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ker: Folie a Deux, 2024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생방송에서 머레이를 살해하며 고담시를 혼돈으로 몰고 간 조커(호아킨 피닉스). 아캄수용소에 수감된 2년 사이에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제작될 만큼 유명인이 됐다. 하지만 조커를 조롱하다 발생한 머레이 쇼의 참사가 없었던 일이라도 된 듯,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자극적인 기삿거리로 소모한다. 5명을 살해(실제는 6명)한 그에게 고담시의 검사 하비 덴트는 사형을 구형하겠다고 밝히고, 모든 재판은 생중계가 결정된다.
<조커: 폴리 아 되>(이후 <조커2>)에서 눈여겨 볼 토드 필립스 감독의 연출은 화면비의 전환이다. 화면은 수시로 좌우로 넓은 와이드 비전(1.9:1)과 정사각형에 가까운 1.4:1 비율을 넘나든다. 좁은 가로비의 화면이 나올 때는 주로 조커가 영화 속에 존재하는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이다. 폭발 직전의 감정에 사로잡힌 격정적인 모습들이 좁은 화각에 담겨 고담 주민에게 송출된다. 아캄수용소와 법원에만 갇혀있는 그가 언제 조커의 광기를 분출해 고담을 다시 한번 혼돈에 빠뜨릴지 기대하는 극장 안의 관객과 고담시의 TV를 시청하는 주민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일치된다.
조커의 광기에 집중하는 영화 속 중계 화면과 달리 <조커2>의 중심 사건인 재판의 쟁점은 관객의 기대를 벗어난다. 하비 덴트는 아서가 조커를 연기한다고 주장한다. 뚜렷한 자신의 의지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입장이다. 변호인 메리언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서가 방어기제로 만들어낸 인격이 조커라고 받아친다. 정신병 때문에 생긴 우발적 살인이라는 논리다. 재판과 별개로 아서 역시 혼란스럽다. 조커가 본인의 의지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격인지 확신할 수 없다.
전편에서 광기를 뿜어내던 조커로 각성한 것도 없었던 일마냥, 아서는 아캄수용소에서 생기를 잃고 비쩍 말라간다. 비인간적인 교도관의 대우와 열악한 아캄수용소의 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코미디언으로 사랑받고 싶던 가능성이 차단된 공간인 탓이 클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처음으로 그의 모든 면을 긍정하고 이해하며 자신처럼 아동학대 가정에서 자랐다는 리 퀸젤(레이디 가가)의 등장이 등장한다. 아서가 그녀에게 빠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 세상을 불태우고 싶다는 내면의 광기를 두 사람은 노래로 풀어나간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아직 행동으로 표출하기에 제약이 많은 두 사람의 감정은 환상적인 뮤지컬 장면으로 대체된다. 잔혹한 환상 속에서 느끼는 아서의 행복도 잠시, 리는 아서가 아니라 조커를 사랑한 것으로 밝혀진다. 두 사람이 독방에서 정사를 할 때도 리는 아서를 조커로 분장시킬 정도다. 조커를 만나기 위해 리는 의사 아버지를 둔 부유한 가정환경, 정신의학과 대학원을 다녔다는 배경을 속인 것이다. 실망한 그에게 리는 그의 자녀를 임신했다고 말하며 안심시킨다. 카펜터스의 Close to you를 부르며 재차 결속감을 다진 뒤 조커로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편, 재판장에서는 아서가 피하고 싶었던 과거들이 대중들에게 낱낱이 공개된다. 혼자 보려고 쓴 코미디 노트가 재판장에서 낭독되어 다시 한번 비웃음 당하고, 어머니 페니 플렉조차 어린 시절 학대 때문에 생긴 아서의 실조증을 ‘멍텅구리 웃음’이라고 비하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엔딩과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조커가 아닐 이유가 없도록 아서를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세계에서는 작품에 던지는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아서는 조커와 동일한 인격인가’에서 ‘왜 아서는 조커가 되기를 포기했나’로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사회실험이 유명하다. 시민과 죄수들을 각기 다른 배에 태우고 폭발 버튼을 누르도록 협박하는 장면이다. 고담시를 혼돈으로 빠트림과 동시에 정의를 수호하려는 배트맨을 낙담시키려던 계획이다. 그러나 조커의 계획은 배트맨의 별다른 활약 없이도 수포로 돌아간다. 정의가 바닥에 떨어진 고담시에서도 최후의 존엄만큼은 지키려는 시민과 죄수들의 선의 덕분이었다.
<조커2>에서는 주체가 바뀐다. 시민들이 선택해야 했던 질문이 조커에게로 넘어온다. 혼돈의 아이콘인 조커와 혼연일체가 되어 추종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고담을 불바다로 만들고 장렬하게 산화할 것인가. 이 경우에는 아서와 조커가 분리되지 않으니 법정최고형을 선고받을 수밖에 없다. 변호사 메리언의 조언을 따르면 사형만큼은 피할 수 있다. 조커는 병리적 증상이라며 존재를 부정하는 것. 다만 한 번도 존재감 없이 살았던 아서로 돌아가 외로운 삶을 유지해야 한다. 아서는 후자를 택한다.
전편에서 목숨을 살려 보냈던 두 명. 옆집 여자 듀몬드와 동료 게리의 증언이 조커로 각성하기 직전의 아서를 흔들었는지 모른다. 증언을 피해 오던 듀몬드는 집에 무단침입했던 아서를 신고하지 않아서 피해자가 생긴 것에 가책을 느낀다고 말했다. 게리는 조커로 분장하고 그를 조롱하며 겁박하는 아서에게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잖느냐’ 호소하며, 그 사건 이후 자신이 공포에 휩싸여 PTSD에 시달리고 있다며 울먹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증언이 없더라도 아서가 조커의 삶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커2>의 세계에서는 아서가 조커가 되기를 원한 게 아니라, 고담의 조커가 아서였을 뿐이다. 아서가 조커를 포기하더라도 그를 대신할 제2, 3의 조커는 언제든 등장할 조건이 마련됐다. “조커는 없다”는 아서의 최후진술에도 배심원은 그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한다. 그 순간 차량폭탄테러에 의해 법원이 박살 난다. 법원을 벗어나 아서가 보는 풍경은 수많은 조커가 길거리를 날뛰는 모습이다. 아서를 알아본 추종자는 그를 차에 태운다. 이 모든 게 조커가 꾸민 계략이 아님에도 이미 고담시는 불타고 있다.
아서는 조커로 각성하며 춤을 추던 계단 중턱에서 리를 만나지만, 조커를 부정한 아서에게 실망한 리는 그를 떠난다. 다시 아캄수용소에 갇힌 아서는 전과 같지 않다. 사형이 확정되어서일까, 리의 빈자리가 커서일까. 햇살이 드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 무기력하게 TV를 바라보는 그에게 이전과 같은 카리스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도관의 호출을 받아 면회실로 향하던 그를 다른 수감자가 따라와 흉기로 찌른다. 아서는 바닥에 누워 숨을 거두고, 희미하게 포커스 아웃된 수감자는 자신의 입을 찢으며 웃는다.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 1편의 각본을 받았을 때 첫 제목은 이었다고 한다. ‘The Origin’이 아니라 ‘An Origin’. 결국 제목은 로 결정된다. 특정한 한 빌런의 이야기를 벗어나겠다는 의도는 <조커2>에 와서 완벽하게 실현된다. 고담에서는 이제 누구든 지독한 하루를 보낸다면 조커가 될 수 있다. 한 박자 늦기는 했지만 결국 조커의 탄생으로 마무리된 시리즈에 토드 필립스 감독은 3편은 없다고 못 박았다. 조커와 할리퀸의 폭주를 기대해서일까. 관객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폴 리 아 되(Folie Deux)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정신병으로 ‘감응성 정신병’으로 불린다. 조커가 없다고 선언하자 법원을 박차고 나간 리와 조커의 추종자들처럼. 고담 시민과 관객을 한 자리에 위치시키던 감독의 연출이 실현된 것처럼. 영웅으로 죽거나 살아남아 악당이 되거나. 이건 조커(영화)가 아니라며 또 다른 조커(영화)를 기다리는 우리의 세계에서 영웅으로 죽기는 원래 어렵고, 악당으로 살아남기는 또 다르게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