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는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SBS에서 2부작으로 방영된 '미스터리 신입생'은 진짜 자신과 가짜 삶 사이를 오가며 생겨난 에피소드들을 다룬 드라마다.
두근두근.
긴장감 가득한 주인공의 얼굴이 등장한다. 에이 설마.
걱정말라는 듯 휴대폰 화면에 대학 불합격 통지서가 뜬다. 다행이다.
착잡한 얼굴의 주인공 옆으로 구급차가 지나가면서 말한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깟 대학 합격여부가 대수야?
너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내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냐.
오아영은 부모님께 대학에 합격했다는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결국 오아영은 진짜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명문대 합격생 오정은의 삶 또한 살게 된다.
가짜 삶은 조마조마하다. 부모님의 합격 축하 꽃다발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명문대 휴대폰 고리에 의한 주위의 부러운 시선 또한 부담이다. 거짓말은 커져가고, 걱정 또한 깊어간다. 하지만 오정은의 삶은 놓아버리기엔 너무 달콤하다.
오정은의 삶 속에서 만난 이민성은 가짜 삶을 더욱 달콤하게 만든다. 이민성은 불안에 가득찬 가짜 오정은에게 '달콤 창고'를 보여준다. 달콤 창고는 오며가며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사물함에 초콜릿, 사탕, 쪽지 등을 놓고 익명으로 소통하는 곳이다. 누군가의 눈 먼 친절은 그녀를 미소짓게 만든다.
노력에 배신당했다.
오정은의 빈 집에는 오정은이 아닌 오아영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이 흔적은 오정은의 배경에 대한 오아영의 부러움이다. 이를 발견한 엄마에 의해 또 다른 갈등이 피어난다. 오아영이 원했던 쪽집게 강남버스는 그녀의 노력이 좋은 배경에게 질 것 같다는 두려움을 표현한다. 오아영이 진짜 두려워했던 것은 대학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의 배신이었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노력은 그녀를 배신했다. 사소했던 하나하나가 모두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현실은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이민성의 삶을 살고 있는 정우현은 아버지 빚을 갚고 있다. 돈에 짓밟히면서 공부고 꿈이고 다 버리고, 5년을 견뎠는데 고작 5일 늦었다고 자신을 몰아부치는 빚쟁이들이 원망스럽다. 빚쟁이들은 조금 더 고생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라고 한다.
정우현은 결과를 위한 과정 위에 서 있다. 힘들고 긴 과정이란 삶은 결과라는 삶을 위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달콤한 결과라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해주는 조언따위가 의미가 있을까. 지나간 고통이 추억이 되는 건 아름다운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노력에 배신당해 아름다운 결과를 얻지 못한 오아영에게 지난 고통의 과정은 추억 따위가 될 수 없다. '그 때가 좋을 때야' 라는 말은 고통의 과정 속에 사는 이에게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일 뿐이다.
네가 무슨 비밀 얘기할게 있다고.
나라면 모를까.
이민성은 요즘엔 대나무숲 같은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비밀, 상처 그런걸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 대나무 숲에서 비밀 얘기를 한다. 오아영은 이민성을 공감할 수 없다. 네가 무슨 비밀 얘기할게 있다고. 그러면서 대나무숲에게 말한다. 꼭 되고 싶었다고. 나하나 믿고 죽을 힘 다했고, 진짜로 되고 싶었다고.
말 안해도 돼.
하지마.
아무말도 하지말자 우리.
자신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친구들의 충고는 그녀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어차피 오아영의 감정을 100% 공감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달콤 창고가 그녀를 미소짓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민성은 그녀의 비밀을 묻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필요한 건 어설픈 조언따위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주인이 되고 싶었으면 그렇게 치사한 방법말고,
정정당당한 노력과 연습으로 올라왔어야지.
모든 힘든 과정이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결과가 노력에 비례하다고 하기엔 외부 요인이 너무 많이 작용한다. 오아영은 부러움의 대상인 오정은을 향해 말한다. 노력한다고 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고. 남의 자리가 갖고 싶은 사람도 있는 거라고. 너같이 다 가진애는 모르겠지만.
너네가 뭘 당했는데?
이민성에게 들러붙은건 너네들이거든.
정우현의 이민성 놀이가 들통났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지만 피해의식은 만연해 있다.
오아영은 정우현에게 배신감을 느낌과 동시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 네가 정말 있는 놈인 줄 알고, 어떻게 한 번 잡아볼까. 그래서 그랬던 거야.
-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정우현은 자신이 있는 놈이 아니란 것에 사과한다. 그리고 누워있는 이민성에게 말한다. 내가 너라면. 네가 가진 상황, 배경에 감사해하며 그렇게 평범하게 잘 살았을 거라고.
오아영은 달콤창고에서 진실과 마주한다. 정우현은 처음부터 오아영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오아영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공감이 아닌 묵묵한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있는듯 없는듯 존재감없이...
그런 사람이 어딨어?
모든것이 들통난 오아영은 엄마에게 외친다.
결과는 잘 나왔다구. 근데 그렇게 했는데 안된걸 어떡해.
나 혼자 기쓰고 해도 결국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거구나.
그 벽은 나같은 애는 절대 혼자서 올라설 수 없는 거구나.
속상하다. 하지만 속상함보다 미안함이 더 크다. 우리가 고통의 과정을 딛고 아름다운 결과를 손에 쥐려는 이유는 자기 자신뿐만은 아니다. 나를 믿고, 진심으로 응원해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그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 나로 사는게 뭔지.
그럴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다시 꺼낸 오아영의 신분증. 그리고 다시 찾은 대나무숲. 더 이상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거리가 없어졌다. 오정은, 이민성이 아닌 오아영, 정우현으로써 만난 둘은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지금의 '내'가 진짜 '나'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삶을 표방할 필요는 없다. 내 위치에서 나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스스로를 결과를 위한 과정 위에 옭아매고,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지금 고통받을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뭘 해야할지 고민해보고, 지금 행복한 삶을 살아라. '미스터리 신입생'에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게 아니었을까.
정우현과 오아영은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만났더라도 분명 좋은 친구가 됐을 것이다.