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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Nov 14. 2023

사람 이름을 가진 도시, 호찌민

호찌민에 가면 호찌민이라는 이름보다 사이공이라는 옛 명칭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공항에서 차를 타자마자 몇 주 동안 있고 있었던 오토바이 행렬과 교통정체가 맞아주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메콩 강 투어를 갔다. 7시 45분까지 오라고 해서 7시 반에 미팅 장소에 갔더니 여기저기서 모객 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 출석만 5번을 체크했는데 정작 출발은 8시 20분이 넘어서였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출석은 왜 여러 번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어느 여행사를 통하건 이 투어 상품은 가격이 2만 원 대로 비슷하고 코스는 똑같다. 


처음은 빈짱 사원에 간다. 건물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게 워낙 많기 때문에 대단한 흥미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물건 파는 사람들과 구걸하는 아이들이 달려든다. 



빈짱 사원에서 시간을 소비한 후 드디어 포구로 간다.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가이드를 따라서 드래건보트라고 부르는 배를 타러 간다. 이 배는 목선 뒤에 모터를 단 것인데 정비는 잘 안 해서 여기저기 부서져 있다. 당장 사고가 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비상사태를 대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황톳빛 메콩 강을 건너 처음으로 간 곳은 소위 유니콘 섬이다. 유니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벌꿀이 테마다. 자리에 앉으면 벌꿀차를 주고 간단한 다과를 내오면서 꿀을 판다. 은근히 사는 사람이 꽤 있다.



여기서 시간을 때우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온갖 과일을 잔뜩 내어 놓는다. 그러면서 전통 공연이라고는 하는데 전통은 아니고 그냥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서 뻔한 외국 노래를 부른다. 중국어, 한국어, 영어 등인데 한국어로는 아리랑을 부른다. 시간이 아까운데 또 아리랑에 혹 해서 팁을 내놓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나서 다시 배에 오르면 코코넛 캔디를 파는 섬으로 간다. 캔디보다는 엿에 가까운데 캔디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시식도 할 수 있다. 캔디는 참 맛있는데 제작과정을 보면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쇼핑을 데리고 다니다가 드디어 카약을 태워준다. 카약은 옵션이라 따로 돈을 내야 하지만 가격이 비싸지는 않다. 스스로 노를 젓는 것은 아니고 대개는 아주머니들이 노를 젓는다. 한 배에 두 명씩 탈 수 있는데, 두 명이 타든 한 명이 타든 돈은 인원 수로 받는다. 우리 배에서는 아주머니가 한 서너 살쯤 되는 아들을 태우고 있었는데 애가 온종일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유튜브를 보는 것 같았다. 심심할 법은 했다. 가방을 뒤져서 먹을거리를 아이에게 건네고 유유자적 배를 탔다. 배는 당연한 코스로 상점에 두르고 뭔가를 사야 다시 출발한다.



맹그로브 숲은 아니지만 카약을 타고 한 바퀴 도는 체험은 꽤 재미있다. 그냥 물에 배만 띄워줘도 기본은 하지만 식생이 워낙 특이해서 흥미롭다.


그렇게 재미난 뱃놀이를 하고 나면 식당으로 이동해서 밥을 주고 무작정 시간을 때우다가 가이드가 도망간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쯤에 다시 배를 탄다. 배에는 미지근한 코코넛이 준비되어 있는데 다들 한 번 빨아먹고 그냥 내려놓는다.


호찌민에서 갈만한 투어 상품은 이 정도인데 그냥 쇼핑만 잔뜩 데려가니까 별로 흥미는 없었다. 그래도 배 타는 건 재미있었다.


투어 버스가 중간에 벤탄시장에서 내려도 된다고 하길래 시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벤탄시장은 상당히 큰 재래시장이다. 한국 사람이 많이 가는 다낭의 한시장보다 한 4배쯤은 큰 것 같다. 베트남 어디에서든 파는 흔한 기념품과 짝퉁 옷을 파는데 대부분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다. 몇 군데 들러보니 가격을 어마어마하게 높게 부르기에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렇게 호텔로 돌아와서는 옥상에서 인공 불빛이 만들어내는 멋진 야경을 감상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사이공 중앙우체국에 갔다. 오래된 건물인데 실제 우체국으로 우편 업무를 볼 수 있다. 우체국 앞 광장에서는 마침 무슨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베트남 젊은 친구들이 코스프레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체국 안으로 들어가면 꽤 넓은데 우편도 취급하지만 대부분은 상점이다. 그런데 상품 대부분에 가격표가 붙어 있고 가격이 꽤 적당하고 특이한 것도 종종 있었다. 의외로 쇼핑할만한 곳이었다.



우체국에서 나와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서점거리로 갔다. 한국의 헌책방 거리 분위기와는 달리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책만 파는 것은 아니고 문구류나 소품들을 팔고 있는데 가격이 제법 비싸다. 분위기가 꽤 근사해서 커피 한 잔 하고 올만 했다.



우체국 근처에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갈 곳이 많다. 쇼핑센터나 명소가 몰려 있다. 우리도 시간이 남아 걸어가 보니 가뜩이나 워낙 호객꾼들이 많이 달라붙어서 좀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베트남 사람들은 길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다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 걷는 사람은 거의 외국인 관광객일 것이었다. 


다소 좀 허무하지만 베트남 한 달 살이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베트남은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만나게 될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어도 잘한다. 다만 베트남은 볼 게 없다. 베트남 자체가 볼 게 없다기보다는 개발된 관광자원이 워낙 옛날식이라서 재미가 없다. 한국이 아름다운 해변을 횟집 거리로 만들어놨고 멋진 계곡을 백숙 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베트남도 한국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외국인들이 베트남의 농촌을 느끼고 싶어 사빠를 찾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사빠를 흔해빠진 쇼핑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깟 스포츠브랜드 짝퉁 몇 벌을 사려고 아까운 휴가를 쓰고 비행기 표를 사서 베트남까지 갈리가 없을 텐데 상설시장이든 야시장이든 파는 것이라고는 온통 이미테이션뿐이다. 볼 게 없고 살 게 없다.


사람들이 일본에 두 번 세 번 가는 이유는 여름에 다르고 겨울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횟집과 조개구이집이 계절이 바뀐다고 달라질 리가 없다. 유럽처럼 조상 덕을 본 게 아니라면 대개의 관광자원은 자연일 텐데, 자연은 그곳에 짝퉁 유럽이나 거대한 동상을 세우는 것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아름답다. 콘크리트를 바르는 것만이 개발은 아닐 것이다. 멋진 관광자원을 가진 베트남이 점점 더 촌스럽고 재미없게 변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또 갈 일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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