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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 Oct 18. 2018

일하는 엄마여도 괜찮아

전업주부에서 워킹맘으로

  



calligraphy by 글몽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는 캘리그라퍼로 일이 많아질 때였다. 기관이나 센터에서의 강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역이나 기업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나가던 때였다. 난 될 수 있으면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 강의를 나가고, 남편이 집에 있는 주말에 행사를 다니고 있었다. 일과 육아, 그리고 가사의 균형을 맞추느라 애를 먹던 시기였다.

 

  어느 날인가 지역 평생학습축제에 캘리그래피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2시간 동안 캘리그래피에 대해 소개하고, 시민들이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게 준비한 자리였다. 주말인 데다 가족 단위로 많이 오는 행사여서 난 함께 가고 싶다는 딸을 뿌리치지 못하고 남편까지 동원해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빠와 다른 체험을 하고 있기로 약속한 채였다.

 

  축제가 열리는 체육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행사 시작까지 시간은 충분했지만, 난 서둘러 가족들과 헤어져 행사 준비에 돌입했다. 무료로 진행되는 체험행사는 언제나 인기가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캘리그래피에 대해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며 정신없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딸이 내가 있는 부스로 오더니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일하는 동안에는 엄마가 챙겨주기 힘들다고 말해두었던 탓인지 딸은 가까이 오지 않고 사람들 틈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주머니에게 느닷없이 말을 건넨다.


"우리 엄마예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당돌함과 엄마를 향한 수줍은 손짓에 순간 멍했다.

  '지금 이 순간, 난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인 거구나.'

  미소를 가득 품은 딸의 한마디가 선물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동안 강의가 늦게 끝나 딸을 친구 집에 보낼 때도 있었고, 작업을 끝내야 한다며 거실에서 혼자 놀게 한 적도 많았다. 딸은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였고 여전히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애써 외면해야 할 때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딸을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이제 조금 컸다는 이유로 딸에게 자립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별별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전업주부에서 워킹맘으로 가는 길에는 생각지 못한 죄책감이 쉽게 따라붙었다. 대체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엄마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 편치 않은 마음이 온몸을 파고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딸은 서운함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꼭 자기가 꿈을 이룬 것 마냥,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딸이 네다섯 살이던 무렵, 책에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는 생명을 지켜주어야 하고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모범이 되어야 하고
사춘기가 시작되면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한다는 말.


  내가 해왔던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였던 것이다. 일을 시작하며, 딸에게 유아시절과 같은 보살핌은 줄 수 없었으나 아이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삶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꿈을 이루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건지 느끼게 해 줄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딸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준 것이다.

  

  전업주부로 사는 엄마든 일을 하는 엄마든,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 엄마든 나의 딸과 아들이 본받을 만한 삶을 살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괜찮은 엄마일 것이다.








#감성에세이 #육아에세이 #캘리그라피에세이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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