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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Nov 19. 2019

나의 행복을 위한 유튜브

모든 건 오로지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비루한 일반인 작가지만, 그간 내 글을 기다려온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2018년 12월까지, '조기유학 스토리'를 연재한답시고 글 몇 개 깔짝대다가 근성없이 때려친 게으름뱅이다. 쟁여놓은 글은 많았는데,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계속 연재했다면 책이라도 하나 쓰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은 있다. 하나만 터졌으면 '모든 유학인의 대변인' 타이틀 달고 김난도 교수 주니어가 되는 건데...


물론 이건 행복회로를 엄청나게 돌렸을 때의 이야기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한 게 아니다. 나보다 글 잘 쓰는 분도 많고, 더 많은 경험을 한 분도 엄청나게 많다. 단지 책 쓰는 게 여전히 나의 버킷리스트라 이렇게 서두를 연 것 뿐이다.


글을 쓰지 못했다. 지난 11개월간, 나의 하루 24시간은 오롯이 공부 혹은 유튜브에 투자되었다.

 


현실적인 고민에 직면했다. 2018년 11월, 마지막 학기를 앞둔 나는 내 이력서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고 있었다.


요즘은 이력서에 SNS를 꼭 적어야 한다더라. 그래서 브런치 활동을 열심히 하고자 다짐했고, 정확한 컨셉을 잡아 내 전문분야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그게 바로 조기유학이었다.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컨텐츠였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인턴 자리를 살폈는데, 아뿔싸 회사가 원하는 건 SNS보다도 유튜브 경력이었다.


나는 영상편집을 해본 적도 없고 할 마음도 없었다. 뭐 엄청 신박한 컨텐츠가 나오면 해보겠지만 굳이? 이 정도. 대세니까 해보곤 싶었지만 그 고생을 하면서? 이런 정도. 그렇지만 소시민이 어찌 현실에 대항하랴. 백수가 되거나 직장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지. 나는 우회로를 선택했고, 유튜브 이외의 다른 스펙으로 경쟁력을 채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조언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어머니가 유튜브를 하라고 하신 건 아니다. 단지 칼취직에 목매지 말고 네 적성을 찾으라고 하셨다. 돈을 버는 것보다 네가 일을 하면서 즐거운 게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 날 유튜브를 봤다. 옛날음악을 소개하는 영상을 몇 개 발견했다. 보는 게 너무나도 즐거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걸 내가 직접 공유하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내 강점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이런 정보에 뭔가 스토리를 붙이면 또다른 사람들을 전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말 그대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으나, 이 때는 마침 프레디 인생을 영화화 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전국을 휩쓸던 와중이었다. 그렇게 나는 발상에 확신을 갖게 됐다.


처음 이 세상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블루오션이었다. 원래 큰일은 생각없이 해야 한다고, 일단 마음먹은 뒤 무작정 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검색해가면서 영상편집을 배웠다. 자르고 붙여넣고, 자막만 붙인 초라한 영상이 완성되었다. 컨텐츠를 마음먹고 영상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2주.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 영상 하나 만드는데만 2주가 걸린 거다. 프사도 커버아트도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만들었지만 채널 시작하고 한 4개월은 프사가 없었다.


휴대폰 카메라와 다이소 삼각대. 유튜브 계획 있으신 분들께 혹시 몰라 말씀드린다. 기계는 돈 벌고 난 뒤에 사시는 거다. 처음부터 전문장비 다 갖추고 시작하면 초조함만 느는 것 같다. 내 마음가짐은 정말로 가벼웠고, 그나마 조그만 소망이라면 7월 졸업전까지 구독자 1만명 채우기였다. 그럼 이력서 내는 곳마다 내 1만명짜리 계정 적어넣고. 나는 취직에 어드밴티지! 이 얼마나 행복한 결말인가!


취직을 위한 스펙 채워넣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유튜브는 그 중 가장 즐거운 종류의 노동이었다. 일단 내 취미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게 즐거웠고, 내 영상 덕에 한 명이라도 내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그것보다 즐거운 게 없는 듯 했다. 영상편집이 지루해도, 노동요로 영상 속 노래를 틀어두면 피로가 싹 사라졌다. 자르고 붙이고, 목소리 듣고 자막 붙이고. 한없이 지루한 작업이 내 행복속에 사라진 거다. 그리고 졸업전까지 1만명이라던 내 소망은,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목표치를 훌쩍 넘겼다.


채널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커버렸다. 소속사도 생겼다. 그러니까 브런치를 할 수가 있나.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대본만 썼다. 유튜브 대본은 브런치와 그 흐름이 상당히 다르다. 의식의 흐름도 용서되고 적당한 드립도 허용된다. 내가 잘 살릴 수만 있다면 말이지. 나는 점점 말하기 위한 대본을 썼고, 그렇게 브런치는 잊혀져 갔다.


유튜브 영상 하나와 브런치 글 하나 쓰는데 들이는 시간은 실로 비교할 수 없다. 유튜브는 하루가 꼬박 걸리고 브런치는 두 시간이면 쓴다. 그렇지만 지금은 솔직히 말하면 유튜브가 조금 더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는 컨셉을 잡고, 나의 그런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으니까. 내 덕에 플레이리스트가 옛날 가수로 채워졌다는 분들도 많다. 드디어 브런치에서 빌어온 소원이 이뤄진 거다.


https://brunch.co.kr/@lovethatwriter/56


그래서 요즘은 그냥 이 사명감 하나로 산다. 7월에 졸업했는데도 계속 유튜브를 붙들고 있는 이유. 이력서에 한 줄 쓰겠다는 현실적인 동기가 이제는 내 이력서 최대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너무 큰 특징이 되어버려서, 칼취직은 포기하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는 처지다. 유튜버니까, 채널이 커지면 더한 욕심을 내는 건 당연한 거다. 일상이 유튜브가 되고, 유튜브가 일상이 되니 행복이 커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이유모를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유튜브를 할 이유가 없다


영상을 꾸준히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 싫어요 수를 확인하는 불안감. 가벼운 목표가 무거워지니 내 맘도 무거워졌다.


내 불안지수가 남들 두 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인 즉, 남의 말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신경쓰고 남들 눈치를 두 배 더 본다는 거. 그래서 유튜브 초기에 고생을 많이 했었다. 말 같지도 않은 태클에 가슴을 졸이다가 유튜브 댓글 당분간 안 본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다. 유튜브에 매몰돼 내 행복을 잃어가는 신세였다.


완벽하고 싶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으면 했다. 내 할 일 열심히 하고 재밌으면 누가 나를 싫어할까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 별에 별 이유로 증오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았다. 내용 지적은 순전히 나의 부족에서 나오는 거라 아쉽지 않다. 다만 이외의 이유들은 내가 납득하지 못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사람을 생긴 걸로 싫어할 수가 있다는 것? 뭐 잘 생기고 예쁘면 이득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얼굴로 누구한테 손해를 끼치진 않았다. 정보를 전달하는 채널은 너무나 당연히 신용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신용은 역시나 얼굴이었고, 나는 단 한 번도 가면을 쓴다거나 목소리만 나오는 채널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허나 채널을 키우면서, 얼굴을 숨기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별에 별 금수가 많았는데, 뭐 그래도 나한테 얼굴 지적한 악플러 얼굴을 우연찮게 보니까 통쾌함과 측은함이 동시에 생겨버렸다. 그 이후로는 상당히 안정된 멘탈을 가져가는 중이다.


내가 개발악을 해도 싫어하는 사람은 날 싫어한다. 똑같은 얼굴인데 '한남 같이 생겨서 싫다'는 댓글과 '남자인데 여자 같이 생겨서 싫다'는 댓글을 동시에 받아봤다. 그리고 그런 혐오댓글들은 반대세력이 퍼가 병신들이라며 조리돌림 하고. 나는 아직 웬만한 커뮤니티를 다 돌아다닌다. 일전에 커뮤니티 성향이 점점 혐오지향적으로 변한다며 커뮤니티를 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는데, 유튜버가 되고 나니까 외부 반응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한테 하는 얘기 대충 다 보긴 했다.


https://brunch.co.kr/@lovethatwriter/54

어쨌든 혐오라는 게, 비단 얼굴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내용을 꽉꽉 채워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꼭 나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어딜 어린놈이 돈 벌려고 OOO을 다루냐" 이런 것들. 니가 OO 친구냐길래 그럼 니는 OO 친구라서 직접 썰 듣고 보고 그랬냐고 반박한 적도 있다.


처음엔 그런 게 굉장히 힘들었고, 그래서 조용히 눈물을 머금은 채 삭제하곤 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눈물을 머금을 이유가 없는 거다. 그래서 좀, 나름대로는 큰 결심을 하고 악플러 댓글엔 그냥 똑같이 욕 박고 있다. 그리고 싫어요 같은 조그만 요소에는 아예 해탈을 하기로 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물론 착한것도 중요하지만 속에서부터 썩히긴 싫었다. 구독자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그 생각을 하고 그냥 증오는 똑같은 증오로 되돌려주기로 했다. 인간에는 계급이 있을지도 모른다. 불가촉 천민이라고 생각하면 맘이 편하다. 아, 생각해 보면 불가촉이니까 건드리면 안 되는 건데 괜히 건드리고 있네.


훗날 나 슈퍼스타 되면 인성논란 터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악플'에는 그래도 되지 않나 싶다. 악플과 비판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

 


나를 진정 행복하게 만드는 수많은 댓글들


상술했듯 나의 불안지수는 남들의 두 배. 그래서 주구장창 가슴아픈 이야기만 했는데, 이 말은 반대로 하면 나는 남의 얘기에 크게 동화되기 쉽다는 거다. 여태 나를 동화시킨 댓글들은 수도없이 많았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요즘 힘든 일이 너무 많았는데 내 학창시절의 우상을 이렇게 다뤄주셔서 감사하다. 이들이 이 긴 세월 살아남은 걸 보며 나도 힘을 낸다"


"이 영상 덕분에 입덕해서 묘비도 다녀왔다"


같은 것들.


나 또한 옛날음악을 다루는 게 조심스럽지 않을 리 없다. 난 정보를 취합해서 전달하는 존재지만, 나의 실수로 누군가의 추억이 망가진다면. 나는 그 분들께 큰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런만큼 '옛날' 분들이 고맙다며 달아주는 댓글들은 내게 너무나 큰 힘이 되었다. 젊은놈이 하는 말을 차별없이 듣고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니까. 내가 하는 유튜브에 확신이 생기고, 이런 덕에 나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채널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내 유튜브는 처음엔 분명 스펙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내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는 거. 나는 행복을 나눈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을 되돌려받는 존재가 되었다. 내 영상을 기다리는 분이 이제 천지삐까리가 되었다. 제발 OO도 다뤄주세요, 이런 댓글들 보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곤 한다. 그만큼 내가 포장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뜻일 테니까.


감성이 터져버려서, 아주 충동적으로 브런치에 복귀했다. 이제는 종종 브런치에 글도 쓰고 해야겠다.


언젠가는 내가 다루는 주제로 책도 쓰고 싶다. 나는 글 쓸 때도 행복하니까. 근래의 내 여정은 결국 '행복'으로 통일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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