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에 바람이 불면1

밤 11시, 새벽 3시에도 아파트 지키는 사람들

by 서휘

며칠 전 새벽 3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지하 6층 집수정에서 급수라인의 횡주관이 터졌다’는 긴급 상황이었다. 관리반장이 찍어 보내 온 사진을 보니 수돗물을 틀어 놓은 듯 제법 구멍이 컸다. 모두 고요함을 원하고 있는 새벽, 빌딩 숲 아래 숨은 어둠 속에서 나온 작은 폭발음이나 다름없었다.

아침이 밝기도 전, 나는 몇 군데 거래처에 전화를 걸었다. 문제가 생긴 곳의 사진을 보내달라고들 해서 보내줬는데 업자마다 각기 의견이 달랐다. 누군가는 대공사라 했고, 누군가는 간단한 수리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제각기 다른 진단과 견적을 보면서 제대로 판단해야 했다.


비교견적 후 지난번 지하 1층 배관 청소를 맡겼던 J설비업체가 적정했고 공사를 맡기기로 했다. J설비는 오후 1시에 방문 했고 필요한 자재가 있어 구입해서 오면 밤 10시 쯤 본격적인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로 미루지 않고 밤중에라도 공사를 하겠다는 사장이 고마웠다. 나는 공사 마무리를 보기 위해 퇴근을 미루고 사무실에 남았다. 사무실 통 창으로 어둠이 내리고 빌딩들은 하나 둘 네온사인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조용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평소 급한 일에 미루어 놓았던 남은 일들을 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 관리 반장에게 전화가 왔다.

“소장님, 빨리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급히 지하 5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우리 단지는 지하 5층과 6층에 기계식 주차장과 기계실, 그리고 집수정이 있다. 오늘 수리 예정이던 횡주관이 있는 곳은 지하 6층, 그곳으로 가려면 기계식 주차장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현장에 도착하니,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J설비업자가 작업장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닫지 않아 열어 놓은 문을 통해 기계식 주차장의 웨건이 충돌했고, 케이블이 손상된 것이었다. 나는 급히 기계식 주차장 관리업체에 연락했고, 다행히 곧 기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J설비업자는 자기 실수라며 면목 없어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복잡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며 수고한 그에게 괜히 더 무리하게 시킨 건 아니었나 싶었다. ‘안전을 더 철저히 신경 쓰지 못한 책임은 내게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수리가 마무리되고, 나는 사무실로 올라왔다. 기계식 주차장도, 횡주관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를 지나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환기가 필요했다. 창문을 모두 열었다. 빌딩숲 사이로 밤바람이 들어왔다. 잠깐이었지만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큰 인명 피해나 2차 사고가 없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자.’

안도의 숨이 쉬어졌으나 그날 쉬이 잠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J설비업자에게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달라고 연락했다. 그는 거듭 “죄송하다”면서 “이번 공사비는 못 받겠다”며 못 받겠다고 했다. 나는 하루 종일 밤늦도록 고생하셨는데 받을 건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업체측은 몇 번의 고사 끝에 “알겠다”고 했다. 그날 오후, 내가 자리 비운 사이 J설비업체 사장은 관리사무소에 떡 한 상자를 선물로 두고 갔다.

삶은 고요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절실함 덕분에 버텨지는 것이 아닐까.

새벽까지 고생한 반장, 기계설비작업자들, 선물을 두고 간 J설비업체 사장과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복구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책임의 이름으로 감당하는 몫이다. 그 몫을 다하기 위해 우리 관리자들은 오늘도 촉을 세우고 건물을 지킨다. 묵묵히 제 자리에 선 채로 누군가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경 쓴다.

빌딩숲의 묵청빛 바람이 조용히 지나고 있다.

퇴근길_정온유

* 이 메거진은 '한국아파트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hap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6164


ㆍ 이 매거진은 연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관련 소재는 '정소장의 업무일지'에 창작을 더하여 연재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