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쓰러진 노인에 패딩 벗어준 중학생들, 국회의원상 받는다.’ 란 타이틀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누군가의 선행이 또 다른 누군가의 눈에 들어, SNS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결과다. 하지만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숨겨진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 기사가 뜨기 얼마 전, 내가 한국에 도착한 날이다. 나는 여름옷을 입고 있었다. 남아프리카를 들러 오느라 겨울옷을 준비할 여가가 없었을 뿐더러, 픽업 나온 택시를 타고 곧바로 세브란스 병원 근처 숙소로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짐을 풀자마자 저녁 약속이 있어 그대로 외출하게 되었는데, 길에서 만난 청년이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묻는다.
“춥지 않으세요?”
“추워요.”
“제 옷 벗어 드릴까요?”
점퍼의 지퍼를 만지며 말하는 품새가 곧 벗어 줄 태세다. 더운 나라에서 갑자기 오느라 겨울옷을 준비 못한 탓이고, 조금 후면 친구가 따뜻한 옷을 가지고 올 거라 했더니 그제야 안도의 눈빛이 된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아침부터 날리던 눈발이 녹아, 저녁이 되자 거리를 온통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신고 있던 신발이 빙판에는 무방비 상태인 걸 알았기에 조심하며 걸었는데도 순간 균형을 잃었는지 속수무책이다. 눈앞에 불이 번쩍 나는가 싶더니 바닥을 향해 사정없이 나동그라졌다. 그때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경황이 없었을 뿐더러, 아프고 놀라고 창피한 마음에 인사조차 할 여유도 없이 보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미안하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근처에 거처를 정하다 보니 젊은이들의 삶을 많이 엿볼 수 있다. 추위 속에서도 싱싱하게 빛을 발하는 그들을 보며 참 눈부시다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 데, 명물길을 토론의 장으로 달구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이고, 한편에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약속 시간에 쫓겨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틈은 없었지만,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만들고 있는 듯했다. 소셜 커뮤니티를 이용해 자신의 견해를 공유하고 여론을 만들어 내는 그들에게 찬바람마저 강력한 메시지 전달의 소품이 되는 듯하다.
그들이 생산해 내는 콘텐츠를 접하다보면 우리나라가 변해가는 속도를 피부로 느끼게 되는데, 이제 내가 그 흐름에 동참하는 것은 벅차다는 생각에 서글프기까지 하다. 새로운 환경과 변화는 나를 들뜨게 했으며, 그것들을 즐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영 다르니 말이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짙은 선글라스까지 끼니 행동은 굼뜨고 행색 역시 추레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 탓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추운 날씨까지 가세해 나를 더 움츠려들고 소심하게 했을 터이다.
따뜻하고 느린 그곳이 그립다. 내 보폭은 어느새 아프리카에 맞춰져 있고, 내 시야 역시 그곳의 높이에 멈춰지고,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주위를 곁눈질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길들여진 탓일 것이다. 그곳이 내가 있을 자리라는 생각은 더 확고해 진다. 눈의 복시는 거의 회복했고, 내년 초에는 탄자니아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젊은 그들이 만들어가는 변화를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지지하며 편들어 주면서, 천천히 따라가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