 생물가면을 쓴 시민 생물들의 행진이 만들어낸 풍족함의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생물의 가면을 쓰고 그 생물처럼 움직이는 행위는 오락적 공연이나 다양한 문화권의 민속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물로의 변신과 재현 행위는 더 새로울 것도 없고, 아이들의 놀이처럼 느끼질 수 있다. 특히 현대공연예술에서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행위는 재현할 ‘대상'의 특성이 고정되어 있고 그것을 완벽히 재현한다는 본질주의적 태도 때문에 허물어야 할 미학적 관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집단적 퍼레이드에서 생물종의 가면 쓰기란 그 생물의 어떤 모습을 '진짜’로 고정해 놓고 완벽히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자연스레 있는 어떤 생물에 이끌리는 마음, 그것을 귀여워하거나 멋있게 보고, 그의 특성을 따라 하고 싶은 욕망에서부터 시작했다. 또 이 욕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정치적인 공공장소에서 ‘생물 가면 쓰기’를 함께 수행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시민들이 일시적으로 모인 집단의 퍼포먼스로 확장되면서, 작가와 관객의 경계가 무너진 무리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연결과 만남에 풍족함을 느끼는 집단적 미학이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이러한 인간 너머 (혹은 인간 속의) 생물을 위한 운동 퍼포먼스를 보고 브루노 라투르의 ‘사물들의 의회'같은 정치적 구상을 기후 운동가나 예술가들이 낭만적인 존재론적 형태로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한데 정치 체계를 재구축하는 시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 있는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하며 행위하는 것은 과연 서로 관계가 없는 일일까? 퍼포먼스를 함께 준비했던 ‘아마 펠레드의 친구’와 ‘코펜하겐 생물종의 대사’는 인간이면서 자칭 생물의 친구 혹은 대사라고 말하는 자연의 의인화가 이름 속에 담겨있다. ‘생물종의 대사’는 자신과 가깝게 여겨지는 생물을 친족처럼 느끼고 공부하고 돌봐온 이들이며, 이 생물들의 생태적 표현이 존속할 수 있도록 대변한다. 그들은 현재 정치권이 없지만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를 실험하고 있는 ‘시민들의 의회’에 생물종의 대사들이 그 일원이 되어 생물 중심적 정치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어른들이 동식물의 가면을 쓰고, 아이들이 동물 인형을 들고 시청으로 행진한 이 우스꽝스러운 쇼는 실상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었는데 건설회사의 배상금을 온전히 시민들의 기부로 단 며칠 만에 모금한 쾌거를 세웠고, 현재 건설은 중단된 상태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정말 땅을 대신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강을 대신해 그들의 권리를 말할 수 있을까? 이 지구의 거대한 행성적 시간 속에서 인간은 찰나의 미물이고, 어쩌면 생물의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인간이 (이 생물과 함께) 지구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외침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외침에는 생물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질 것이라는 우리의 엮인 관계성도 담겨있다. 코펜하겐 정치학과의 생기적 정치학 Vital Politic 연구그룹과 예술가 및 기후 운동가들이 함께 인간과 생물을 포함한 선언과 헌법 만들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법은 그것이 쓰이고 발표된 후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더 포용적인 ‘우리'를 상상하며 수리해서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 영감을 받아 ‘우리는 ~한 사회를 원한다’라고 쓰는데 그 ‘우리’에 생물이 들어가는 것인지, 생물을 대신해서 말하는 ‘인간’만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다 나는 문득 한국말에서는 모든 것에 곧잘 ‘우리’를 붙였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가족은~’ 하고 말하면 나만의 가족이 아닌 더 많은 이들과 가족이 된 것 같고, 듣는 상대방도 포함시켜 가족이라고 말하는 느낌이 났다.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공동’의 것이라는 게 우리말을 쓰는 세계관 속에 스며있었다. 따라서 인간과 생물의 연결성을 감각하는 것은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우리 강, 우리 산, 우리 들, 우리 부엉이, 우리 곰을 소리내어 내뱉어 본다. 안과 밖이 투과되는 세포막처럼 옅은 경계를 포함한 ‘우리’를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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