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Mar 27. 2021

탄자니아 통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게 하라

무의식 중에 뒤를 돌아본 듯하다.

자그마하고 깡마른 사내가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인데, 유난히 까만 피부가 그를 더 왜소해 보이게 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여행지의 어디나 이런 사내들은 있고, 보통은 성가시지만, 낯선 곳에서 말이 통하면 약간의 구전으로 좋은 가이드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소개하며, ‘해피’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해피’라니… 갑자기 견공님들이 생각나 킥킥거렸더니, 본명은 따로 있지만 늘 웃고 있다고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어릴 때 엄마 아빠를 모두 잃고 떠돌다, 공예가를 만나 도제로 있으면서 기술을 익혔다고 했다. 예술가라기보다 기능공에 가깝다. 어쨌던 아프리카는 자칭 예술가가 많은 땅이다

영어를 꽤나 해서 한참 영어 공부하는 내게 프리토킹 상대로도 나쁘지 않았다. 영어는 어디서 배웠냐고 했더니, 신이 자신에게 특별히 준 재능이란다. 공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읽고 쓰는 건 못한다고 했다. 다른 언어는 기억이 안 되는데 영어만은 일부러 노력하지 않았어도 그냥 배워진 걸 보면 신의 선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길을 안내해준 보답으로 약간의 돈을 건넸는데, 이건 뭐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자신이 좋아서 한 일이라나. 예술가라며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에게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마침 저녁 시간이었고 이런저런 말 상대로도 나쁘지 않았기에 잡았더니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민물 생선이 유명한 곳이어서 시키려 했더니 고기류나 생선, 심지어 우유나 계란, 유제품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채식주의자냐고 했더니 ‘비건’이라고 고쳐준다. ‘비건’은 완벽한 채식주의를 의미하며 일반 채식주의자와 구별된다는 설명이었다. 이유를 묻는 내게, 어느 날 갑자기 고기가 역겨워졌고, 얼마 후 생선과 우유, 달걀까지도 싫어져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 했다.


독특한 캐릭터의 그. 현실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국에 이곳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는데 너를 좀 더 소개해 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순순히 그러마,고 했다. 

그는 남의 집을 무단 점거해 살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돈을 다 모은 후 한꺼번에 집을 완성하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의 돈이 모아지면 집 짓기를 시작해 벌어가며 완성하므로 미완성 집들이 많은데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멘트 바닥에 깔린 돗자리 한 장과 모기장이 세간의 전부였다. 놀란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여기저기 떠돌며 살고 있는 탓이란다. 형편이 나을 때는 호텔에서 지내기도 하니 걱정 말라고 나를 되려 위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돈이 좀 더 많았으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성공했으면 하고 끊임 없이 욕심을 내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기에 늘 웃을 수 있다고 했다. 장가도 가야하고 아이도 길러야 할 터인데 미래가 불안하지 않냐고 찔러보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특별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은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산다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난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포즈를 취해 주는데 마치 수도승 같다.  

책이 출판되고 나는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지인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그네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떠나올 때의 용기는 다 사라지고 두려움이 나를 집어 삼켰다. 가진 게 없기에 잃을 것도 없다는 것이 내게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물쇠로 꼭꼭 채워놓은 곡간이라도 털린 양 억울해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칭찬이나 이해, 공감을 기대한 것인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자 나는 좌불안석하며 좌절하고 두려워한 것이다. 버린 것이 아니고 새로운 욕심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연결되어 나를 밑바닥까지 밀어내며 상처 입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 날로 충분하다.’


 돗자리 하나와 모기장. 푸성귀만 있어도 항상 웃을 수 있는 그. ‘해피’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내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출처: https://gcinnews.tistory.com/3458 [금천마을신문 금천in]

작가의 이전글 탄자니아 통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