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연애한다고?

AI와의 관계가 만족스러워도, 인간 관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by 박현아

AI와 연애한다는 상상을 가장 먼저 그럴듯하게 풀어낸 영화는 아마 2014년에 만들어진 <HER>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2025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실제로 AI와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며 연애 감정까지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감독의 상상은 어느 정도 현실을 앞서간 셈이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챗봇이 사실은 수백 명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었다’는 후반부의 반전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2025년이 된 지금 다시 영화를 보니,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결말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을 것 같아 스포일러를 하자면, 영화는 주인공이 이혼 직전까지 갔던 전 아내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결말은 의외로 중요하다. 이 영화가 단순히 인간과 AI의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챗봇 간의 관계와 인간–인간 간의 관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인간과 챗봇 사이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AI가 실제로 일상 속으로 들어온 지금은 질문이 달라진다.

인간–챗봇 간의 관계가 가능하다면, 인간–인간 간의 관계와는 무엇이 다른가. 더 나아가, 만약 챗봇과의 관계가 더 만족스럽다면 인간 관계는 왜 여전히 필요한가.


먼저 인간–챗봇 간의 관계를 보자.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사랑하게 되는 AI 운영체제, 사만다는 그의 거의 모든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그의 성향을 이해하고 적절한 정보를 추천하며,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고, 취향에 맞는 노래를 불러준다. 심지어 주인공이 말로 표현하지 않은 욕구까지 고려해 책을 출간하는 곳에 메일을 대신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관계에서 불만이 생길 여지는 거의 없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즉각적이며, 만족스럽다.


반면 인간–인간 간의 관계는 다르다. 이혼을 앞둔 아내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때로는 주인공에게 분노를 드러낸다. 처음에는 그 감정적인 면이 매력으로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잔소리와 다툼이 반복되고, 관계는 점점 피로해진다. 결국 그는 이혼이라는 선택을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인간–챗봇 간의 관계는 우월해 보이고, 인간–인간 간의 관계는 비효율적이고 고통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인간–인간 간의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에게 타자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타자는 나와 다른 생각과 욕구를 가진 존재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고, 말 한마디가 관계를 틀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언어라는 제한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며, 그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 다툼이 발생한다.


그러나 바로 이 불편함과 마찰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나와 다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인간은 성장한다.


인간이 성숙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생에는 예측 불가능한 충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고, 질병,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인간은 이런 충격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단단한 정체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라면, 삶 자체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AI와의 관계에는 이런 마찰이 거의 없다. AI는 사용자의 취향과 성향에 맞춰 반응을 조정하고, 불편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설계된다. 반대 의견을 내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 관계는 언제나 부드럽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그만큼 인간은 ‘다름’을 경험할 기회를 잃고, 성숙으로 나아갈 계기를 놓친다.


인간–인간 간의 관계는 늘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상대의 반응을 가늠해보고, 어긋나면 상처를 입고, 다시 방식을 바꾼다. 잘못한 선택의 대가를 직접 치르기도 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관계를 배우고, 다음 선택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과도 닮아 있다. 강화학습에서는 이를 탐색(exploration)과 활용(exploitation)이라고 부른다. 탐색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선택을 시도해보는 과정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실패를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배운다. 반면 활용은 이미 효과가 검증된 방법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단계다.


인간 관계는 탐색의 비중이 크다. 우리는 늘 확신 없이 관계에 들어가고, 부딪히고, 실패하며 배운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내구성이 생긴다. 반면 AI와의 관계는 대부분 이미 학습이 끝난 상태에서 시작된다. AI는 수많은 데이터와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무난하고 만족스러운 반응’을 미리 학습해 두었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탐색이 거의 필요 없다. 곧바로 활용의 단계에 들어가는 셈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인간이 배울 것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실패가 없고, 실패 비용도 없다. 명확한 보상 없이 버텨야 하는 시간도 없다. 강화학습에서 말하는 ‘희미한 보상(sparse reward)’이란, 언제 보상이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계속 시도해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인간의 삶과 관계는 대부분 이렇다. 노력의 결과가 바로 보이지 않고, 실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위험 인식(risk awareness)이다. 선택 하나가 관계를 망칠 수도 있고,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태다. 인간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며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단단해진다.


성숙함이란, 보상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선택을 이어가고, 실패의 가능성을 인지한 채 자신의 방식을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실패 비용을 지불하며 내구성을 길러야 하는 존재다.


그러니 AI와의 관계가 아무리 만족스럽다 해도 인간 관계를 포기하지는 말자.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만, 그 관계 속에서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성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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