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ormal Family, 202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보통의 가족>일까. 네덜란드의 작가 헤르만 호프의 원작 소설 제목은 『더 디너』. 앞서 이탈리아, 네덜란드, 미국에서 세 차례 제작된 영화의 제목도 <더 디너>다. 소설과 영화 모두 저녁 식사가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걸 제목을 통해 암시한다. 허진호 감독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까지 제목을 고심하다가 제작사가 가져온 수많은 후보 중에 ‘보통의 가족’을 골랐다고 한다. 제목은 보통의 가족이지만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아무리 봐도 보통인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몸값 비싼 변호사 재완(설경구)은 수임료만 높다면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치 않는다. 자상한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는 10년은 넘어 보이는 국산 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의료봉사를 다닌다. 재규의 아내이자 성공한 프리랜서 변호사인 연경(김희애)는 재규의 아내로 NGO 활동도 겸하고 있다. 떡집을 운영하던 재완의 두 번째 아내인 지수(수현)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젊음과 미모를 유지한다. 선망받는 직종에 몸담고 있지만 생활은 정반대인 두 사람은 형제지간이다.
금전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무엇하나 보통은 아닌 캐릭터들을 보통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건 이들이 처한 상황이다. 재완의 딸 혜윤(홍예지)과 재규의 아들(시호)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CCTV에는 늦은 밤에 노숙인을 무차별 폭행하는 두 아이의 모습이 담겼다. 폭행당한 노숙인은 혼수상태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아직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지만, 인상착의와 실루엣으로도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임을 확신할 수 있다.
대책 회의를 위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제 고등학생인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사건을 조용히 묻어두자는 재완, 연경과 달리 재규는 아이들을 자수시키자고 한다. 도덕이냐 핏줄이냐. 아주 평범한(?) 딜레마가 이들을 마침내 보통의 가족으로 만든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 딜레마가 정확하게 상황을 요약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도덕과 자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지 않다. 자녀를 위한 모성애/부성애가 희미한 캐릭터들처럼 보이는 탓이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도준엄마(김혜자)는 도준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기억이라는 마지막 증거까지 인멸한다. 자식을 위한 희생이라는 모성애가 어디까지 빗나갈 수 있는지 철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보통의 가족>은 조금 다르다. 마지막 순간에 등장인물들은 처음의 주장과 다른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도덕이나 혈연 탓에 인물의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감독이 전한 설경구의 캐릭터 해석처럼 극 중 인물들은 처음의 본성 그대로 행동할 뿐이다.
재완은 혜윤을 자수시키기로 마음을 바꾸는데, 이에 앞서 자녀가 범죄를 저지른 부모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곤경에 처하는지 생각해 봤냐고 재규에게 따진다. 유일하게 병원을 찾아 노숙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며 도덕적 변화의 모습을 보인 재완이지만 어쩌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도가 튼 변호사가 판단은 다를지 모른다. 반성의 기미라곤 없는 딸을 미성년자일 때 자수 시키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앞으로 자신에게 올 타격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다.
반대로 재규는 사건을 묻어두자고 한다. 이 역시 시호의 앞날만을 걱정한 판단이라고 보기에는 찝찝하다. 재규는 대형 병원의 의사이지만 아들의 진학을 위해 병원에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만드는 걸 꺼릴 만큼 원리원칙주의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정정당당하게 살면 좋겠다’며 은근한 압박을 통해 아들에게 억지로 얻어낸 대답에 불과하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보다 아내 연경에게 수발을 맡기거나, 학교폭력을 당해 학교를 옮기게 된 시호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 도덕 선생 같은 말을 늘어놔 속을 터지게 하면서도 정작 사건이 터졌을 때 시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위선적 모습을 보인다.
연경은 아프리카 등지로 봉사를 다니며 끼니가 없어서 굶고 질병에 아파하는 아이들을 찍은 VCR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지만, 노숙인은 어차피 겨울에 추위를 피하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를 사람 아니냐며 덮어놓고 자녀들을 옹호한다. 그래도 자녀들을 위한다는 점에서 재완/재규 형제보다는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본인들의 신념에서 벗어나는 결정은 윤리이냐, 혈연이냐는 딜레마보다 가족이라는 사회의 최소 단위에서도 결국 나의 이익이 우선인 각자도생이란 ‘보통’의 시대정신으로 축소된다.
이처럼 선택을 통해 보통을 물어보는 <보통의 가족>에서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건 부감샷이다. 하늘에서 인물들을 찍는 부감샷은 절대자의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이들이 어떤 운명에 휩싸이는지 관조하는 신의 관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관객에게는 선택을 종용하는 연출 방식이기도 하다. 모든 정보와 진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부감샷을 통해 영화와 한 발짝 거리를 두게 되고 시시각각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고민에 자연스레 몰입한다.
또 하나의 독특한 연출은 사건들이 스크린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두 번의 사고가 발생한다. 첫 번째는 재벌 2세의 보복 운전으로 한 가장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다. 재완은 교통사고를 낸 재벌 2세의 변호를 맡고 재규는 남자의 딸을 치료한다. 이 사건은 각각 뉴스 화면과 유튜브를 통해 재규와 재완, 혜윤과 시호에게 각각 전달된다. 자녀들 폭행도 마찬가지다. 부모들도 뉴스 화면을 통해 사건을 접한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직접 보거나 경험하는 순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발화되는 장면도 없다. 사고를 일으킨 인물들의 심리는 하나의 스크린을 거치며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야 하는 일차원적 행동으로 변화한다. 부모들이 CCTV에 녹화된 자녀들의 폭행 장면을 보는 것과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폭행을 보게 되는 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영화 속 인물들과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는 허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의 연출과도 같은 맥락이다. 세 작품은 장르 상 멜로의 프레임에 속하지만 등장인물과 거리를 두며 관찰하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은 단호한 선택의 기로를 함께 맞이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죽음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다시 찾아온 옛사랑을 다시 받아줄 것인지 말 것인가, 죽어가는 연인을 두고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선택이라도 납득이 되는 담담한 관조는 묵직한 여운으로 남아 관객을 오랜 기간 사로잡는다.
<보통의 가족>은 선택의 딜레마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분명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제 20여 년이 지난 허진호 감독의 카메라 앞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모습이 어쩌면 더 어울리는 이해할 수 없고 폭력적인 10대가,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자녀들이 터트린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부모들이 서 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담담히 작별하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순진하게 묻던 한국의 멜로영화는 이제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정말 한국 영화의 봄날은 가고야 말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