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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Jul 18. 2018

월드컵을 마무리하며 - 과몰입과 수면시간

발상이 엉뚱하게 튀었지만 어쨌든 내 삶에 도움은 된 것 같은 월드컵

월드컵이 끝나니 일상이 허무하다. 스포츠 대제전 이후로 따라오는 필연적 후유증이지만, 삶을 이전으로 되돌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고역이다.


이번 글은 모두를 위한 월드컵 리뷰와 다르게, 나의 소감과 소회를 총정한 마무리 글이다. 개인적인 깨달음과 넋두리, 종합적인 후기를 모두 이 글에 정리하고자 한다.



1.     애국심과 과몰입, 그 사이의 줄타기


이 국가적 경사 이후에도 사람들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더라 <출처 - 동아일보>


개인적으로는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방관하기를 좋아한다. 첫째로, 새로운 댓글에 일일이 대응하며 내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고, 둘째로, 모두에겐 각자의 논리가 있고 그 논리는 사상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의 사상을 함부로 뒤집기엔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걸 안다. 서로의 사상은 메워야 할 간극보다는 이해해야 할 차이라고 본다.


월드컵을 보면서 간만에 키보드워리어 본성이 부활했다. 에너지가 차고 흐르던 초중딩 때 이후로, 얼마나 오래간 방관자로 살아 왔던가. 가득 차오른 ‘국뽕’은 나를 싸움터로 이끌었다. 나의 기분을 훼손하고 흠집 내는 ‘적폐’들과 물고 뜯으며 격렬한 시간을 보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6월초부터 예견된 일이긴 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2002년의 한국 대표팀 영상에서, 가장 많은 따봉을 받는 건 언제나 “심판매수”, “사기꾼” 따위의 악플이었다. 이전에는 패배자의 불평이라며 무시했지만 월드컵을 앞둔 6월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따봉 누를 때 이외엔 쓰지 않는 유튜브 히스토리에 처음으로 흔적을 남겼다. “매수의 뜻이 뭔지는 아나요? 이탈리아 친구들은 이미 심판매수로 별 하나 달아놓고 왜 겨 묻은 개를 나무라죠?” 대회 도중에도 내 댓글 밑에 달린 반박을 재반박하며 ‘대한민국’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나도 안다. 저렇게 해서 말이 통했다면 진작에 설득 됐을 것이다. 이미 생각을 바꿀 의향이 없는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만큼 소모적인 일이 없는데, 나는 월드컵 시즌에 맞춰 굳이 혼돈의 장을 찾아 의견을 개진했다. 감독 논란이 한창이던 독일전 직후, 나는 내 의견과 반대 되는 사람들의 논리를 하나하나 읽으며 “미친 소리한다”, “헛소리를 한다”고 혼잣말 했다. 언제부터는 댓글창 꼴도 보기 싫어지는 지경이라 아예 댓글을 접었다. 욕설과 비꼬기가 난무하는 그 곳을 빠져 나오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그렇게 비웃는 반대편 사람들도, 내 의견을 보면서 “미친 소리한다”, “헛소리를 한다”고 혼잣말 했을 게 뻔하다. 유임론자는 ‘축협 알바’고, 반대론자는 ‘FC코리아 팬’이 되는 극단의 세계에서 애초에 정상적인 논쟁이 가능했을까. 타인에게 함부로 씌우는 프레임 자체가 선민의식의 발로였다. 막판엔 서로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욕설만 오고 갔다.


전쟁터 바깥의 공간에서, 양측은 서로에게 “축알못”이라느니 “알바”라느니 뒷담화를 했다. 욕설을 떼고, 정상적인 논리로 접근하면 분명 배울 게 있었음에도, 나는 어느새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또라이 새끼들 아니냐”며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주변인과의 대화에서도 나 혼자 열을 내더라. 나조차 선민의식을 흡수한 것이었다. 월드컵은 지친 일상에 한 가닥 희망이고 위로였다. 근데 내게는 언제부턴가 스트레스의 근원지가 되고 말았다.


월드컵 이전, 각종 사회 이슈에서 매일 치고 박는 댓글들을 보며 참으로 한심하다고 혀를 찼었다. 그게 바로 오늘의 나였다. 과몰입이 참 무섭다. 시야를 좁히고 반론을 차단한다. 이성이 사라지고 분노가 극대화 된다. 깨달은 게 있다면, 토론은 언제나 건강하게 하되 공격적인 반론은 아예 무시하자는 것이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2.     일본의 선전을 바라보며


한국은 졌는데 얘네는 이길 때가 제일 가슴 아팠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잘하면 일본이 어떤 성적을 내든 상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보다 잘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 일본이 우리보다 나은 성적을 낸 적이 없었기에 (2010년에 딱 한 번 16강을 같이 고 더 높은 최종순위를 기록하긴 했다), 일본의 선전을 바라보는 올해의 심정은 무척이나 오묘했다.


한국이 진 이상 일본이 이길 수는 없었다. 나는 열렬히 콜롬비아와 세네갈, 폴란드를 응원했고 벨기에의 결승골에 환호했다. 올해처럼 일본 상대팀을 응원한 적은 처음이었다. 같은 대륙끼리 잘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아버지의 말에, 그럼 이란이나 사우디 응원하시라고 반박한 건 덤.


신기한 일이다. 일본 친구도 많고 일본문화에도 제법 빠져 있는데, 뒤에선 일본의 패배에 몹시도 즐거워했다. 개인 취향을 떠나 스포츠가 내셔널리즘의 창구라는 걸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축구와 정치는 별개라고 피파는 항상 얘기했다만, 월드컵이 어떻게 커왔는지를 상기한다면 피파의 그런 주장은 모순임이 대번에 드러난다. 월드컵은 내셔널리즘 없이 클 수 없었다. 애국심을 고취시켜 국가대항전의 파이를 키워온 그들인데 애초에 축구를 축구 자체로만 바라볼 순 없지 않을까. 1번 항목의 ‘애국심’과 겹쳐져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월드컵이 정말 사람을 과몰입하게 만드는 구나, 하고.



3.     내 생활패턴을 돌려내


새벽 3시? 월드컵 하는 시간 아니냐?

월드컵을 앞둔 축구팬의 선택지는 세 개였다. 일찍 자서 새벽을 즐기거나, 밤을 새거나. 혹은 아예 축구를 포기하거나. 이른 취침과 거리와 멀었던 나는 당연히 밤샘을 선택했고, 거의 한 달을 일출과 함께했다.


고삐가 풀린 게 2014 월드컵부터였다. 성인이 되어 내 생활패턴을 내가 책임질 수 있게 됐고, 그렇게 아침까지 월드컵을 보며 시험공부를 게을리 했다. 그리고 시험을 망쳤다. 교양이었는데 평균을 식충이처럼 갉아 먹었다. 그래서 올해는 다소 다른 방식을 취했다. 경기 보는 시간을 좀 줄였냐고 하면 그런 건 아니다. 내가 경기를 포기할 리는 없다.


개막 전에 학기를 끝내버렸다.


일찍 끝나는 과목만 골라서 한 나는, 처음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월드컵을 볼 수 있었다. 새벽 5시 취침과 오후 1시 기상이 습관화 되었는데, 극적인 경기가 나오면 복기하느라 취침시간 30분에서 한 시간을 더 잡아먹었다. 일출시간은 서울 기준 5시에서 5시 10분 사이. 이제는 일찍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굳이 새벽에 자려고 해도 거부하는 몸이 되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내가 생방송을 놓친 경기 목록인데, 생방송을 놓친 이유 또한 대부분 졸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생각에는 일견 타당한 이유들이다.


크로아티아 VS 나이지리아: 월드컵 유일의 새벽 4시 경기. 대회 초반이라 이렇게 늦게까지 깰 수 없다 싶어서 취침.

브라질 VS 스위스: 다음날 오후 9시가 스웨덴전. 친구들과 놀다가 함께 응원하기로 약 돼있어 대비 위해 겸사겸사 취침.

튀니지 VS 잉글랜드: 스웨덴전이 끝나고, 한 경기는 겨우겨우 봤는데 새벽 3시에 하는 경기까지는 도저히 볼 맛이 안 나 스웨덴전 복기하다 취침. 이 날 아침 7시에 잤다.

나이지리아 VS 아이슬란드: 밖에서 놀고 있어서 못 봄.

독일 VS 스웨덴: 멕시코전 지고 우울이 극대화 돼서 순대국밥 먹으면서 문자중계로만 봄. 토니 크로스 골 터지고 초면에 히딩크 세리머니 하며 순대국밥과 함께 포효.

폴란드 VS 콜롬비아: 일본이 16강 갈 것 같아서 우울해서 취침.

E조 3차전 두 경기: 독일전 승리 직후 독일전 하이라이트만 보느라 못 봄. 이 날 아침 8시 취침.

G조 3차전 두 경기: 일본 16강 가서 우울해져서 취침.


조별리그 이후의 토너먼트는 모두 생방송으로 보며 노답 인생을 인증했다. 이번 방학은 애초에 월드컵과 함께할 계획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월드컵 볼 일도 없겠지. 2018 월드컵은 내 가슴속에 평생 남을 것이다. 제일 즐겁게 본 월드컵, 그리고 독일을 이긴 월드컵으로.


이보다 월드컵을 잘 즐기려면 현장에 가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다. 4년 뒤 돈을 모카타르에서 월드컵을 관전하는 그림 말이다. 거기선 시차 걱정도, 중계진 걱정도 없다.


그래, 2022년엔 카타르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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