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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Oct 26. 2024

예레미야애가 04:11-22 우리의 죄악들 때문에

예레미야애가 04:11-22 

예레미야애가 04:11-22 우리의 죄악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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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시온의 멸망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죄악들과 헛된 것들을 의지한 우리의 죄악들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잔은 모든 죄인들에게 공의롭게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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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줄묵상 : 말씀을 맡은 자들의 탐욕과 나태와 기만이 백성들의 신앙을 더럽히고 망하게 하는 것이니, 주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연구하고 준행하여 바르게 가르치기를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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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절 잘못된 신념은 결국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시온(예루살렘)의 멸망은 여호와께서 진노를 쏟으신 결과입니다. 세상의 모든 왕들과 백성들 중 누구도 시온이 이렇게 유린될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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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 불타고 멸망된 것은 바벨론에 의해서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벨론을 들어서 시온을 향한 진노를 쏟으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거룩한 성을 짓밟고 유린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많은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신념들, 신앙과 신학들,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전이 있는 시온이, 택한 백성인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시온이 무너지고 유린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미 벌어졌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망연자실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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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이 신앙과 신념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그것의 근본이 주의 뜻 곧 주의 말씀에 기반한 것인지 전통과 자신의 경험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구분됩니다. 분명 주의 약속의 말씀에서 시작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전통과 경험이 성경보다 더 우위를 점하여 나의 신앙의 기반을 둔다면 그것은 점점 신념화되어가고 결국 내가 만든 우상을 견고하게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앞에 나아가 주님을 뵈옵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그 말씀으로 나를 해석하고 빚어가며 삶의 내용과 방향들을 거룩함으로 채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잠시도 우리의 눈과 방향이 이를 소홀히 여기면 어김없이 욕망의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주인의 자리에 앉아 우리를 끌어갑니다. 깨어 있음은 그래서 우리 신앙의 삶의 전쟁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정도를 가기 위한 기본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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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서 내가 그토록 확신하는 나의 삶의 내용과 방향들에 대해서 다시금 주님의 뜻에 합당한지 재어보고 살펴보고 점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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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6절 말씀을 맡은 이들의 타락은 모든 파국의 원인입니다. 

시온의 멸망의 원인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의인들을 죽이고 부정하게 되어서 백성들을 더이상 지도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백성들은 더이상 지도자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되니 이러한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심판하사 흩어버리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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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와 계시를 보고 듣지도 못했으면서도 권력에 빌붙어 거짓된 예언을 말하던 선지자들, 백성들을 거룩한 길로 행하도록 가르쳐야 했음에도 그들이 가져온 제물에 눈이 어두워져서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어두웠던 제사장들은 결국 바르게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는 의인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오히려 입을 막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지도자랍시고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죄악은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백성들은 더이상 인정하지 않으니 성전의 기능은 유지될 수 없고, 이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백성들의 타락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세우신 주의 뜻에 불충한 이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그것을 거두시고 존귀와 권위를 잃게 합니다. 주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가 존귀함을 받을진대 주의 뜻을 무시하고 욕망을 쫓아 사명을 소홀히 한 이들의 파국은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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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같은 제사장’은 오늘 교회와 성도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주께서 은혜가운데 회복해 주신 대리 통치권이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거룩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주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주의 나라에서 주님의 법(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거룩이며 이를 부지런히 준행하며 가르쳐야 할 책임이 지도자에게도 있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야 할 성도에게도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말씀을 전했는데도 백성들이 듣지 않는다면 그 벌은 자기에게로 돌아가지만, 듣지 않으리라 예단하고 전하지 않으면 그들의 벌은 예언자에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전하는 자도 잘못 알고 잘못 전하고 잘못 살고 있고, 들어야 할 이들도 듣지 않고 살지 않고 들어도 왜곡된 말씀을 듣게 되니 무엇이 문제인지 분별을 못하고 소경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게 되는 형국입니다. 가르치는 자의 권위가 무너진 것은 스스로 자초한 길이며, 이러한 결과가 오늘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일도, 가르치는 자도, 가르치는 열심도 자꾸만 사라져 가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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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씀 앞으로 가야 하는 것에 모두가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어떻게 읽고 준행하며 가르쳐야 할 지에 대해서는 너무도 오래도록 왜곡된 것들을 따라 믿고 살아온지라 온전한 것을 찾기가 버겁습니다. 그래도 말씀앞에 나아가 부지런히 그 말씀이 그런가 하고 상고하고 묵상하고 연구한다면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역사로 깨닫게하시고 사람을 붙이시고 배움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지도자와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말씀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일입니다. 시작하면 주님이 열어주실 것입니다.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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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0절 하나님 아닌 헛된 것들을 의지한 결과도 결국 파국을 맞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나라(통치자)를 더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토록 의지하던 것들에게 오히려 유린당하고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추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세워진 왕들도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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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바벨론이냐, 친애굽이냐의 싸움이 지속되었습니다. 종국에 예레미야는 차라리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그나마 사는 길이라고 여호와의 계시를 전했지만 이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토록 경고한 모든 말들이 현실이 되었고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애굽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설마했던 바벨론은 독수리들보다 빠르고 강하게 이스라엘을 유린하고 많은 이들이 죽고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콧김(생명의 숨결)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왕)는 여호와의 계시를 무시하니 거짓 선지자와 어리석은 조언자들의 말에 미혹되어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그런 왕을 의지하던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힘없이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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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하고, 주님 아닌 다른 것이 우리 삶의 생사화복을 좌우할 것이라는 기대는 욕망의 이면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 삶의 주권이 주께 있음을 고백할 뿐 아니라 실제 삶의 정황들과 여정이 주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믿는다면 날마다 주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주의 뜻에 따라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여정이 가장 복된 길임을 알고 살아갑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고 깨닫지 못하고 어느새 눈에 보이는 욕망을 따라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입니다.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 하고 우리의 것을 빼앗기 위함이지 결코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시면서 사랑하며 살게 하신 주님만이 우리의 선한 목자요 우리의 의지한 반석이시요, 우리 신앙과 경배의 유일한 대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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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의지하는 분이 주님이신가요? 아니면 주님도 믿고 다른 것도 믿고 있나요? 그도 아니면 아예 주님은 예배당에서만 고백하고 삶의 자리에서는 주님 아닌 다른 것이 지배하고 다스리고 끌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 다시금 내가 참 의지하는 주님을 온전히 고백하고 살아가는 여정이길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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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2절 심판의 도구로 쓰임받더라도 자신들이 죄악은 파국을 면치 못합니다. 

에돔을 향해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진노의 잔은 그들에게도 미칠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과 허물 때문입니다. 그 때가 되면 시온은 죄악의 형벌이 다해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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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돔은 이스라엘을 치는 대적들, 이스라엘의 멸망을 조롱하는 이들을 대표하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의롭기에 심판의 도구가 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줄 알고 교만해 집니다. 하지만 그들의 죄악과 형벌에 대해서도 당연히 책임을 묻습니다. 그래서 지금 교만해진 그들을 향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면서 비꼬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원수의 심판 날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날입니다. 심판의 도구로 쓰임받는다고,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는다고 하더라고 거룩하게, 깨끗하게 쓰임받아야 할 것입니다. 선한 도구로 쓰임받는 일이 복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그 책임 순전히 당사자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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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주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면서 자신들의 죄악들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지불해야 했습니다. 누구도 죄의 삯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그 죄의 삯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기에 주님이 십자가에게 대신 져 주신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값을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값싼 복음으로 대하는 것은 다시금 주님을 십자가에 못받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지금 주님께 쓰임받고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선한 길로, 거룩한 길로 행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합니다. 주님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코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노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주님이시기에 오늘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앞에 나아가는 이유입니다. 다만 그렇게 용서하시려고 계시는 주님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거나 자각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 교만이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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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도구로 종으로 백성으로 살아감을 감사하면서도, 날마다 거룩한 길로 행하고 있는지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다른 이들의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교만과 영적 무지함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주님 바르게 따르고 행하고 일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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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제게 있는 믿음이 온전한 신앙과 신념 사이에

바른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말씀을 맡은 자로서

바로 알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을 쉬지 않게 하옵고

충성되이 감당케 하옵소서

나의 의지할 이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믿음 주소서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주님의 면전에 있음을

오늘도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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